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의 축복
아이 둘을 데리고 저녁에 해남으로 이동하겠다는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학교에서 책임지기를 성실히 하고 있는 중에 갑작스레 잡힌 일정이라 당혹스러웠다. 전화를 끊고 거실 한 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소년의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차갑고 선명한 겨울바람이 끼쳐오는 기분이었다.
주말에 남편과 해남으로 향했다. 아이는 친구와 함께 10일 간 해남의 한 선생님 댁에서 머물게 되었다. 오랜 시간 수양을 쌓다 해남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누구나 쉬어갈 수 있게 집을 쉼터로 내어주시는 분이라고 들었다. 학교에서 여러 관계 속에서 해결이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종종 가서 함께 지내는 곳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해남으로 유배인가.”
무심히 뱉은 남편의 고들빼기김치 같은 농담은 해남에 들어서서 배추밭에 툭 떨어졌다.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배추밭 광경은 유배지로 썩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해마다 겨울이면 김치냉장고를 차곡차곡 채워주는 김치 원산지의 현지답사가 아니겠냐는 흰소리로 답하며 우리는 각자 해남여행에 의미를 부여했다.
오늘 방문을 앞두고 어젯밤 통화에서, 폐를 끼치게 돼 죄송하다는 말씀에 해남 선생님은 호탕하게 웃으셨다.
“두 하늘님이 오셔서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하하.”
초록색 배추밭에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하얗게 뿌려지는 상상을 하며 ‘다 이룬 집’에 도착했다.
마침 모두 읍내로 오일장 구경에 나가있을 때 도착해 머쓱하니 빈집을 둘러보았다. 집은 낡았지만 곳곳에 숨겨진 정갈함이 보였다. 꾸준히 잘 돌보았다기보다 듬성듬성 손길이 닿은 곳마다 정성이 느껴졌다.
낯선 차가 들어와도 미동조차 없던 백구는 다가가자 꼬리 흔들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배를 까뒤집으며 벌렁 드러누웠다. 등과 배를 쓰다듬다 손이 새카매질 무렵에 세 명의 일행이 돌아왔다.
가져온 짐을 부리고 모닥불 앞에서 선생님께서 내주신 칡을 씹으며 효소차를 홀짝였다. 타닥타닥 대나무가 타는 소리를 배경으로 긴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모두는 자기 안에 우주를 품고 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태어나길 지혜롭게 났는데 수동적으로 살 수가 있나요. 민기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아이입니다. 인간 본연의 모습을 깨닫고 싶은 것이지요.”
“다 이룬 집이란 건 그런 뜻인가요?”
“이곳에 오는 모든 이들은 이미 뜻을 다 이룬 셈이지요. 잠시 다리가 아파서 쉬러 온 것입니다. 다시 힘을 내서 걸으려고요.”
깊고 지혜로운 말씀을 다 이해할 수 없고 알았다고 해도 글로 옮기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 말씀대로 지식으로 지혜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작은 그릇 안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는 격이다.
흙바닥에서 맞절을 나누었던 생경한 첫인사부터 시작해 이야기를 따라서 장작에서 날아오는 불티같은 삶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다 보니 어느새 해가 기울었다.
저녁식사를 사양하고 일어서는 객에게 주인장이 기어이 키위, 당근, 결명자차, 콩가루 등을 양손 가득 챙겨주는 턱에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말뿐이 아니라 실로 하늘님이 되어 모심을 받고 있는지 어쩐지 두 아이는 꾀죄죄한 모습마저 편안해 보였다. 무덤덤한 아이에게서보다 백구에게 더 격한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아이는 언제나 내 인생에 온 선물이자 선생님이었다. 내 이름으로는 결코 가보지 않았을 곳으로 이끌고 가서 해보지 않았을 일들을 경험시켜 주었다.
그냥 평범한 학교생활을 바랐을 뿐인데 그마저도 욕심이었나, 자책을 하던 시기에 아이는 땅 끝 마을까지 나를 데려와 그저 평범한 학교생활을 했다면 알지 못했을 삶의 축복을 엿보게 해 주었다.
이미 인간은 지혜로운데 깨우치지 못하고 살 뿐이라는 해남 선생님의 말씀은 아직 내게는 미지의 영역 속에 있다. 그것을 앎의 영역으로 받아들이려면 자신을 깨부술 용기가 필요하기에 두렵다.
무엇이 두려울까. 지식을 쌓아가는 삶, 감각적 즐거움을 맛보는 삶, 소소한 습관적인 삶을 포기할 자신이 없다. 세상을 누리는 삶에서 세상을 모시는 삶으로의 이행을 너무나 물질적인 인간인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까.
지식의 삶 너머 지혜의 삶이 행복의 문턱을 낮춰 줄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차원의 행복을 열어줄지 알 수 없다. 답을 알 수 없지만 지금처럼 소파에 앉아 잣을 오독오독 씹어 먹다 낮잠에 빠져드는 모양새가 아닐 것임은 분명하다.
네가 내게 온 것으로 내 삶은 다 이루었다.
2025. 12. 6.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