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산책에 관한 멋진 글을 읽었다. 서동욱 작가의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의 한 구절이다.
“산책에는 삶의 중요한 진실이 있다. 산책에는 단조로움과 새로움이 결합해 있다. 늘 똑같은 길로 들어서지만 그것은 늘 새로운 하루이다. 이것이 일상의 구조 자체라는 것, 반복이 새로움의 조건이라는 것은 산책의 귀중한 동반자인 우리 집 강아지가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다. 매번의 산책이 세상에서의 첫날인 것처럼 구름이는 너무 신나서 걸어간다. 산책이 그렇듯 반복이 새로움이 아니라면, 일상은 그저 형벌일 것이다.”
일상과 산책의 결이 맞닿아 있다는 통찰에 감탄을 하며 할 수만 있다면 저 구절을 통째로 암송하고 싶어졌다.
어떤 일상 전문가도 저렇게 현대의 개를 통해서보다 일상의 참뜻을 명료하게 짚어내지 못할 것이다. 개는 일상 속에서 ‘매번 세상에서의 첫날인 것처럼’ 반복적으로 산책의 맹목성을 몸소 구현해내고 있다.
미술사시간에 쟁이와 미술가의 차이를 들었다. 배운 대로 그리면 쟁이가 되고 차이를 만들어 내면 미술가라 할 수 있는데 차이의 반복이 새로움을 만들어낸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때 또 도쿄 화장실 청소부가 떠올랐다. 그는 매일 아침이 세상에서의 첫날인 것처럼 미소를 짓는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차이를 만들어낼 줄 아는 예술가인 그는 그날의 날씨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어떤 날씨라도 자신의 날씨로 바꿀 줄 아는 철학자는 궂은날도 맑은 날로 바꾸는 일상의 마법을 자연스레 일으키는 법이다.
하루가 바깥 날씨만큼이나 가라앉아있다. 어제저녁 엄마와의 통화에서 불쑥 짜증을 내고 나서 마음이 무겁다. 오늘은 오늘로써 시작해야 한다. 어제로부터 시작한 하루는 종일 무겁게 느껴진다.
거기에 오후 5시에 낮잠 자는 아이를 깨우러 갔다가 퇴짜를 맞고 나와 마음이 더욱 심란하다. 새로움을 만들어 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아이의 일상은 형벌처럼 보이기는커녕 단조로움에서 오는 평온함마저 느껴진다. 잠과 휴대폰뿐인 간결한 삶.
무지개색 날씨인지 먹구름이 낀 날씨인지조차 구분이 안 가는 아이의 일상을 지켜보며 아직 날씨를 바꾸는 마법을 익히지 못한 미숙한 인간인 나만이 장마 속에 들어있다.
산책이 필요한 시간이다.
여기까지 쓰고 글을 마쳤는데 실컷 자고 일어나서 저녁밥을 먹고 난 아이가 태연히 산책이나 해볼까라며 저녁바람을 쐬러 나간다.
날씨를 못 바꾸는 건 정말 나뿐이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