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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Jun 25. 2020

일리아스(제17권)

메넬라오스의 무훈



**메넬라오스 : 아가멤논의 동생. 그리스 장수.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두고 메넬라오스와 판토오스의 아들 에우포르보스가 대립한다. 싸움 끝에 메넬라오스가 에우포르보스를 죽이고 그의 무구들을 벗기려고 하지만 덤벼드는 헥토르를 피해 파트로클로스의 시신마저 버리고 도망친다.
이때 아이아스가 메넬라오스를 지원하고 나서니 금세 전세는 역전된다. 이를 지켜보던 뤼키아의 장수 글라우코스가 자신들의 왕 사르페돈의 죽음에 대한 원망을 헥토르에게 돌리고, 발끈한 헥토르가 파트로클로스에게서 빼앗은 아킬레우스의 불멸의 무구들을 입고 아킬레우스와 맞서 싸우러 나선다.
그리하여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둘러싸고 트로이아인들과 아카이오이족의 아귀다툼이 벌어진다. 시신은 한 번은 이 편으로 한 번은 저 편으로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
아킬레우스의 말들은 그들의 마부(파트로클로스)가 죽은 것을 슬퍼하여 비석처럼 꼼짝 않고 서있었다. 제우스가 이를 딱하게 여겨 아우토메돈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말들을 싸움터로 몰아가게 한다. 이를 알아챈 헥토르가 아이네이아스와 함께 그 말들을 빼앗으러 뒤쫓는다.
전투가 계속될수록 제우스가 트로이아인들에게 승리를 주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에 아이아스가 메넬라오스에게 안틸로코스를 찾아 그를 아킬레우스에게 보내 그의 가장 사랑하는 전우가 죽었다는 것을 알리게 한다.
아킬레우스가 무장하여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메넬라오스와 메리오네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떠메고 함선들 쪽으로 달아나고 두 아이아스가 달려드는 트로이아인들을 힘겹게 막아선다. “


<독후감>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지키던 메넬라오스가 불같이 내달려오는 헥토르를 보며 고민에 빠진다.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물질적 이익과 명예 사이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고민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①물질적 이익을 선택할 경우 : 무구들을 챙긴다→시신을 버린다→백성들의 원망과 분노를 산다
②명예를 선택할 경우 : 혼자 다수에 맞서 싸운다→포위된다→목숨을 잃는다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던 메넬라오스는 합리적 추론을 시도한다.
‘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에게는 재앙이 굴러 떨어지는 법이다. 그러므로 신의 도움을 받고 싸우는 헥토르 앞에서 물러서더라도 백성들은 아무도 화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 합리화에 성공하고 시신을 버리고 도망친다.
메넬라오스의 고민은 모든 인간이 한 번쯤 겪게 되는 고민이다.​
물질적 이익과 명예,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 등을 양쪽에 올려놓고 저울질을 해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의 선택이 각자 삶의 방향을 결정해왔다.
그동안 나는 어떤 선택을 해왔던가, 숱한 자기합리화의 시간을 겪어오지 않았나, 궁극적으로 나는 어떤 인간인가 고민해보게 되는 장면이었다.​


마부를 잃어버린 아킬레우스의 말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제우스가 측은하게 여기는 장면이 나온다.
‘저런, 가련한 것들! 늙지도 죽지도 않는 너희를 어쩌자고 우리가 필멸의 펠레우스 왕에게 주었던고? 불행한 인간들 사이에서 고통받게 하기 위함이었던가? 대지 위에서 숨 쉬며 기어 다니는 만물 중에서도 진실로 인간보다 비참한 것은 없을 테니까.’
인간은 왜 비참한가? ​
만물은 각자의 본성대로 살아간다. 식물은 식물답게 동물은 동물답게 말이다.
신이 만들어낸 만물 중 인간이 가장 비참한 것은 인간만이 자신의 본성을 잃어버리고 살기 때문일까?
수천 년 전 호메로스가 보았던 인간성의 상실은 지금 이 시대에서 다른 형태로 또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인간답다는 것, 인간성이란 무엇일까?​
짧은 독후감 안에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방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어 고민만 잔뜩 안고 넘어간다.


아테나가 메넬라오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장면이 있다.
‘아테나는 그의 어깨와 무릎에 힘을 넣어주고, 그의 가슴속에 파리의 대담성을 불어넣었다. 파리란 녀석은 사람의 몸에서 쫓기고 또 쫓겨도 계속해서 물려고 덤비니 녀석에게는 사람의 피가 달기 때문이다.’
파리의 대담성이라.​
파리란 존재를 그런 시각으로 바라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성가시고 세균이나 옮기는 더러운 존재로 보았는데 파리 입장에서 보면 사람에게 달라붙는 것은 목숨을 건 행위이자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내는 행위, 진정한 파리다운 행위, 파리성(?)을 보여주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대상 또는 현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아, 파리의 존재가치까지 고뇌를 해야 하다니 머리가 아파온다.​


이쪽저쪽으로 끌려 다니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따라 내 생각도 여러 갈래로 흘렀다.
가치 있는 선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인간성에 대한 고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고민 등. 철학적 사고 회로를 풀가동시켜본 권이었다.
깊은 생각에 차분해지기도 했고 과부하가 걸린 뇌에 열이 오르기도 했다.
살얼음 한 장 만치 얇은 내 사회과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소양 탓에 느낀 바를 제대로 표현할 길이 없어 안타까움에 몸부림만 치다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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