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by 하유미



입학식 전날 생활관에 먼저 입소를 했다. 아이는 기숙사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우리는 시내에 잡은 숙소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다시 학교로 향했다.

입학식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는 단 한 번도,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13명의 신·편입생 속에서 아이 고개는 땅으로만 파고들어 언뜻 보면 그 자리에 아무도 없는 듯했다.

입학생을 일일이 한 명씩 따뜻하게 안아주는 교장선생님의 모습도, 학부모회장님이 환영 인사말로 읽어준 박노해의 아름다운 시구절도, 일말의 격식도 없이 익살스러운 포즈를 잡으며 열렬한 환호 속에 소개되는 선생님들도 무엇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에게 내리 꽂힌 내 시선은 굳은 얼굴 표정을 훑으며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미안한데 이건 내가 견딜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나 포기할게.”


그렇게 말하는 아이를 떼어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1박 2일에 걸친 입학식과 긴 운전에 지친 우리는 각각 침대에 소파에 쓰러졌다. 이불을 덮어쓰고 눈물을 찍고 있으니 밖에서 소주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도 눈물을 훔치고 있으리라 짐작되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러 일어날 기운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아이도 이제는 자기 잘 곳이 된 낯선 침대 위에서 눈물을 참고 있을 것이다. 우리 셋은 살면서 난생처음으로 떨어져 각자의 공간에서 웅크려 눈물을 삼켰다.


전교생이 생활관 생활을 하는 학교 규정상, 월요일 등교를 하면 휴대폰을 선생님에게 내고 토요일 일과가 끝나는 저녁에 돌려받는다. 그 사이 아이들은 학교 내 공중전화로 집에 연락을 할 수 있다.

이틀이 지났는데 아이에게서 연락이 없다. 첫날밤에 바로 우는소리로 전화가 올 줄 알았는데 그제도 어젯밤에도 목 빠지게 기다렸지만 전화가 오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으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선배 학부모들은 다들 아이가 견딜만하다는 좋은 조짐이라고 위로했지만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Don’t look back and move on!

아이에게 해 준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어본다.


교장선생님의 환영사 중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계속 떠돌아다닌다.

‘새끼사자를 절벽 아래로 떠민 어미의 심정으로 아이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 내손으로 떠밀었다. 스스로 단단하고 충만한 삶을 살라고, 세상 속에서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어 자유로운 삶을 살라고 먼 땅으로 아이를 내몰았다.


그러나 아직 아이에게 세상은 멀고 코앞에 닥친 것은 고난뿐이다. 편하게 먹고 자고 싸던 일이 하루아침에 전부 문젯거리가 되었다. 육식을 포기해야 하고, 좁은 공간을 타인과 나눠 써야 하고, 엉덩이를 데워주고 씻겨줄 비데도 없다. 먼 미래에 자유인이 되고 자시고 간에 지금 당장 이 감옥에서 탈출하고픈 마음만이 가득할 테다.


그걸 견디며 마음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혹독한 겨울을 난 만큼 나이테가 하나씩 느는 나무처럼 아이는 조금씩 성장할 것이다.

그걸 지켜보는 동안 나 역시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마음으로는 걱정되고 보고 싶어서 벌벌 떨면서도 괜찮은 척을 해야만 한다. 남편이란 작자가 나보다 더 벌벌 떨고 있으니 말이다.

가만, 올해 신년운수에 척쟁이 백조신세가 될 거라더니 그 타로점술사 용하다 싶다.


아이를 보내고 매일 아침 아이 방에서 기도를 한다. 비합리적인 믿음에 대한 절대 신뢰값이 0에 수렴하던 사람이 두 손을 모은 모양새가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마음만은 여느 신앙인 못지않게 간절하다.


민기가 어제 하루 무사히 보내어 감사합니다.

스스로 단단하고 충만한 사람이길 바랍니다.

세상 속에서 주인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길 바랍니다.

지금껏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음을 압니다.

민기가 오늘 하루 성장통 속에서 또 한 뼘 자라며 건강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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