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을 주고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받다
아킬레우스는 비통함에 빠져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파트로클로스의 무덤 주위로 끌고 다닌다. 헥토르의 시신을 욕보이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신들은 테티스를 통해 그 뜻을 아킬레우스에게 전한다. 트로이의 왕에게 몸값을 후하게 받고 시신을 돌려주라고.
한편으로 제우스는 프리아모스에게 사자를 보내 함선들 사이를 지나 아킬레우스에게 무사히 데려가줄 안내자로 아르고스의 살해자, 헤르메스를 보낼 테니 준비하라고 이른다.
헤르메스가 아카이오이족 병사들을 잠들게 한 덕분에 프리아모스는 아무도 모르게 훌륭한 보물들을 실은 전차를 이끌고 전령과 단둘이 아킬레우스의 막사에 도착한다. 자기 아들을 죽인 자에게 시신을 내달라고 눈물로 간청을 하고 마침내 아킬레우스의 마음이 동요하여 둘은 헥토르의 장례식이 치러질 동안 휴전 합의를 맺기로 하고 음식을 먹고 잠에 든다.
동트기 전 헤르메스의 안내로 재빨리 적진을 빠져나온 프리아모스는 성으로 돌아와 헥토르의 장례를 치른다. 온 도성의 백성들이 깊은 슬픔에 빠졌다.
<독후감>
아들의 시신을 되찾아오기 위한 아버지의 애끓는 사랑 이야기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아버지는 목적을 위해 돈도 명예도 다 내려놓는다. 죽은 자식의 몸이라도 찾아오겠다는 집념 앞에서 자기 아들들을 수없이 죽인 남자의 두 손에 입을 맞추는 치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이처럼 수치스러운 이야기는 2천여 년이 지나 멀리 동아시아에서 반복된다. 큰 나라들에 에워싸여 바람 잘 날 없던 작은 나라의 한 왕이 삼전도에서 그런 굴욕을 당했다. 아킬레우스의 무릎을 부여잡은 트로이왕은 단 한 가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이마를 내준 삼전도의 왕은 무엇을 얻었을까. 이후 백성들이 겪은 고난과 조선의 쇠락을 생각해 보면 후대에 아픈 손가락 같은 삼전도비의 초석을 깐 것 말고는 말 그대로 한갓 굴욕에 지나지 않은 몸짓으로 기억된다.
간장이 끊어질 듯한 부성애는 친구를(혹은 연인을) 잃은 슬픔과 통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상실감을 똑같은 울음으로 풀어냈다. 순수한 슬픔은 피아를 구분하지 않았다.
아킬레우스가 프리아모스에게 말한다.
‘우리의 슬픔은 마음속에 누워 있게 내버려 둡시다. 신들은 비참한 인간들의 운명을 정해놓으셨소. 괴로워하며 살아가도록. 하나 그분들 자신은 슬픔을 모르지요.’
시기질투를 일삼고 권모술수에 능하고 토라지고 화내기를 일삼는 지독하게 인간적인 그리스의 신들이 단 하나, 슬픔의 감정을 모른다는 것은 철학적 질문으로 다가온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슬픔을 알기 때문이라는 걸까. 슬픔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지만 슬픔을 모르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단순한 명제 하나를 얻었다.
슬픔을 잊은 사람들이 흔한 세상이다. 수많은 목숨이 희생된 참사 현장에서 우두머리집단이 책임은 고사하고 해괴한 언행을 자행하는 모습이 미디어에 고스란히 공개돼 선량한 시민들을 무참히 공격해대는 사회이다. 슬픔을 모르는 자들은 인간성을 상실한 좀비와 같다. 좀비 영화를 볼 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슬픈 감정을 뉴스를 보며 연일 느낀다.
헥토르의 장례식을 읽어 내려가며 눈물이 차올랐음을 털어놓는다. 하데스의 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있어 한 나라의 기대와 흠모를 받았던 인물이나 한 가족의 사랑과 애정을 받았던 사람이나 대함에 있어 차별이 없다.
먼 길 떠난 친구를 아직 배웅 중인 마음이 헥토르의 장례식에 한참 머물렀다.
*일리아스 독후감을 아주 오래 걸려 마쳤습니다. 마지막 한 권을 쓰지 않은 걸 잊고 있다가 어느 독자 분께서 독후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셔서 완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소중한 필명은 익명으로 합니다)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