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의 트루먼 쇼

by 하유미



‘민기는 학교 기준으로 한 번도 모범생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민기가 앞으로 모범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지탄받아야 할까요……. 아이들은 각자 다른 모양을 가졌기에 적절한 지도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민기가 겪는 어려움을 이해해 주시고 손잡아 주셔서 힘을 주시길, 송구하지만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송구한 당부를 끝으로 담임 선생님에게 쓴 장문의 메시지를 전송했다.

아이가 보내고 있는 사춘기의 계절이 깊다. 노르웨이의 숲이 떠오른다. 엽록소를 과잉 축적해서 푸르다 못해 짙고 어두운 숲, 그 한가운데 아이가 서있는 듯하다.


진로탐색을 목적으로 개별 여행을 하는 주에 아이는 홀로 서울에 갔다. 혼자만의 시간에 해방감을 만끽하다 정신 줄도 함께 놓아버려 늦은 밤 휴대폰이 방전 돼버리는 상황을 초래했다. 기숙사에서 체크카드도 보조배터리도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은 것을 이제와 원망해 봤자 소용이 없고 무엇보다 아이를 찾을 방법이 없어 피가 말랐다.

폰이 꺼지기 직전, 그날 밤 머물기로 한 친구 집이 있는 평택까지 가기에 너무 늦어서 급하게 집으로 오는 열차표를 예매해 줬다. 코레일 고객센터를 통해 결국 대구행 마지막 열차에 탑승하지 않은 사실까지 확인하고 나자 불안감이 치솟았다. 감기기운에 열이 다시 올랐는지 통화에서 느껴지던 달뜬 아이의 마지막 목소리가 자꾸 귀에 맴돌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어.”

평택행과 대구행 사이에서 헤매던 아이는 행방이 묘연해져 버렸다.


신고를 하고 한 시간이 다되도록 일대 수색에 나선 경찰 쪽에서 연락이 없었다.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 남편과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한 시간 정도 달렸을 때 내 휴대폰의 위치추적 앱이 아이의 휴대폰 전원이 켜졌음을 알렸다. 서울역으로 가던 도중 지하철에서 잠이 들어 종점까지 가버렸다고, 지금 근처 편의점에서 충전 중이라며 전화너머로 자초지종을 전했다. 경찰로부터 지구대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있을 테니 그리로 찾아오라는 말을 듣고 나니 그야말로 지옥에서 살아 나온 기분이었다.


아이는 기질적으로 자신의 한계 범위를 스스로 측정해 봐야 납득을 하는 부류이다. 대책 없이 낙천적이고 무계획한 성격 때문에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이렇게 몸소 체험을 하고야 깨닫는 식이다.

엄연한 규율이 있는 학교에서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성격임은 당연하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속박하는 모든 교육기관들을 힘들어했다. 단정하게 깎은 잔디밭에 혼자 우뚝 튀어나온 풀 같은 학생을 다루기 힘들어하기는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교실에서 내내 겉돌다 초등 4학년 때 은인을 만났다. 자신을 규격화하지 않고 생긴대로 인정해 주는 선생님을 만나 학교에 적응을 하고 처음으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자신을 이상한 풀이 아니라 특별한 풀이라고 바라봐주는 선생님의 사랑을 받고 잘 자라 그 뒤 학교생활은 대체로 순탄했다.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는.


사춘기에 맞물려 시작한 기숙사 생활은 자기 통제력이 낮고 충동성이 강한 기질을 증폭시켰다. 가끔 학교에 가서 볼 때면 낯선 사내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불러 깜짝 놀랐다. 오죽하면 사춘기 개그맨이 되었다고까지 표현을 했을까.


그간 자신의 언행이 불러올 여파나 책임에 무감각했던 탓에 요 몇 달 사이 그 대가를 이자까지 몰아서 한꺼번에 치르는 걸 지켜보며 가족이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담임 선생님과 상담에서 학교구성원 전체가 아이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새로 걱정이 생겼다. 그런 무언의 시선들이 격려를 넘어 압박감으로 느껴진다면 학교생활은 트루먼 쇼와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정해진 대사와 행동을 뚝딱거리는데 익숙해지거나 마음을 터놓을 친구도 없이 철저히 고립되거나.


다양한 개인이 모인 사회의 허용 범위는 개인적 이해의 폭보다 당연히 좁을 수밖에 없다. 학교도 마찬가지여서 대게 보통의 학생들이 쉽게 문제아로 둔갑하기도 한다. 나는 아이가 모범생과 문제아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틀에 맞추려면 독특한 모양일수록 남들보다 더 많이 깎이는 아픔을 겪어내야 한다. 언젠가 틀이 편안해지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서 자신이 안전하고 자유롭다는 사실을 깨닫는 때도 오게 된다.

지나치게 솔직하고 편견이 없는 탓에 적절하게 사회적 가면을 쓰거나 상대에게 태도를 꾸미는데 서툰 우리 집 아이는 결코 모범생이 되지 못할 테다.


사방을 에워싼 깊은 침엽수림을 빠져나오면 아름다운 설원이 기다린다. 아이가 숲에 갇혀 있지 않도록 옆에서 손을 잘 잡고 눈부신 세상을 향해 걸어야 한다고 매일 다짐한다.

모범생은 못되지만 아이는 누구보다 실비아를 찾아 피지 섬으로 떠날 용기를 가졌다고 믿는다. 그때 자신을 향했던 수많은 잣대들에 산뜻하게 인사를 날릴 수 있기를 응원한다, 트루먼.

“In case I don`t see ya,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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