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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by 하유미



뒤엉킨 실타래 같은 이야기와 감정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막막하다.

어쨌든 아이는 학교로 돌아갔다. 한 달이라는 긴 정학을 마치고 어쩌면 아직도 자신을 향한 소문이 출렁이고 있을 오해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내가 맡은 책임이 있으니까’라는 말을 남기고서.


그날은 손흥민 선수가 이적한 팀에서 첫 해트트릭을 달성한 날이었다. 일주일 전 학교로부터 당분간 집에 가있는 게 좋겠다는 연락과 함께 아이가 집으로 돌아온 이후로 처음으로 기분이 좋았다. 오후에 한 학부모와의 만남에서 받게 될 충격이라고는 전혀 예감하지 못한 채.

거기서 들은 상상 밖의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그 자리에서 내가 소화할 수 있는 크기를 넘어서 있었다. 확신에 찬 이야기들은 내가 의심을 가질 틈을 주지 않았고 하나하나 비수처럼 내리 꽂혔다. 무슨 정신으로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른다.


그날 저녁 내게 박힌 말들을 하나씩 뽑아서 아이에게 갖다 꽂았다. 아이는 자신을 향한 무지막지한 소문들에 충격을 받았다. 다음날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세세한 전말을 듣고 지난밤의 말들과 비교해 보면서 그간 아이의 올바르지 않았던 언행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있음을 깨달았다.

그날 밤 아이를 끌어안고 울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일주일간 학교에서 아이는 오해와 소문의 바다에 잠겨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단 한 번의 발버둥이 실수가 되었다는 것을 나조차 이해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다.


오해를 풀고 싶어 말을 전해준 사람과 만난 자리에서 내가 얼마나 바보같이 어리석었는지는 시간이 좀 지나고서 깨달았다.

모두는 각자의 진실만을 믿기에 애당초 오해는 풀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그것을 간과하며 경솔했던 감정적 태도가 상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을 테다. 어쩌면 느슨했을지도 모를 오해의 매듭을 그날 내 손으로 단단히 묶어버린 셈이다.


우리는 한 달 동안 온갖 것이 뒤섞인 감정의 수프 속에 빠져있었다. 분노, 죄책감, 미안함, 배신감, 불신, 안타까움, 후회, 원망, 억울함이 다투어 들끓는 중에 아이의 마음속에 가장 크게 끓어 넘친 것은 억울함이었다.

친구에게 피해를 끼친 입장에서 자신도 피해자가 되는 억울한 상황을 마땅히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사람들은 복잡하게 얽힌 일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수고를 하기보다 단순하게 이해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친 자는 의도와 상관없이 가해자가 되기 쉽다. 그렇게 입장 정리가 되는 순간 가해자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모든 발언권을 상실하게 된다.

아이는 책을 읽다 발견한 한 구절에서 엄연한 사실을 깨닫고 처음으로 자신을 향한 오롯한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그녀가 받은 피해는 그녀에게 도덕적 우위를 허용하고 가해자를 비난할 권리를 부여한다.’-2030 영혼의 연대기-


한 달째 불면증이 이어지고 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기숙사에 있는 아이에게 저녁마다 안부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무거웠을 아이의 하루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희석돼 언젠가 사라지기를 매일 밤 기도한다.

아직은 생각지 못한 어딘가에서 불쑥 상처를 직면할 때가 있다. 오늘 아침 책 한 페이지에서 나는 또 멈췄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처 가득한 곳에 책임감으로 돌아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는 항상 나보다 나았다. 지금의 고통과 반성을 성장의 밑거름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도 힘을 내야 한다. 적어도 뜸 들이는 시간을 못 기다리고 조바심을 내다 설익혀서 망치는 짓을 다시 하지 말아야겠다.


미결의 범주에 있는 오해의 한 가지 비밀열쇠는 시간이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획득한다 해도 만능열쇠가 아니기에 운이 좋아야만 자물쇠를 풀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진실이란 객관적 형태가 아니라 개별적 모습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운은 따르거나 아니거나 이지 내가 노력해서 닿는 데 있지 않다.

끝내 풀리지 않은 오해의 매듭들이 삶의 모양을 만들어 낸다. 그건 각자 치열했던 삶의 흔적일 뿐 실패도 영원한 아픔도 아니다. 흉터는 일상의 시간을 통해서 옅어지기 마련이니까.


이번 주에 잡힌 심리 상담이 내키지 않아 다음 주로 미뤘다. 타인에 기대 마음을 회복하는 것은 내게 어색한 일이다. 언제나처럼 우리의 상처는 오랜 시간이 걸려 내 글 속에서 치유될 것이다.

처음으로 자신이 글을 쓰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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