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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king Bad

by 하유미



첫 방영일 기준으로 보면 무려 17년 전 62부작 미국 드라마를 일주일 내내 봤다.

눈을 뗄 수 없이 몰입했던 초반을 지나 중반에 이르러서는 몰아보기의 여러 가지 이슈가 찾아왔다. 무엇보다 체력문제가 컸다. 시시각각 몸을 요리조리 뒤틀어대며 한편만 더, 한편만 더! 외치는 행위는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되며 밤을 삭제시켰다.

며칠 동안 밤낮으로 마약쟁이들을 보고 있자니 정서적으로도 피폐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하나같이 대머리 아재들만 등장하는 장면들은 눈요깃거리 측면에서도 실패였다-유일했던 젊은 주인공 제시조차 등장 몇 회 만에 스스로 머리를 밀어 아재 대열에 합류해 버렸다-.

여러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일단 영상이 재생되기만 하면 모든 걸 잊어버리고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느새 소위 ‘브배폐인’이 된 것이다.


평범한 화학교사가 마약 왕이 된다는 충격적인 설정이 납득이 될 정도로 마약이 거대산업이 된 사회와 의료보험제도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계급화의 민낯을 가족주의라는 실패 없는 양념으로 맛깔스럽게 버무려낸 드라마는 2000년대 초 미국사회를 깔끔하게 잘라낸 케이크 조각의 단면처럼 보여준다.

모든 에피소드가 재밌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주인공 월터가 하는 대사에서 어쩌면 이 한 마디를 듣기 위해서 마라톤을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부도덕한 범죄행위를 정당화하려고, 모든 건 가족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며 지치지 않고 변명을 하던 월터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심을 털어놓는다.

이건 내가 원해서 한 일이야.

그리고 악당이 치러야 할 대가를 기꺼이 치른다.


월터의 대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발버둥을 칠수록 점점 진흙탕으로 빠져들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악당임을 인정하고서야 진정으로 자유로워진 월터. 나는 지금 월터의 그림자 속에 있다.


얼마 전부터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말들이 쌓이고 썩어 억울함과 분노로 변해가며 고약한 냄새를 풍겨댄다. 해결책은 간단해 보인다. 그냥 말을 내보내면 된다. 문제는 내 입을 통과해야 하는 말들이 자꾸만 검열에 걸려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해결은 생각보다 요원해 답답함만 쌓여간다.

입이라는 고 상 하 시 고 정 의 로 우 시 며 도 덕 적 이 시 고 성 숙 하 신 이 기관의 보안검색에 걸리는 놈들은 어떤 불한당들이란 말인가. 저속하고 비겁하며 무례하고 미숙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고매하신 입께서 저런 싹퉁바가지들을 감히 혀로 놀릴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인간인가, 어떤 인간으로 보이고 싶은가 하는 딜레마에 계속 빠져있는 상태이다.


아, 잠금장치를 풀 용기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저열하고 몰상식하며 이기적이고 막돼먹은 말들을 속사포로 퍼부어줄 텐데.

그려놓은 자신의 이상향의 기준은 높고 막상 바닥을 기는 현실에서 오는 메울 수 없는 큰 괴리감에 좌절을 하고 있는 나날이다. 상담선생님은 ‘그 기준은 누가 정해놓은 건가요?’ 라며 내게 반문을 할 테지만 아직 스스로가 별로인 인간이란 사실을 월터처럼 인정할 용기가 없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이 동료 일을 싫은 내색도 없이 또 제 일처럼 해주고 와서 푸념을 늘어놓아 열이 배로 올랐다.

“여보, 우리는 왜 하나라도 속 시원히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안타깝게도 이 집에는 그런 류의 인간이 없다. 그러니 나라도 자유를 찾아 오늘부터 Breaking b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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