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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통

by 하유미



위통이 가라앉자 눈물이 쏟아졌다. 안방에서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옆방에서는 게임에 몰두한 아이의 고함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위벽이 뜯기는 듯한 고통 사이로 집요하게 외로움이 파고들었다. 우리는 가족이다. 이게 현실이다.


사건의 발단과 전개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결혼생활 20년 가까이 겪은 남편의 무심함은 서운해 하기 새삼스럽고, 방학 내내 뒤바뀐 밤낮으로 뒤죽박죽이 된 아이 일상이 그날 저녁이라고 더 유별날 일도 아니었다. 결국 가뜩이나 평소 소화기관이 좋지 않은 주제에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용을 쓰고 밥을 먹은 나의 실수였다.


새벽에 두 시간을 끙끙대다 일어나 약통을 뒤져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소화제 한 병을 찾아냈다. 장기 중에 위장만 살아있는 것처럼 온 신경이 거기로 쏠려 있다가 약을 먹고 좀 진정되고 나니까 헛헛한 마음이 밀려왔다.

친구를 보내고 나서 나는 요즘 천천히 심리적 고독사를 겪고 있는 기분이다. 그간 어디에도 뱉지 못하고 쌓인 말들로 오늘 단단히 체한 것만 봐도 그렇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임금님 코는 돼지 코라고 흉을 보고 비밀을 털어놓던 대나무 숲이 영영 사라졌다. 이럴 거면 한 곳에만 숲을 크게 만들 게 아니라 작은 숲을 여기저기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한 번 마음을 내준 그 숲이 너무 좋아서 다른데 곁눈질하지 않고 계속 넓혀가다 보니 십 년이 지나버렸다.


수많은 이야기가 묻힌 그 숲은 이제 구만리 밖 상상 속에 있다. 대나무가 잘려 나가고 텅 빈 자리를 홀로 서성이며 자꾸 마음을 베인다.

아침 일찍 병원을 다녀와서 침대에 누워있으니 아이가 ‘아파?’라고 한마디 건넨다. 주방에서는 남편이 죽을 끓인다고 부산하다. 그래도 가족이라고.

전에 동생에게 배우자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남편에 대한 하소연을 했더니 해준 말이 떠올랐다.

“언니, 남편한테 그런 걸 기대한단 말이야?”


앞으로 대나무 숲 한 개도 없이 늙을 생각을 하니 막막함에 다시 위가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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