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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May 07. 2024

정의론

8,9차 common asset



<정의의 두 원칙>


첫째, 자유의 원칙 ; 평등한 기본적 자유에 대하여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둘째, 평등의 원칙(사회 경제적 불평등의 허용) ; a)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이익이 되게끔 이루어져야 한다. b)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 아래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직책과 직위가 결부되어야 한다.

*최소 수혜자 : 사회적 자연적 우연성의 이득을 가장 적게 갖는 계층.


이 중 두 번째 불평등의 허용(분배)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알아본다.

공정한 기회균등을 통해서 사회적 우연성의 영향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가족 제도가 존재하는 한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짜디짠 사회제도를 통해 찔끔 보상받는 취약계층과 집안 대대로 쌓은 부와 노하우로 총알을 무한충전하 계층 중 어느 쪽이 화력이 셀지는 구태여 붙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좋다, 사회적 우연성의 편향성을 보상할 수 있다는 주장은 그나마 누더기 같은 모양새라도 갖추었다 치자.

타고난 자연적 우연성은 어떻게 보상할 건가.

더구나 요즘 세상에 천부적 능력과 재능이 있다한들 그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한 현대인이 있을까. 하늘이 내린 인재라도 돈의 신의 도움이 없이는 제 기량을 펼치기어려운 현실이다.

talent의 어원인 달란트가 고대에 화폐단위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현대에 안성맞춤으로 투영된다. 달란트가 없이는 달란트를 꽃피울 수 없는 세상이다.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의욕 그 자체까지도 행복한 가정 및 사회적 여건에 의존한다.’

‘직위에의 접근에 제한을 받은 이들의 불평이 정당한 이유는 단지 그들이 부나 특전과 같이 어떤 직책이 주는 외적 보상으로부터 제외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유능하고 헌신적으로 수행하는 데서 오는 자아실현의 경험을 저지당했다는 데에 있다. 그들은 인간적인 가치의 주요 형태 중 하나를 박탈당한 것이 된다.’

이런 구절들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속마음 같이 아프게 읽힌다.





<common asset>


‘차등의 원칙은 천부적 재능의 분배를 공동의 자산으로 생각하고 그 결과에 상관없이 이러한 분배가 주는 이익을 함께 나누어 가지는 데 합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자신의 보다 큰 천부적 능력이나 공적을 사회에 있어서 보다 유리한 출발 지점으로 이용할 자격은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몇 가지 당부를 반복적으로 해왔다. 내 입장에서는 교육이라 쓰고 아이는 잔소리라 읽는 그것은 매너와 유머가 있는 사람이 되기,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착하게 굴기이다.

마지막 한 가지는 혹시 어떤 분야에 재능을 발견하게 되면(그럴 싹수가 별로 없어 보여서 쉽게 한말이지만) 그건 온전히 자신 몫이 아니니까 나누어 쓰기이다. 당연히 그런 말을 해줄 때 존 롤즈를 몰랐고 차등의 원칙이공동의 자산이니 하는 개념도 머릿속에 없었다.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되었을 뿐이다.

존 롤즈가 자식을 낳아 육아를 해보았다면 애써 빡빡한 이론을 통하지 않아도 절로 터득하게 될 것이었는데 안타깝다.

부디 아이가 혜택을 받기만 하기보다 나누어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욕심부려 바라본다.


존 롤즈는 구체적으로 한발 더 나아간다.

‘천부적으로 혜택 받은 사람들은 그들이 재능을 더 많이 타고났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는 이득을 볼 수 없으며 훈련과 교육비를 감당해야 하고 불운한 사람들도 도울 수 있도록 그들의 자질을 사용해야 한다.’


저 구절을 읽으며 내겐 당연하게도 손흥민 선수가 떠올랐다. 실명의 위험을 감수하고 국가대표 주장으로 경기에 뛰는 것은 개인의 명예를 뛰어넘는 막중한 책임감이다. 팀플레이어인 그는 인터뷰에서 항상 개인의 성취보다 팀의 성과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경기에 뛰지 못하는 후보 선수들을 먼저 챙긴다. 팬들에게 받은 관심과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모색하는 모습에서, 그가 자신의 재능을 공동 자산으로 여기고 자신이 받은 사회적 혜택을 보상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임을 엿볼 수 있다.

팬으로서 나의 SNS프로필 사진이 아주 오랫동안 손흥민 선수의 사진이었던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여담이지만 현재 축구협회의 무능으로 국가대표 축구팀이 박살 나는 중이다. 받은 게 많았던 축구인들이 이제 그만 함구를 떨치고 축구계에 쓴소리를 퍼부어 갚아야 할 때이다.


존 롤즈가 말하는 정의의 두 원칙은 평등주의적 정의관을 표현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딱딱한 이론 때문에 자주 작가에게 정이 떨어지는 위기에 봉착하지만 평등한 자유를 사회이론으로 만들고자 했던 저 뚝심 하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공정한 정의란 ‘나 손해 보기 싫어’라는 거류민의 뜻에 불과하다는 김상봉 선생님의 감당하기 벅찬 말씀에 충격이 커 아직도 다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공정으로서의 정의도 모르면서 시민노릇을 할 수는 없으니 책에 코를 박을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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