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부석 1과 2는 한 손에는 맥주 캔을 한 손에는 각종 분비물을 닦을 휴지를 움켜쥐고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 꼬마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이제는 알아듣지 못할 혀 짧은 소리로 재잘거리고 있었다.
눈을 쉴 새 없이 문지르며 망부석 2가 말했다.
“있지, 영상을 보다 깨달았어. 내가 꼬맹이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알아?”
“뭔데?”
“지지, 하지 마...... 아직 아기한테 왜 그랬을까.”
코를 문지르느라 손이 바쁘던 망부석 1이 답했다.
“그걸 이제야 알다니.”
예전에 글쓰기 반 친구 분은 내 글 한편을 읽고 우리 집 사정을 단박에 알아채셨다.
“이 집은 애가 아빠를 봐주고 있네.”
태생적으로 아이는 나를 닮아 느리고 남편은 성미가 급했다. 우리로서는 가랑이가 찢어지게 따라가는데도 남편은 울화통이 터질 지경에 이르기가 다반사였다. 저 사람만 아니라면 아이를 단 일분이라도 더 기다려 줄 수 있는데, 하는 마음이 들 때면 남편을 향한 원망이 치솟아 저 사람은 저 인간으로 변모하기 일쑤였다.
아이가 좀 더 커서 말이 통하게 되고는 전략을 바꾸었다. 기질적으로 나와 한통속인 아이에게 아빠를 이해시키는 편이 더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를 적은 글을 읽고 저런 말씀을 한 것이다.
망부석 1이 아무리 속상할 때마다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았기로서니 망부석 2가 저렇게 감쪽같이 몰랐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때 둘 사이에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나한테 사과해.”
“미안해.”
“평생 사과해.”
“그래.”
둘은 맥주를 홀짝거리며 다시 영상으로 향했다. 꼬맹이는 유치원복을 입기 싫어서 등이 가렵다고 칭얼거린다. 지지를 남발하는 아빠가 어색해서 엄마 등 뒤에 숨는다. 꼬맹이를 바라보는 나는 몹시 지친 표정이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야 보인다.
나 역시 꼬맹이에게 좋은 엄마는 아니었나 보다. 이런 하자덩어리 우리를 좋은 부모라고 생각해 준 꼬맹이에게 딱 한 번만 돌아가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꼬맹아, 우리를 부모로 태어나게 해 줘서 고마워. 실수투성이라 미안했어.’
그 꼬맹이가 무럭무럭 자라 2차 성징이 올만큼 다 온 큰 몸이 되어 집을 떠났다. 이제 이 집은 아이가 지칠 때면 언제든지 돌아와 쉬어갈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망부석 역할을 충실히 할 테고.
망부석 2가 담요에 코를 파묻더니 아이 냄새가 난다며 오열을 시작한다.
세상에, 사춘기 페로몬 냄새에 절은 물건에 저렇게 환장할 일인가.
상사병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망부석 1이 영상을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