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20년 가까이 돼 그밖에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많이 희미해졌다. 그나마 또렷이 남은 기억은 돌아가시기 전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계시던 모습이다. 할머니는 예순 살 즈음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고 긴 투병생활을 하셨다. 전혀 회복하지 못하시고 점점 악화만 돼 마지막 몇 년은 갓난아기처럼 눈만 깜빡이며 누워 계셨다. 그때만 해도 요양시설이 지금처럼 일반화되지 않았었는데 설령 그랬다 해도 미련한 엄마는 그런 수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직접 할머니 똥오줌 뒤처리를 했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부터는 음식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셔서 엄마는 요구르트에 미숫가루를 타서 한 숟가락씩 입 안으로 흘려 넣어 드렸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눈물도 소리도 없었지만 항상 울고 있는 표정이었다.
내가 대학생 때였는데 방학이라 집에 오면 가끔씩 할머니 요구르트 식사를 맡았다. 그건 아주 지난한 일이었다. 1시간씩 걸려도 몇 모금 못 삼키셨고 그즈음엔 할머니께서 드시는 걸 거부하셔서 더 힘들었다. 입을 꼭 다물고 있는 할머니와 실랑이를 하며 한 숟가락 입안으로 겨우 떠 넣으면 흘리는 게 절반이었다. 무엇보다 고역이었던 건 음식이 입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우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온몸으로 살기를 거부하셨다.
한 날은 할머니와 실랑이에 지쳐 짜증이 좀 났던 바람에 조심성이 없었던지 숟가락 끝에 이빨이 걸려 할머니 앞니 한 개가 부러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러진 게 아니라 삭아서 폭삭 주저앉았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나는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엄마는 벌써 몇 개째 주저앉은 할머니의 이빨을 입안에서 빼냈다고 했다. 그로부터 얼마 안 돼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6년간 투병생활이 할머니의 뼈와 살을 녹여버려서 염을 하고 난 할머니는 한 줌 밖에 돼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한참 동안 부러진 이빨이 자꾸 떠올라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스루메’ 편을 다 읽었지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할머니를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방학 때 동생과 둘이서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엄마 잔소리가 없으니 며칠씩 제대로 씻지 않아서 이가 누렇게 되고 머리에는 이가 버글거렸다. 그런 못난 짓을 해도 할머니는 우리가 마냥 예뻐 보였는지 한 번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내 긴 머리가 무거울까 봐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셨던 할머니.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완벽한 내 편이었다.
할머니가 ‘수루메’를 기억해 줘서 좋아하실까?
아마 그럴 것 같다. 엄마가 된 지금 내게도 어릴 적 그 웃음, 아무런 편견 없이 너를 사랑한다는 그런 웃음을 지어 주실 것 같다.
아이가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나를 불렀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벌써 어둑어둑하고 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날씨 탓인가. 수루메가 먹고 싶어 졌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오늘 저녁엔 수루메 먹자.’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남편과 그저 맛있는 음식인 줄 알고 ‘수루메!’를 외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코끝이 찡해왔다.
참조 : 기억이 오래되어 헷갈린 듯하다. 할머니께서 수루메라 하신 건 문어가 아니라 오징어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