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 생성

by 하유미



마지막 상담일 날, 시간에 맞춰 9시 정각에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멀리서 텅텅 비어있는 벤치를 보고 어째 불길함이 엄습했는데 도착해서 전광판을 보니 타려던 버스는 이미 놓쳤고 다음번 버스는 15분 뒤에 도착예정이었다. 항상 5분에 도착하던 버스가 왜 오늘은 일찍 지나갔는지 의문스럽게 생각하며 예약시간이 간당간당해진 바람에 택시를 탈까 고민하며 초조하게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상담센터죠? 오늘 10시 예약자인데, 10분 정도 늦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네, 성함이?”

“하유미”

“......”

“하. 유. 미. 요.”

“...... 아, 오늘 11시 예약이시네요.”

“아하하……. 그럼 늦진 않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세상에는 매주 똑같은 요일, 똑같은 시각, 똑같은 장소를 6번째 방문하면서 착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상담선생님에게 오는 길에 저지른 바보짓을 이야기했더니 아주 꼼꼼할 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나를 몰라서 하는 말씀이라 호쾌하게 웃었다. 날짜와 시각을 착각해서 발생한 사건들을 모으면 제법 두툼한 파일이 되고도 남는 처지라 그런 데 노이로제가 있어서 중요한 날이 다가오면 몇 번씩 확인을 거듭하는 약간의 강박과 불면증이 도진다.


“자신의 장점 50가지는 써보셨어요?”

“다는 아니고 몇 가지 썼어요.”

“한번 읽어봐 주세요.”


실수로 일찍 도착한 덕분에 기다리는 동안 부랴부랴 적었던 메모를 읽었다.

친절하다 섬세하다 배려심있다 성찰한다 독서를한다 글을쓴다 폭력을싫어한다

편향적이지않다 사회적관심이있다 관찰력이있다 공부를한다 양심적이다 좋은사람들을만난다 사랑을많이받고있다


“좋네요.”

“네, 저도 좋았어요.”


6주에 걸친 심리 상담이 끝이 났다.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된 시간이었다.

어쩌면 나는 저런 모습들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나에게 관찰력에 대해서 물으면 사실 그때그때 다르다고 답하는 것이 정확하다. 선반 위 컵 손잡이가 반대방향으로 놓인 것을 단박에 알아차리지만, 몇 년씩 다닌 초밥 가게 명을 모를 정도로 (일어로 적힌 간판이라고만 알아서) 대충 보고 다니는 면이 있다. 그럼에도 자신을 인식할 때 관찰력이 있는 편이라고 여기는 것은 그 부분을 부각해서 장점으로 인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뒤집으면 앞면이 뒷면이 되듯이 내가 꼽은 장점들은 단점으로 읽힐 수도 있다. 본질이 변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시각이 변하는 것이다.


얼마 전 이강소 화백의 회고전을 보고 왔다. 찰흙 덩어리를 떨어뜨린 모양대로 쌓아 올린 조각 작품에 붙은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being : 생성>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무엇인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의미를 천천히 되뇌었다.

작품 앞에서 출발한 생각은 오늘 나의 장점 목록에서 멈추었다.

‘인간이 완성될 수 없고 영원히 무엇인가 되어가는 존재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의 장점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서 이정표를 삼아 길을 잃지 않고 계속 doing 하는 것’

이런 생각 끝에 한편으로 드는 쌉싸름한 마음은, 삶은 살아내지 않고 그저 말로 하기에는 쉽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우자에게 일어난 아침의 우발사고에 대해 한 마디 안 하고는 못 배겼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니라는 일침을, 점심 똑바로 챙기고 다니라는 챙김으로 들은 내 청각 기관에 감탄을 했다.

듣고 싶은 대로 들을 수 있다는 이정표를 하나 더 추가하고 스스로를 칭찬하니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음악소리가 몹시 흥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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