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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Jun 22. 2020

일리아스(제16권)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뮈르미도네스족 : 아킬레우스가 이끄는 그리스 부족.
**<막간 역사 상식> 재류외인(메코이토이) : 폴리스 도시 국가의 외국인 체류자. 시민과 마찬가지로 자유민이었으나 외국인들이기에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나누어 가질 수 없었다.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에게 눈물로 간청한다.
‘그대의 무구들을 걸치고 속히 나라도 내보내고 다른 뮈르미도네스족의 부대가 나를 따르게 해 주시오.’
이에 아킬레우스가 응한다.
‘내 창으로 얻은 소녀를 아가멤논이 내 손에서 도로 빼앗았네. 내가 마치 아무런 명예도 없는 재류외인인 것처럼. 나는 전쟁이 내 함선들에 이르기 전에는 결코 분노를 거두지 않을 것이네. 그러니 자네의 간청을 허락하겠네. 자네는 함선들에서 그들을 몰아내는 즉시 싸움을 멈추고 되돌아오게.’
함선을 지키던 아이아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고물이 화염에 휩싸인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무구들을 걸치고 전 뮈르미도네스족도 무장한다. 다섯 부대로 나뉘어 정렬한 그들이 사기충천하여 함선들에서 쏟아져 나오니 트로이아인들은 아킬레우스가 직접 나선 줄 알고 크게 동요한다.
파트로클로스가 함선들에서 트로이아인들을 몰아내고 불길을 끄자 마침내 전투가 분산되면서 전사가 전사를 죽이기 시작했다.
파트로클로스는 우왕좌왕 도로 도성을 향해 달아나는 트로이아인들을 호 안에 가두고 그들을 도륙했다. 이에 사르페돈이 맞선다.
뤼키아인들의 왕 사르페돈, 이 영웅을 제우스도 구하고 싶어 했으나 결국 정해진 죽음의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파트로클로스의 창에 맞아 쓰러진다.
글라우코스는 헥토르를 비롯한 지휘자들을 찾아가 이 소식을 알리고 싸움을 독려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죽은 사르페돈의 시신을 둘러싸고 어우러져 싸웠다.
마침내 파트로클로스와 헥토르가 마주하게 되고 아폴론의 도움으로 헥토르의 창에 파트로클로스가 쓰러진다. 그는 숨을 거두며 헥토르의 파멸을 예언한다.
‘헥토르여! 꼭 명심해두어라! 벌써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그대 곁에 다가섰으니, 그대는 아킬레우스의 손에 쓰러지게 되리라.’ “


<독후감>
자존심에 죽고 사는 아킬레우스 같은 인물이 애당초 명예란 가질 수도 없는 재류외인 취급당했다고 느꼈으니 그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알만하다.
 파트로클로스에게 하는 말에서 그 상처 받은 마음이 전해진다.
‘모든 트로이아인들과 아르고스인들이 전멸하여 우리 둘만이 파멸에서 벗어나 트로이아의 신성한 머리띠를 단둘이서 풀 수 있다면 좋으련만.’


파트로클로스가 전쟁에 나서며 본격적으로 백병전이 벌어진다.
두 페이지에 걸쳐 그들은 서로를 죽인다.
*사람을 창으로 찌르는 일곱 가지 방법*
1. 넓적다리 2. 가슴 3. 허벅지 4. 옆구리 5. 어깨 6. 목 7. 입
읽어보면 하나같이 처참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중 하도 끔찍해 절대 입만은 찔려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청동 창이 입 밑을 뚫고 골밑으로 나오며 흰 뼈를 박살 내자 이빨들이 튕겨 나오고 두 눈에는 피가 가득 고였다. 입을 벌리고 입과 콧구멍에서 피를 뿜어댔고 죽음의 먹구름이 주위를 덮었다.’

예전에 사랑니를 뽑았던 자리가 괜히 얼얼해지는 기분이 들어 혓바닥으로 이빨을 쓸어내려 보았다.


아이네이아스와 메리오네스가 싸우며 설전을 벌이자 옆에서  그들에게 일침을 놓는 자가 있으니 어쩜 그는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하다.
온라인 학습을 하느라 노트북과 설전을 벌이고 있는 우리 집 전사에게도 와서 좀 일침을 가해주길.
“왜 그런 잡담을 하시오. 욕한다고 동영상 강의가 당신에게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오. 우리는 말수를 늘릴 것이 아니라 펜과 책을 들고 싸워야 하오!”


관우만큼은 아니었지만 불세출의 영웅, 뤼키아의 왕 사르페돈을 흠모했었다.
그의 인간적인 매력은 제우스의 마음도 흔들어 놓아 그를 죽음의 운명으로부터 돌려놓으려 했으나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폴론이 제우스의 명을 받고 사르페돈의 시신을 거두러 직접 나선다.
그 모습이 장엄해 결코 그의 죽음이 헛되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체 없이 고귀한 사르페돈을 사정거리 밖으로 들어낸 다음 멀리 데려가 흐르는 강물에 목욕시켰다. 그러고는 신유를 발라주고 불멸의 옷들을 입혀주었다. 그런 다음 날랜 호송자들인 잠과 죽음에게 맡겨 이 쌍둥이 형제가 그를 호송하게 했다. 그러자 그들은 그를 지체 없이 넓고 기름진 뤼키아 땅으로 옮겼다.’


자신의 돌팔매에 헥토르의 마부가 쓰러져 전차에서 떨어지자 파트로클로스가 그를 조롱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아, 얼마나 경쾌한 잠수인가! 여기가 바다였다면 이자는 굴을 따 가지고 왔을 텐데. 그만큼 경쾌하게 그는 방금 전차에서 들판으로 잠수하더구나. 트로이아인들 중에는 잠수부가 더러 있는 모양이지.
아,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의 모태가 여기라는 것을 알겠다.
입을 나불대는 자는 다음 장면에서 반드시 죽는다는 클리셰를 호메로스가 만들어냈구나.
그러니 다음 장면에서 입을 나불대던 자가 아랫배에 창을 찔려 최후를 맞이한 것은 당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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