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by 하유미



이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온몸으로 떠받치고 있던 열매와 잎은 떨어져 나가고

맨몸으로 맞는 바람과 서리에 몸서리난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혼자 견뎌야 하는 고문의 시간임을

그 명명백백한 운명을 몰랐단 말인가



아니다

이 고통은 바람과 서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열매와 잎으로는 가릴 수 없는

뿌리 끝에서 올라오는 깊은 회한이다

고통의 심연은 바닥을 보이지 않아

아무리 깊이 뻗어 보아도 닿지 않는다



더위와 가뭄에 마르고 벌레와 새에 물어 뜯겨가며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

지킬 수 없는 것

그것들은 떨어져 나갔다

뿌리부터 관통하는 희생을 먹고

나와 너를 구분할 수 없기에

내가 송두리째 떨어져 나갔다



이 고통은 자신을 잃어버린 벌이다

원시 심해의 꿈을 저버리고

하늘에 꿈을 꾼 자가 치르는 대가이다

지킬 수 없는 것을 지키려 한 자가 받는 형벌이다



인간은

한살이만 살다 가면 그뿐 아닌가

봄이 오면 다시 시작되는

이 끝없는 고통의 윤회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내 몫의 고통을 직시하며 올겨울을 지내겠다,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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