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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May 22. 2020

일리아스(제7권)

헥토르와 아이아스의 결투 : 시신들의 매장


 
“헥토르와 알렉산드로스(=파리스)가 돌아와 트로이아인들의 사기가 오른다. 아폴론과 아테나는 오늘의 결전은 멈추기로 합의하고 헥토르로 하여금 일대일 싸움을 걸어 결판을 내도록 한다.
결투에 응하여 나서는 메넬라오스를 아가멤논이 말리고, 헥토르의 기세에 눌려 선뜻 나서는 이가 없자 네스토르가 아카이오이족 병사들을 웅변으로 꾸짖는다.
이에 모두 아홉 명이 일어섰다. 제비를 던져 그중 아이아스가 뽑혀 결투에 나선다. 싸움이 진행될수록 헥토르의 패색이 짙어지는 가운데 신의 뜻으로 결투를 멈추게 된다.

승리를 기뻐하는 아가멤논이 제우스에게 제물을 바치고 모두 배불리 먹을 때 네스토르가 다시 한번 일어서서 지혜를 내놓는다.
‘날이 밝으면 전쟁을 쉬고 시신을 실어 나르자. 화장해 고향으로 돌아갈 때 뼈라도 가져갈 수 있게. 장작더미 주위에 하나의 무덤을 만들고 또 거기에 의지해 방벽과 높은 탑을 세우자. 또한 그 바깥에는 깊은 호를 빙 둘러 판 뒤 적의 접근을 막자.’
다음날 네스토르의 말대로 대공사가 이뤄진다.
한편 그날 밤 트로이아 진영에서 무시무시하고 소란스러운 회의가 있었다. 프리아모스는 합의된 의견을 전령에게 명하여 아카이오이족에게 전달케 한다.
‘첫 번째, 알렉산드로스가 가져온 재물을 돌려준다. 단, 헬레네는 돌려줄 수 없다. 두 번째, 우리가 시신을 화장할 때까지 전쟁을 중단하자.’
이에 디오메데스가 주장하길 ‘이제 와서는 어느 누구도 알렉산드로스의 재물을 받지 마시오. 아니, 헬레네조차도 받지 마시오! 트로이는 이미 파멸의 길로 들어섰으니.’라고 외쳤다. 이에 아가멤논과 모든 군사들이 동의한다.
날이 밝자 양군은 시신들을 수습하고 그날 밤 양진영에서는  밤새도록 잔치가 벌어진다. 제우스는 밤새도록 그들에게 재앙을 꾀하며 무시무시하게 천둥을 쳤다. “
 
<독후감>
사람들이 창에 찔리고 칼에 베이고 전차에서 나동그라지고, 말들이 쓰러지고, 자욱한 흙먼지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들판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 처참한 가운데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고향에 남은 가족들을 위해 시신을 화장해서 뼈만이라도 가져가자고 주장하는 이.
피범벅이 돼 일일이 분간하기 어려운 시신들을 물로 씻어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이.
시신을 수습하고 힘든 몸과 마음을 술과 음식으로 달래는 이들.
이 모든 행동은 미쳐 날뛰는 전쟁터 한 복판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 아니었을까.
이들 모두 그저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영문도 모른 채 전쟁에 끌려온 일반 병사들에게는 고향에서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었다.
전쟁은 무슨 명분으로 누구를 위하여 치르는 것일까. 그날 밤 그들 중 누구도, 심지어 전쟁을 이끄는 지휘자들조차도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오직 신들만 그 뜻을 알리라.
 
예나 지금이나 혈기왕성했던 시절을 잊지 못하는 늙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네스토르가 그렇다.
군사들을 꾸짖고 독려하기 위해 그가 꺼내 든 것은 “라떼는 말이야.”라는 낡아빠진 카드였는데 요즘 같으면 씨알도 안 먹힐 뿐만 아니라 꼰대로 낙인찍히기 딱 좋을 그 카드가 옛날에는 먹혔나 보다.
그의 말에 분기하여 일어선 전사가 아홉이나 되는 걸 보면.
요즘이었으면 일어 선 아홉 명이 엉덩이나 털고 자리를 떴을 것임이 분명한데.
옛날 젊은이들 착했다.
 
재미있게 알게 된 몇 가지 알쓸신잡도 있었다.
헥토르와 일대일 결투에 나설 때 아이아스가 들고 있던 방패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억센 황소 가죽 일곱 겹으로 만든 뒤 그 위에 여덟 번째로 청동을 입힌 것이라고 한다.
또 헥토르와 결투에 나설 사람을 뽑을 때 제비뽑기를 하는데 아홉 명이 각자 자기 제비에 표를 하고 투구에 넣고 흔들어서 튀어나온 것을 택하는 방법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테네의 도편추방제처럼 제비라는 것이 도자기 조각에 적는 것이었나 추측되었다.
그저 방패라 하면 금속이고 제비뽑기라 하면 종이라고 상상했던 나의 살얼음판 수준의 얄팍한 역사 식에 또 한 번 개탄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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