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와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이 끝나고 남편이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오디션 음악프로그램에서 멈췄다. 평소 방구석 심사위원 놀이를 즐기는 터라 둘이서 이곡 저곡을 씹고 뜯고 맛보며 만찬을 즐기기 시작했다.
나의 모든 사랑이~
“하아.”
떠나가는 날이~
“아아.”
남편이 정박자로 넣는 탄식에 그때까지 귀로 노래를 들으며 눈으로는 유튜브에서 좀 전의 경기리뷰를 찾아보느라 바쁘던 손이 멈칫했다. 쳐다보니 고수는 추임새를 멈추고 안경 사이로 잠옷소매를 집어넣어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여보, 우는 거야?”
“가슴이 먹먹해져.”
“큰일이네. 이 아재를 어떡하지.”
“감성이 메마른 당신은 그냥 닥쳐.”
눈물에 버무려진 닥치라는 말이 어찌나 신선하던지 경기 때문에 꽉 막혀있던 속을 한방에 뚫어주어 파안대소를 했다.
“여보, 이제 낭만이니 추억이니 이런 걸로는 눈물이 나지 않아. 난 지금 복장이 터진다고.”
오늘 축구경기는 승리로 장식한 졸전이었다. 역대 최강 전력을 매번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감독의 놀라운 전술을 익히 몰랐던바 아니지만 이번 경기는 진짜 대 단 하 다 는 말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어휴, 왜 아직 경기리뷰가 없어. 열받아.”
내가 함께 욕을 나눌 동료를 찾아 헤매며 열이 오르는 동안 남편은 다른 쪽으로 예열 중이었다. 한때 자신의 추억 속에 낭만적으로 그려졌던 배우자의, 카프카에 버금가는 거친 변신에 인생의 씁쓸한 맛을 제대로 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전에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가 ‘학창 시절에 사귀었던 그 애’를 강제 소환시켜 얼떨떨했던 일화를 글로 썼었다. 그건 마치 서랍 안에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어릴 적 풍선껌 포장지를 우연히 발견한 기분이랄까. 달콤했던 향은 다 날아가 버리고 내용물도 상실한 채 빈껍데기만 남았지만 소중하게 보관된 추억 같은 것 말이다.
남편은 잃어버린 껌을 안타까워하며 상념에 잠기고 나는 포장지를 휴지통에 버리는 편이다. 시간의 흐름으로 퇴색된 낭만을 붙들고 있기에는 쏟아지는 신상 풍선껌을 맛보기에도 바쁜 인생이다.
오, 마침 기막힌 유튜브 썸네일이 뜬다. ‘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