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2106호 (2)

by 하유미



이 시간대에 주의할 일은 한 가지 더 있다. 여자가 작은 남자에게 고함을 지르기도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작은 남자가 학교 간 뒤로 일 년에 몇 번씩 일어나는 일이다. 처음 몇 번은 그냥 내버려 뒀는데 어느 날 이웃들이 ‘아이고 2106호 또......’라든지 ‘어제저녁 2106호에서 나는 소리가......’ 따위의 수근 대는 소리를 듣게 되자 얼굴이 화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내 이름이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보다 모욕적인 일은 없다. 이 부주의한 여자 때문에 더 이상 내 자존심이 상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깨우쳐 주기로 결심했다.



한날 조용한 오전 시간에 아래층 2006호에서 휴대전화 진동소리가 났다. 이때다 싶어 욕실 하수구를 통해 그 소리를 증폭시켰다. 여자는 한참 자신의 휴대전화기를 찾다가 마침내 자기 집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 걸 깨달았는지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날 이후로 여자는 작은 남자에게 고함을 지르기 전 욕실 문을 먼저 닫았다. 한시름 덜었으나 굉장히 부주의한 여자라서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



PM 10:00 세 사람이 잘 준비를 한다. 나도 오늘 하루 마무리 점검을 한다.



첫 번째 항목은 보안이다. 큰 남자가 불안증이 있어서 잘 챙기기 때문에 내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항목이다. 현관문이 잠겼는지, 창문이 닫혔는지, 블라인드는 다 내려져 있는지 따위를 확인한다. 가끔 큰 남자가 선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또 확인을 할 때가 있어서 내가 좀 놀라기도 한다.



두 번째 안전 항목도 오늘은 ‘좋음’이다. 가스밸브는 잠겨 있고 요리 후 켜놨던 촛불도 꺼져있다. 그러나 방심하면 안 된다. 전에도 한번 가스밸브를 잠그지 않고 자러 가려고 하길래 가스누출 경보등을 번쩍거려서 주의를 준 적이 있다.



세 번째 전기 항목도 양호하다. 각 방과 수족관까지 불이 다 꺼져있다. 큰 남자가 선풍기를 틀어놓고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TV는 꺼져 있으니 이 정도면 준수하다.



하루의 점검이 마무리되면 장기계획의 진행상황을 확인한다. 작년 겨우내 진행했던 일은 실패할 위기에 처해있다. 세탁기 뒤쪽 베란다 벽면에 곰팡이가 슬고 있는 걸 여자가 눈치채게끔 하지 못하고 봄이 다 지나버렸다. 봄맞이 대청소 때 벽면 청소를 꿈꾸며 겨울밤마다 곰팡이를 더 번지게 하느라 애썼는데 소용없게 돼버렸다. 이제 내가 써볼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 남았다.



결전의 날은 달력에 적힌 대로 10일 뒤 결혼기념일이다. 그날 저녁은 예년처럼 외식을 하러 나갈 테고 여자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블라우스를 꺼내 입을 것이다. 외출 후 돌아와 그 옷을 빨래 바구니에 던져 넣을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때 힘껏 블라우스를 세탁기 뒤편으로 날려버릴 것이다. 앞서 양말 한두 짝 날리는 시도를 해봤지만 여자는 세탁기를 밀어내고 찾는 대신에 양말을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가장 아끼는 블라우스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다음 날 벽면 곰팡이는 반드시 제거되리라.



장기계획은 몇 달, 몇 년 단위로 이뤄지다 보니 변수가 많아 실패 확률도 높다. 작년 여름에 성공한 권연 벌레퇴치도 2년 전 여름에 한 번 실패하고 이루어낸 것이다. 첫 해에는 벌레를 온 집에 날아다니게 했더니 근원지를 못 찾아냈다. 다음 해에는 신중을 가해 개미가 줄지어가듯이 벌레 사체를 세심히 늘어놓았다. 그랬더니 마침내 썩고 있던 한약재 찌꺼기 뭉치를 찾아냈다. 장기계획은 성공하기 어려운 만큼 성취감도 무척 크다.



AM 12:00 세 사람은 깊은 잠에 들었고 집안은 고요하다. 세 사람이 꾸는 꿈이 흘러나와 집안을 가득 채운다. 나는 그들이 꾸는 꿈을 감상하며 하루의 긴장과 걱정을 내려놓고 편안한 시간을 즐긴다.



큰 남자는 ‘내가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서 이 집이 잘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내가 안에서 잘 챙기고 보살피기 때문에 이 집이 잘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작은 남자는......



나는 세 사람이 각자 마음대로 생각하게끔 내버려 둔다. 내가 이 집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지 굳이 알게 할 필요는 없다. 이들은 내 집 2106호에 잠시 머무르다 가는 사람들이니까. 주인인 내가 손님을 잘 대접해야 하지 않겠는가.



[추신 : 요즘 새로운 고민이 하나 생겼다. 작은 남자가 계속 크고 있다. 이런 식이면 작은 남자가 큰 남자보다 더 커질 때가 금방 올 것 같은데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는, 한때 컸던 작은 남자와 여자와 한때 작았던 큰 남자. 이렇게 세 사람을 불러야 하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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