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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May 26. 2020

일리아스(제9권)

아킬레우스에게 사절단을 보내다 : 간청


 
**포이닉스 : 자기 아버지에게서 도망쳐 펠레우스 왕(아킬레우스의 아버지)을 찾아가 은혜를 입음. 아킬레우스의 대부 같은 역할.
 
그날  아카이오이족 지휘자들이 모두 모여 회의가 열렸다.
아가멤논이 고향으로 달아나자고 주장하고 이에 디오메데스가 일침을 놓는다.
네스토르는 파수병들을 세우고 아가멤논에게 원로들을 대접하게 하고 아킬레우스를 설득할 방도를 강구해보자고 한다.
이에 아가멤논은 그가 분노를 거둔다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상금을 아낌없이 바치겠다고 말한다.
포이닉스와 아이아스, 오뒷세우스가 대표로 뽑혀 전령 둘을 데리고 아킬레우스를 설득하러 간다.
오뒷세우스의 마음을 파고드는 간청에도 포이닉스의 눈물에도 아이아스의 원망에도 아킬레우스는 꿈쩍하지 않는다.
아킬레우스가 말한다. ‘헥토르가 아르고스인을 도륙하며 내 막사와 함선들이 있는 곳까지 쳐들어오기 전에는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오. 날이 밝으면 내 함선들을 바다에 띄우고 짐을 실을 작정이오.’
그리하여 그들은 돌아갔다.
아가멤논에게 설득에 실패한 사실을 알리러."
 
<독후감>
고대인들이 말을 잘했던 것인지 호메로스의 필력 덕분인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날 정도로 말맛을 제대로 봤던 9권이었다.
연쇄살인범도 이 정도 설득이면 여죄를 줄줄 불고도 남을 만한 달변인데 눈도 깜짝 안 하는 걸 보면 아킬레우스의 똥고집도 어지간하다.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에게 제안한 선물 목록은 두 페이지에 달한다.
세발솥, 황금, 가마솥, 말 등 희한한 세간살이가 포함된 물품부터 일곱 도시를 비롯한 영토와 자기 딸과 지난번에 뺏아온 소녀까지(정말 미안했다.)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끝내 아킬레우스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아킬레우스는 그동안 섭섭했던 마음을 풀어놓는데 그중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있었다.
“뒷전에 처져 있는 자나 열심히 싸우는 자나 똑같은 몫을 받소. 비겁한 자나 용감한 자나 똑같은 명예를 누리고 있소. 일하지 않는 자나 열심히 일하는 자나 죽기는 매한가지요. 나는 언제나 목숨을 걸고 싸우느라 마음속 고통을 당했건만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이 대목에서 어제도 회사 상사와 한판 뜨고(?) 속이 상해서 퇴근한 남편이 생각났다.
일하지 않는 자나 열심히 일하는 자나 월급은 똑같이 받는데 언제나 목숨 걸고 일하는 남편은 매번 마음속 고통을 당하는 편이다. 일하는 자의 명예를 높여주지 않는 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전장에서도 내 이익을 위해 파업을 하는 판에.
남편은 오늘도 선봉에 서서 전투하러 나아갔다. 뒷전에 처져 배짱을 부려 보라고, 그렇게 남편을 설득해달라고 오뒷세우스에게 부탁 좀 하고 싶다.
 
아킬레우스가 여기 까지만 했으면 딱 좋았을 것을.

한마디를 더 보태는 바람에 징징이(*)가 돼버렸다.(*만화 스펀지밥의 친구)
“그자는 유독 나한테서만 마음에 맞는 여인을 빼앗아 갔소.”
가장 깊은 원한은 결국 이거였단 말이군.
아킬레우스 그 입을 그만 다무시오.
 
포이닉스가 아킬레우스를 설득하기 위해 옛이야기를 하나 꺼낸다.
요약하면 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싸움을 거부하던 아들이 왕국이 함락되기 직전에서야 나서 전쟁에 이기고도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대는 선물을 줄 때 나서는 것이 좋겠소.”
그러자 아킬레우스는 한 술 더 떠서 포이닉스에게도 서운한 마음을 내비친다.
“아가멤논을 기쁘게 해 줄 양으로 눈물과 비탄으로 내 마음을 괴롭히지 마시오. 그러면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이 미움으로 변할 것이오. 나를 괴롭히는 자를 나와 함께 괴롭히는 편이 그대에게는 나을 것이오.”
오! 아킬레우스. 그대 정신연령이 초등학생인 내 아들 수준과 똑같구려.
 
그러니 아이아스가 ‘무정하다.’고 할 만도 하다.
그런데 아이아스가 흘리는 말이 또 놀랍다.
‘자기 형제나 자식을 죽인 살인자에게도 보상금을 받고는 완고한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한 고향에서 살아가는 법인데.’
옛 법에는 그랬나 보다. 불구대천의 원수랑 이웃할 수 있었다니.
아들이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돈에 미친 사람들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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