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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그날 그 자리에서 내가 얼마나 바보같이 어리석었는지는 시간이 좀 지나고 깨달았다.


“공동체 교육이란 게... 그러니까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명분이 있어서인지... 학부모들이 다른 아이들에 대해... 그... 뭐랄까요... 너무 쉽고 편하게 말을 한다고 느껴져서... 그게 저로서는 적응이 안 되고... 어려운 지점이랄까요...”


말은 항상 자신의 등에 진심과 오해를 함께 태우고 다닌다. 어려운 말일수록 오해가 말을 몰지 않도록 진심이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어야 하는 법이다.

나의 패착은 그날 대화에서 할 수 있는 말이 몇 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떠오르는 모든 말들은 오해의 여지가 있었고 그중에 가장 안전하고 적합한 말을 걸러내야 했다.

글을 쓸 때처럼 사전의 도움을 받아 고를 수 있었다면 한결 나았겠지만 현실은 감정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얕디얕은 내 마음속에서 건져야 했다. 게다가 한번 잘못 뱉은 말은 백스페이스 바로 당장 지울 수도 없다.

분명 이 무모한 도전을 멈출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말을 할수록 자신의 말주변의 깜냥을 알아챈다든지. 눈치 없는 내 말은 상대의 일침에 놀라고서야 비로소 멈추었다.


“제가 지금 쉽고 편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세요?”


퍼뜩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내 말의 주도권을 오해가 잡아챈 이후였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속말이 그들을 대표하고 있지도 않은 앞의 상대를 향해 엉뚱하게 똑바로 직진했음을 직감했다.

그때라도 아니 에르노같이 진심에 딱 맞는 퍼즐조각을 찾으려고 노력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오히려 나의 말들은 마들렌 한 조각으로 찻잔에서 추억을 솟아 나오게 만드는 프루스트의 상상력처럼 고삐가 풀려버렸다.


“아니요,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그냥... 제가... 그게 너무 익숙하지가 않아서...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아이를 키우며 서로 10년 이상 봐온 사이에도 각자의 아이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하지 않았어요... 한 번도요... 함께 아이를 키워온 역사가 없는 사람에게... 내 아이를 설명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 말씀은 자기 아이에 대해 직접 키워보지도 않은 타인의 어떤 말도, 평가도 듣기가 불편하다는 말씀인가요?”

“네? 네... 아, 아니요... 그렇다기보다... 민기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됐다는 말씀이에요... 아무 이유 없이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친구의 어떤... 몇몇... 말씀은 못 드리지만... 행동들이 있었어요...”

아니요. 그만, 더 듣지 않을래요. 그게 좋겠어요.”


가뜩이나 모양새가 좋지 않았던 나의 말은 뎅강 꼬리마저 잘리고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 뒤로 한참이나 앞뒤 없는 방향 잃은 이야기를 실없이 주고받은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였다. 나 역시 그간 쌓은 신뢰의 깊이만큼 상대에게 마음을 쓰고 싶었다. 커피 잔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살피려 애쓰는 시간을 보냈다.


오해는 푸는 것이 아니라 풀리는 것이다. 그건 각자의 진실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운이 따를 때 가능한 일이다. 말은 그 일을 해나가는데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진심과 오해를 동반하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이것을 간과한 것이 그날 나의 두 번째 패착이다.

마음속에서 혼잣말로 잘린 말꼬리를 이어 보기를 며칠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의 불안감을 이해합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꼬리가 잘린 자리가 계속 아프다. 그 자리에 언젠가 더 단단해진 말이 새로 자라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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