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없는 밤이 내겐 불금이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나와 넷플릭스에 찜해두었던 영화를 보며 여유를 마음껏 즐길 생각이다. 태블릿 피시를 들고 식탁에 앉으니 등 뒤로 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창 너머로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경쾌하다.
한창 영화에 몰두해 있는데 느닷없이 코 끝에 연기 냄새가 스쳤다. 탐지견도 울고 갈 내 후각 센서가 비상상황을 인지하고 이미 콧구멍을 최대치로 확장시켜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담배 냄새가 분명했다.
이것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된 나는 이제 비슷한 류의 냄새 이를테면 커피 찌꺼기 같은 냄새에도 후각 경보가 울려댔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흡연자들은 계속해서 태연히 우리 집 창문으로 폭탄을 던져 넣었다. 참다못해 창밖으로 고함을 질러보지만 그래봤자 타격은 자신만 입는 실로 외로운 고함이었다. 두통이 올라왔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 빌런이 튈세라 당장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저 밤늦게 죄송합니다. 106동 201호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필로티에서 계속 담배 냄새가 올라와서요."
"아, 경비실에 순찰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한두 번도 아니고 너무 괴로워요."
"그러시죠, 압니다."
"저, 제가 글을 한 장 써서 엘리베이터에 붙여도 될까요?"
"괜찮습니다. 써서 내일 방문해 주시면 도장 찍어드릴 테니 부착하세요."
"감사합니다."
공식적으로 허락도 받았겠다, 이참에 담배를 거꾸로 물 정도로 살벌한 경고문을 써줄 테다.
더 이상 참지 않아. 아무도 말리지 마.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이 분노로 타올랐다.
[106동 입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201호 주민입니다.
엘리베이터 이용이 적다 보니 그간 같은 동 이웃분들을 뵐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얼굴을 다 뵙지는 못했지만 어려운 말씀과 부탁을 드리려고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녁 무렵에는 날씨가 제법 선선해져서 창문을 열고 생활하기 좋은 계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1호에 살면 이렇게 바람이 좋은 멋진 계절에 자주 괴롭습니다.
필로티에서의 흡연으로 인한 담배 연기 때문입니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들어온 담배 냄새는 한참 동안 집안에 머물며 사라지지 않아 견디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가족 모두가 비흡연자이다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속이 메스껍고 두통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흡연하는 입장에서는 어쩌다 한 대 피우고 가는 건데 쉽게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고 또 언제 일어날지 몰라 불안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사 온 지 몇 해째 나는데 지낼수록 동네가 참 좋습니다.
가끔 뵙는 이웃분들도 친절하시고 산이 가까워 공기도 좋고 무엇보다 저희 집에서는 창밖으로 보이는 마당이 예쁩니다.
201호에서 보이는 마당이 궁금하시면 어제든 방문하시면 차 한 잔 드리겠습니다.
부디, 본인의 사소한 부주의로 이웃이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고 지정된 흡연구역을 지켜주십사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