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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Jun 29. 2020

일리아스(제18권)

무구의 제작



**아킬레우스의 무구 : 아킬레우스의 크고 아름답기로 이름난 무구는 특별히 제작된 것이다. 신들이 테티스를 펠레우스에게 보낼 때 선물로 준 것으로 아킬레우스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는다. 제17권에서 이 무구들을 입고 파트로 클로스가 싸우러 나갔다가 죽임을 당하고 무구들은 헥토르의 손에 들어간다.


“안틸로코스가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과 그의 시신을 둘러싼 싸움, 무구들을 헥토르가 빼앗아 간 사실 등을 알린다.
전우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절규하는 아킬레우스 앞에 어머니 테티스가 나타나 그에게 새 무구들을 구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테티스는 곧바로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간다.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둘러싸고 무시무시한 혼전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헤라는 이리스에게 아킬레우스를 일으켜 전장에 얼굴을 비추도록 명한다.
마침내 아킬레우스가 전장에 나타나자 트로이아인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해가 지고 전쟁이 멈추자 트로이아 진영에서 회의가 열린다. 폴뤼다마스가 일어서서 열변을 토한다.
‘펠레우스의 아들이 나타났으니 지금 당장 도성으로 돌아갑시다! 함선을 떠나 성벽 위에서 싸우는 편이 우리에게 유리하오.’
그러자 헥토르가 반발하며 날이 새는 대로 함선들 옆에서 전투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하자 트로이아인들이 어리석게도 찬동한다.
그 시각 아카이오이족은 밤새도록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통곡하며 슬퍼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목을 가져오기 전에는 파트로클로스의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며 분루를 삼킨다.
한편 테티스는 헤파이스토스의 궁전에 닿아 그에게 방패와 투구, 정강이받이와 가슴받이 등 아킬레우스를 위한 새로운 무구들을 만들어 달라고 간청한다.
유명한 절름발이 신은 무구들을 모두 만든 다음 테티스에게 건네고 그녀는 번쩍이는 무구들을 들고 올륌포스에서 매처럼 뛰어내렸다. “


<독후감>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킬레우스의 비통한 마음이 그려진다.
‘그는 두 손으로 검은 먼지를 움켜쥐더니 머리에 뿌려 고운 얼굴을 더럽혔고 검은 재가 그의 향기로운 옷에도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자신은 먼지 속에 큰 대자로 드러누워 제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심지어 소식을 전한 안틸로코스는 행여 아킬레우스가 칼로 제 목을 베지나 않을까 두려워 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이 장면을 어디서 본 것 같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예전에 봤던 배우 송강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효자동 이발사’란 영화가 떠올랐다.
우리나라 격변의 근대사를 ‘대통령 각하의 이발사’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영화이다. 한모(송강호)는 제 손으로 어린 아들을 졸지에 간첩 용의자로 만들어버리고 낙안(아들)이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게 된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던 아들은 어느 날 한밤 중 푸대에 담겨 집 앞에 버려진다. 아들이 돌아온 기쁨도 잠시, 낙안이 몹쓸 전기고문으로 걷지 못하는 불구의 몸이  것을 알고 한모는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한모는 각하의 머리카락을 자르던 가위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자른다. 머리카락을 움켜쥔 손에서 피가 흐르고 한모는 이 사이로 새 나오는  울음소리를 꾹, 꾹 입안으로 욱여넣는다.
자신의 잘못으로 아들이 모진 고문을 당하고 끝내 불구의 몸이 됐다는 자책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통함이 전해지던 바로 그 장면이었다.
아킬레우스 역시 자신의 무구들을 입혀 전장에 내보낸 전우의 죽음 앞에 한모와 같은 감정을 느꼈으리라 짐작된다. 수천 년 전 사람이 감정을 표현하던 방식이 요즘 사람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사회는 폭발적으로 발전했지만 인간의 내면은 그대로인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요즘까지도 인문고전을 읽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히어로 중의 히어로의 등장.
과연 그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단 세 번 크게 소리치는 것만으로 열두 명의 전사가 나자빠져 죽음을 맞이한다.
입이 떡 벌어지는 능력치와는 별개로 나는 좀 실망스러웠다.
이리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지키러 당장 일어서라고 하는데도 아킬레우스는 ‘나도 그러고 싶지만 무구가 없다.’는 말로 망설인다. 이리스가 다시 한번 ‘우리도 그건 안다. 하지만 이대로라도 나가 모습이라도 비추라. 트로이아인들이 겁이라도 먹는다면 그 사이 아카이오이족이 좀 숨이라도 돌리게!’라고 채근하고서야 발걸음을 옮긴다.
아니, 아킬레우스는 뭐하는 인물이야. 이 전쟁에서 얼굴마담 역할이나 하고 있다니. 그리고 마마보이야? 엄마가 새 무구들을 갖고 오기 전에는 무장하지 말랬다고 또 그 말을 철석같이 지킨다. 트로이아 전쟁의 최고의 영웅에 걸맞지 않은 행태에 몹시 실망스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솜씨 좋기로 이름난 헤파이스토스의 집안에는 공상과학 급 물건들이 가득하다.
그중 지금 이 시대의 과학 기술로도 초보 단계인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내 눈을 의심했다.
‘그러자 황금으로 만든 하녀들이 주인을 부축해주었다. 이들은 살아 있는 소녀들과 똑같아 보였는데 가슴속에 이해력과 음성과 힘도 가졌으며 불사신들에게 수공예도 배워 알고 있었다.’
독자 분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이 드는지? 이건 미래 기술로나 가능한 완벽한 인공 지능 로봇이 아닌가. 심지어 황금으로 만들어 미적으로도 뛰어나다.
호메로스의 상상력은 수천 년이 지나 현대인들에게도 센세이셔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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