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아파트 경비원이 되다.

by 하유미



장자, 아파트 경비원이 되다



도서관에 갔더니 이런 책이 있었다.

가만, 장자라면 공자 맹자와 세트로 등장하는 노자 장자 할 때 그 장자?

장자가 아파트 경비원이 되다니. 재밌을 것 같았다.

철학을 소설로 풀어낸 아이디어가 참신했고 더불어 저자의 엄청난 내공이 느껴졌다. 아이가 읽기에 분량이 제법 되어서 잠시 고민하다가 이야기가 재밌으면 빠져서 읽기도 하니까 일단 빌려와 봤다.

그날 저녁 내내 책을 보던 아이가 다 읽었는지 책을 탁 덮더니

"와~와~엄마 이 책 읽어봐. 무슨 말인지 다 이해는 못하겠는데 정말 재밌어. 내 인생 책이야."라며 적극 추천해준다.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인생 책이라니. 큭큭’

그래 11살 인생 최고의 책이 얼마나 재밌는지 읽어 보마, 며칠을 벼르다 어젯밤에야 펼쳐보았다.



후기를 한 줄로 쓴다면, 나는 단박에 장자에게 매료되어 버렸다.

나는 인문고전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당연히 장자의 철학도 모른다. 하도 유명해서 뜻도 모르고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하는 호접지몽 이야기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다. 역시나 뜻도 모르면서 노장사상이니 무위자연이니 하는 말을 들어보았다.

책 속 아파트 경비원 할아버지의 입을 빌려 장자의 철학을 주민들에게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알려주는 이야기는 아주 재미있었다. 장자의 철학에 대한 윤곽을 잡아주었으니 관심이 생긴다면 장자의 책을 다양하게 보태 읽으며 넓고 깊게 안을 채워나가면 될 것 같았다.



책을 읽는 내내 장두루 할아버지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푹 쑤시는 기분이었다.

어느 이야기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특히 유명한 조삼모사 이야기가 나오는 <제물론>에서 따온 ‘2장 만물은 평등하다’를 읽는데 카운트 어택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책 속 한 구절을 짧게 옮겨본다.



“그러니 이제 너도 강자를 부러워하지도 말고, 약자를 불쌍히 여기지도 마라. 서로 평등한 존재로 보고 평등하게 대접해 주면 그뿐이야. 너 혹시 이 할아비가 늙고 경비원으로 일한다고 불쌍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저자는 이 이야기를 마지막에 이렇게 풀어놓았다.



'나 아닌 다른 것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 나 중심이 아니라 만물을 평등하게 바라보고 대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에 도달하는 길이다. 자유 없는 평등은 억압이다. 평등 없는 자유는 방종이다.'



한 대 회초리를 맞은 듯한 기분으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가 며칠 전 내가 좋아하는 오색 달팽이님의 블로그에서 본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 떠올랐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입장의 동일함’과 장자의 ‘만물을 평등하게 바라보고 대접하는 것’이 서로 겹치면서 깨닫게 되었다.

누가 철학자를 신소리나 하는 할 일 없는 자로 표현했을까. 철학은 실천하라고 하는 것이고 철학자는 현실 한가운데서 깊게 실천을 고민하는 자들이다.



책을 읽는 동안 뜨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배경이 아파트이다 보니 내 모습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과연 나는 아파트 주민이라는 갑질을 한 적이 없었던가.

내가 편하게 지내는 대신 누가 내 몫의 불편함과 힘듦을 감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경비원 아저씨, 청소원 아주머니, 택배 기사님, 관리소 직원분들.

여러 사람의 얼굴이 생각났다.

나는 과연 이 사람들과 입장의 동일함으로 관계를 맺고 지내왔던가.

나는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머리 좋은 것과 마음 좋은 것 사이 어디. 관찰과 애정 사이 어디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거기 어디쯤 자꾸 머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고민에 잠을 설쳤다.



[추신 : 이 자리를 빌려 책을 적극 추천해준 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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