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달부터 아이가 독서 수업을 다니고 있다.
아이는 시큰둥했지만 내 욕심으로 등 떠밀어 시작한 수업이라 다녀오면 나도 모르게 아이 눈치를 살피게 된다.
그런데 의외로 첫날, 아이가 신나서 돌아왔다.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조심스레 수업이 어땠냐고 물어보았다.
“재밌었어. 안 갔으면 아쉬울 뻔 했지 뭐야. 간식도 주시고. 아이스티랑 오레오도 먹었어.”
나는 수업 첫 주에 마침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를 간식으로 먹는 행운이 따랐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매주 1회 수업인데 격주로 자기가 읽고 싶은 책과 지정도서를 번갈아 읽고 수업시간에 이야기를 나누며 짧은 글을 써보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하필 태권도 수련 시간과 독서 수업이 연달아 있는 바람에 아이가 운동을 마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수업에 가면 힘들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기우였을까. 두 번째 수업을 갔다 온 아이 표정이 아주 밝다. 덩달아 이번 주 수업은 어땠는지 한껏 기대가 되었다.
“응, 정말 재밌어. 가길 잘했어. 오늘은 팝콘을 주셨어. 그런데 어떤 친구가 한 주먹씩 집어먹더라. 그건 좀 매너가 아니지 않아? 그치?”
그렇게 둘째 주 수업에 팝콘을 나눠먹는 매너가 조금 부족한 친구가 반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번의 수업이 지나고 나니 아이가 잘 적응할까 하는 걱정은 완전히 접게 되었다. 오늘은 수업 이야기를 좀 해 주려나,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나 현관을 들어서는 아이 발걸음이 가볍다.
“우와, 오늘은 꽈배기를 주셨어. 대박.”
딱 한마디 하고는 쌩하니 놀러 나가 버렸다.
그렇게 셋째 주 수업에 대박 간식으로 꽈배기를 먹었다는 사실만을 알게 되었다.
그다음 주 수업을 마치고 온 날.
오늘은 작정하고 수업 내용을 좀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떤 책을 읽고 오는지, 그중에 관심이 가는 책이 있었는지, 너는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등 물어볼 목록을 차례로 꼽아보았다.
오늘은 아이보다 선수를 치리라.
“친구들은 어떤 책을 읽고 왔어? 뭐 재미나 보이던 책은 없었어?”
옳지. 잘했어. 이야기가 딴 데로 샐 틈을 주지 말아야지.
그런데 뜻밖에도 아이가 책 이야기를 줄줄 하지 뭔가.
“나는 ‘전천당’이 길어서 그중에 가장 재밌었던 이야기를 하나 골라서 발표했어. ‘선생님이 사라지는 학교’랑 ‘우리 동네에 혹등고래가 산다’가 재밌어 보이고, 또 ‘지렁이 똥 훔치기’, ‘사투리의 맛’, ‘하늘을 나는 말’......아! ‘우동 한 그릇’을 읽은 친구도 있었어. 우동 맛있는데. 우동 먹고 싶다.
엄마, 오늘 저녁에 우동 사 먹을까?.”
“......”
넷째 주 수업에는 책이 식욕도 돋운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동 한 그릇.
어릴 적 감명 깊게 읽은 책이다. 얼마 전 어떤 분의 소개 글을 보고 다시 읽어보았는데 내가 커서 그런가 어릴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었다.
늦은 저녁 우동 집에 한 부인이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와서 우동을 한 그릇 시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눈에 형편이 어려움을 눈치챈 주인 부부는 세 모자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 끝에 몰래 1인 분에 반 덩이를 더 넣어서 한 그릇을 만들어 내어 준다.
진정한 배려란 어떤 것인가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는 이제 보니 장자의 철학에 맞닿아 있었다.
'상대방의 삶의 방식을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배려를 할 수 있다.'
그것은 신영복 선생님께서 관계의 최고 형태라고 말씀하신 '입장의 동일함'과도 연결된다.
얼마 전 내가 쓴 글 속 생각과 겹치면서 어릴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생각거리를 떠올리게 되었다.
독자가 성장할수록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훌륭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훌륭한 이야기는 그날 저녁 우리 집 식사 거리마저 해결해 주었다.
정말 유익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더니 우리 집 아이에게는 말 그대로 정말 양식이 되고 있다.
눈 떠 있는 모든 시간이 배고픈 우리 집 아이.
이러다 ‘책 먹는 여우’ 작가 프란치스카 비어만이 ‘책 먹는 아이’를 속편으로 쓰자고 덤빌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