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고 짜고 단거

by 하유미



흑당 음료를 마셔보았는지?

<트렌드 코리아> 선정 2019년 10대 트렌드 상품에 ‘괴식 및 이색식품’이 뽑혔는데 그중 대표적인 음식이다.

나처럼 트렌드와 동떨어진 사람도 도대체 저게 뭔가 싶어서 한 번 먹어보았으니 올해 도심의 거리를 지배했던 간식으로 뽑힐만하다.

올여름 카페란 카페는 죄다 흑당 음료를 팔길래 더운 여름날 흑당 라테를 호기심 반으로 사서 마셔보았다. 기대하며 한 입 먹는 순간 순식간에 뇌까지 치밀어 오르는 극강의 단맛을 느꼈다. 벌써 입맛이 노화하여 단 것을 많이 못 먹는 나는 세 입을 도전하지 못하고 버렸던 기억이 있다.

도대체 이런 걸 왜 먹는 거지?

나에게는 ‘이런 것’이란 푸대접을 받는 음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맛있는 것’으로 후한 대접을 받는 걸 보니 사람 입맛이 정말 다양하긴 하나보다.



내가 입맛이 변한 탓도 있을 것이다. 나도 어릴 때는 달고나를 해 먹는데 열을 올렸었고(그 흑당이란 게 달고나 맛이랑 비슷했다.) 한겨울에도 이가 시린 줄 모르고 아이스크림을 먹어댔었다.

임신하기 전까지는 입안이 얼얼하다 못해 귀까지 먹먹해질 정도로 매운 음식도 먹으러 다녔다. 임신과 수유로 인해 몇 년간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면서 혀가 속세의 찌든 때를 벗는 바람에 지금은 아들에게도 밀린다.(아들은 불닭 볶음면 정도는 매운 걸로 쳐주지도 않는다!)



우리 집 두 남자는 먹는 것에 관심이 많다.

여행을 갈 때 큰 남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근처 맛 집 검색이다. 작은 남자는 맛있는 녀석들이란 TV 먹방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둘 다 다행히 입맛이 예민한 편은 아니라서 내가 해 준 음식도 잘 먹지만 당연히 외식을 좋아한다.

근데 외식이란 게 뭐든 먹자고 나서지만 막상 고를라치면 특별히 먹을 만한 게 없다는 게 늘 고민거리다. 메뉴도 그렇지만 내 입맛에는 대부분 맵고 짜고 달다.

단순히 내 입맛이 노화한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원재료를 해치지 않고 풍미를 살려주는 역할이 아니라 주객이 전도되어 재료 불문 그냥 매운맛 짠맛 단맛이 음식 맛을 지배한다.

원재료 고유의 맛을 하나도 느낄 수 없는 음식이 돼버려서 나 같은 사람은 입맛을 버렸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더 매운 거 더 단거를 찾는다고 하니 사회적 현상으로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트렌드 코리아 2020> 책에 이러한 현상에 대한 분석과 설명이 잘 돼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다.



최자 개코 힙합듀오가 아홉 번째 정규앨범을 들고 왔다. 수록곡 중 아홉 번째 트랙 제목이 ‘맵고 짜고 단거’이다.

‘낭만은 가고 쾌락만 남았지. 의미는 가고 껍질만 남았지. 향기는 날아가고 자극만 남았지. 다 막히고 뚫린 게 입이라 자극만 탐하지. 더 맵게 더 짜게 좀 더 달콤하게. 뻘뻘 땀을 흘리면서 먹을 때. 비로소 나는 무료함의 벽을 깨.’

자칭 힙합 씬의 송대관과 태진아는 이렇게 젊은 세대를 이해한다.

우리 세대가 아이들을 자꾸만 무언가 더 요구하는 사회에 밀어 넣은 게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편치 않다.



‘웬만하면 맵고 짜고 단거. 이왕이면 맵고 짜고 단거’를 외칠 수밖에 없는 팍팍한 사회에 머지않아 나도 내 아이를 밀어 넣어야 된다.

무엇이든 덜 요구하는 세상이 올까. 간을 덜하고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싱거운 세상이 올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턱도 없는 고민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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