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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Sep 06. 2023

감정의 바탕은 기억



글 공백기가 두 달여 지났다.

마음을 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집안일은 아무리 오래 미뤄뒀어도 일단 한번 하려고 들면 능숙하게 금방 해치운다. 이런 절차적 장기기억은 애쓰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반응하는 법이다.

뇌의 같은 영역에서 글쓰기도 처리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한번 훈련해놓기만 하면 오랫동안 쉬었어도 노트북 뚜껑을 다시 여는 순간 손가락이 저절로 써 내려갈 텐데. 그럼 그간 나의 시공간 속 이야기를 하러 오기가 조금은 더 쉬웠을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한 16년간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지금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기가.


얼마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치료를 하러 간 병원에서 시신이 돼 나오실 줄은 아무도 몰랐던 탓에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이후 49제를 마칠 때까지 가족 모두 아버지의 부재를 온전히 실감할 수 없었다. 우리가 아직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을 남에게 설명하기는 더욱 어려워서 부고를 내지 않고 조촐히 가족장을 지냈다.


병원에서 3일 만에 돌아가셔서 가시는 길이 많이 힘들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응급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실 때만 해도 괜찮으셨는데 장기입원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갑갑증을 내셨다. 코로나에 걸리셨을 때도 일주일은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하룻밤 겨우 버티시고 병실을 뛰쳐나오실 정도였으니 장기입원은 아버지에게 큰 충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에게 바람이나 쐬고 오자며 오른 휠체어에서 앉은 채 거짓말처럼 숨을 거두셨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넋두리를 하셨다.

“복장이 터져 돌아가신 게지. 병원에 갇혀 있을 생각 하니 복장이 터져서.”


상주를 괴롭혀서 슬퍼할 겨를을 주지 않을 속셈인지 장례식장은 남편이 처리해야 할 일로 넘쳐났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남편은 고질병인 어깨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반대로 나는 어깻죽지가 돌처럼 굳어서 스치는 손에도 아팠다. 카페인에 민감하던 신경이 다 죽어버렸는지 피로회복제와 캔 커피를 몇 병씩 들이켜도 각성되기는커녕 피곤함이 짓눌렀다.


장례가 끝나고 남편이 어머니댁에서 일주일 머물다 돌아온 날 밤, 어머니는 혼자 주무시다 잠결에 옆자리가 빈 것을 보고 그만 깜빡해서 “영감이 밤중에 어디 가셨나?” 중얼거리셨다. 동네이웃들을 속일 수만 있다면 어머니는 한동안 아버지와 함께 그냥저냥 잘 지내는 소설 속에 사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평소 아버지는 누구에게 폐 끼치는 걸 몹시 꺼리셔서 자신이 손해 보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는데 며느리라고 예외로 생각지 않으셨다. 들이고 보니 잘하는 게 하나 없는 며느리의 손을 애당초 빌릴 생각도 없으셨겠지만 내가 고작 설거지 따위나 겨우 거들고 있을 때도 본인이 사용한 물 컵을 건네주시지 않고 손수 씻어놓고 가시곤 했다. 생전 어설프게라도 잘해드린 기억이 안 나 이제 뵐 수도 없는데 더욱 뵐 낯이 없어졌다.


결혼 8년 차 되던 해에 내내 건강하시던 아버지께서 뇌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지셨다. 다행히 몸은 성하셨지만 후유증으로 언어기능을 거의 잃으셨다. 성미가 급하셔서 말씀을 못하시면 갑갑해서 어쩌나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아버지는 띄엄띄엄한 말씀으로 관공서 볼일도 혼자 보러 다니실 정도로 적응을 잘 해내셨다.

평소 어머니께서 농담처럼 아버지의 급한 성격이 요즘 시대로 치자면 성인 ADHD라고 타박하곤 하셨는데, 어머니 말씀마따나 좀체 가만히 있질 못하는 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다니시고 시장을 들락거리며 장보기를 즐기셨다.


장애가 있는 노년의 삶을 충만히 누리시던 아버지는 근래 몇 년 사이 하루가 다르게 육신이 노쇠해지면서 조금씩 의욕을 잃어갔다. 자동차운전면허증을 반납하고 마련한 사륜전동스쿠터는 한번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하고 아파트 주차장 한구석에서 주인이 키를 꽂아주기만을 기다리다 도로 팔려갔다. 아침만 되면 신바람을 내며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던 아버지의 운동화는 지난겨울부터 몇 달째 현관만 지키다 끝내 남편의 손에 들려 종량제봉투 속으로 사라졌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한동안 공과금 처리며 아버지명의의 은행계좌, 보험 등을 처리하느라 남편이 골머리를 앓았다. 이곳저곳 도토리를 숨겨 놓고 때론 잊어버리는 다람쥐처럼 아버지는 동전 한 개도 허투루 쓰지 않고 여기저기 쪼개어 남겨서 혼자 살아갈 어머니를 챙겨놓으셨다.


아버지의 49제가 끝나고 어머니는 벌써 두 번째 입원 중이시다. 반려자를 잃은 슬픔은 어머니의 몸 여기저기를 공격하길 서슴지 않고 있다. 자식들은 일상 속에서 조금씩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일을 하고 먹고 자고 웃는다.

그러다 불쑥 그리움이 솟는다. 며칠 전 삼계탕을 해 먹으려고 냉동실을 뒤지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씨를 빼고 말려서 주신 오래된 대추를 발견했을 때처럼 느닷없이. 그럴 땐 가지런한 대추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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