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유미 Jul 01. 2020

일리아스(제19권)

아가멤논과 화해하는 아킬레우스



“테티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신의 무구들을 전달한다. 아킬레우스는 아카이오이족 장수들을 회의장으로 불러 모으고 아가멤논에게 화해의 뜻을 펼친다.
‘아카이오이족은 아마 우리 둘 사이의 불화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오. 하나 아무리 괴롭더라도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필요에 따라 가슴속 마음을 억제해야 합니다! 이제 나는 분노를 거둘 것이오.’
이에 아가멤논도 자신이 미망의 여신에게 마음이 눈멀었던 지난날을 사과하고 아킬레우스에게 약속했던 선물을 주려고 한다.
그러나 선물은 뒷전이고 당장 싸움터로 달려 나가려는 아킬레우스를 오뒷세우스가 말린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여! 그대 비록 용감하기로 아카이오이족 아들들을 이렇게 공복으로 일리오스로 재촉하여 트로이아인들과 싸우게 하지 마시오. 음식을 먹지 않은 자는 해가 질 때까지 온종일 적과 싸울 수 없소.’
그리하여 아가멤논의 지휘 하에 음식들이 차려지고 각종 선물들이 아킬레우스에게 전달된다. 그가 그토록 되찾기를 원했던 소녀 브리세이스까지.
아카이오이족의 원로들이 아킬레우스에게 음식을 권하고 전우의 죽음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그 무엇도 그를 위로할 수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아테나가 제우스의 명을 받고 아킬레우스의 가슴속에 신주와 신식을 넣어 허기를 없애주었다.
마침내 아킬레우스가 신의 무구들을 걸치고 전차에 올라 말들을 선두 대열로 몰았다. “


<독후감>


솔직히 고백하자면 일리아스를 읽으며 아킬레우스에게 영 호감이 가지 않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없달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영웅담이 생생하게 전해지던 시절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수천 년을 건너뛰어 책으로 접하는 아킬레우스는 영웅으로서 기개가 느껴지지 않았다.
무릇 영웅이라면 삼국지의 인물들 정도는 돼야 하는 거 아닌가.
목숨을 걸고 주군의 어린 자식을 구해오는 조자룡, 그런 장수를 아껴 그를 다치게 할 뻔했던 자신의 자식을 내동댕이치는 유비, 독화살을 맞은 어깨를 째고 뼈를 긁어내는 동안 태연히 바둑을 두었다는 관우 등 국지에는 독자의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드는 비범한 영웅호걸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아킬레우스는 어떤가. 등장에서 아가멤논과 다투고 그 뒤로 내내 파업농성을 벌이 이제 겨우 엉덩이를 일으켰다. 게다가 엄마 말은 또 어찌나 잘 듣는지 내 아들이었으면 궁둥이 팡팡 두드려주고 싶을 지경이다.


‘일리아스’ 아킬레우스는 영웅이라기보다 차라리 한 여자에게 집착한 나머지 이성을 상실한 남자에 가깝다.
모든 장수들을 회의장에 불러 모으고 아가멤논에게 화해를 청하는 장면을 보자.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여! 우리 두 사람은 한 소녀 때문에 마음이 상해 마음을 좀먹는 불화 속에서 원한을 품었소. 내가 뤼르넷소스를 파괴하고 그녀를 빼앗아오던 날 아르테미스가 화살로 그녀를 쏘아 죽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
눈이 뒤집혀 일을 그르친걸 후회하며, 차라리 그전에 여자가 죽어버렸으면 좋았을걸 하는 고백은 소름 끼치게 무서운 소유욕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심지어 그 뒤 아가멤논은 소녀의 순결에 대한 맹세까지 막장드라마보다 더한 난센스를 연출한다.
“나는 소녀 브리세이스에게 결코 손댄 적이 없으며 그녀에게 동침이나 그 밖의 다른 일을 요구한 적도 없나이다.”
그제서 만족하는 아킬레우스.
저런 집착이라면 요즘이었으면 접근금지가처분을 당했을 법도 한데.


오래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에 ‘현대 작가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 주제로 강의를 TV로 본 적이 있다. 대충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옛날 작가들은 비교적 작품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웠다고 한다. 그 당시 작가는 개인의 역량으로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신의 계시를 받거나 신의 대리인 노릇을 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평가와 책임추궁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작가들은 작품의 영광을 오롯이 개인이 누리는 반면 그에 대한 비판과 책임도 혼자 떠안아야 하므로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매우 심하다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가멤논이 자신과 아킬레우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진 것은 전부 신의 탓이라고 하는 대목에서 예전 그 강의가 떠올랐다.
“아카이오이족도 종종 그런 말을 하며 나를 비난했소. 하지만 그 책임은 나에게 있지 않고 제우스와 운명의 여신과 어둠 속을 헤매는 복수의 여신에게 있소이다. 신이 모든 일을 이루어놓으셨는데 난들 어쩌겠소? 미망은 제우스의 맏딸로 모든 이의 마음을 눈멀게 하는 잔혹한 여신이오. 제우스조차도 미망의 여신에게 옴짝 없이 당해 마음이 눈먼 적이 있소. ”
무한 책임감과 끝없는 비판에 시달리며 모든 것이 내 잘못이기를 강요받는 우리에게 고대인들처럼 옛날 작가들처럼 남 탓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정신적 용기, 정서적 숨구멍이 필요하다.

옛사람들의 정신세계 그대로지금에 끌고 오자는 게 아니라 각박한 세상에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영혼이 돼버린 우리에게 그저 잠깐의 쉼을 불어넣어 주자는 말이다.

특히 회사 사활이 마치 자기 손에 달린 것처럼 일해대는 남편에게 꼭 좀 전하고 싶다.

심지어 고대에는 말들조차도 책임 따위는 뒷발길질로 가볍게 걷어차버리는 통쾌함을 보여준다.
아킬레우스가 무구들을 걸치고 전장으로 말을 몰아가며 말들에게 파트로클로스처럼 자신을 내버리고 와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자 신의 도움으로 입을 열어 말들이 하는 말이다.
“강력한 아킬레우스님!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위대한 신과 강력한 운명에게 있어요. 트로이아인들이 파트로클로스의 무구들을 벗긴 것도 우리가 게을렀거나 부주의했던 탓이 아니라, 아폴론이 선두 대열에서 그를 죽이고 헥토르에게 영광을 내렸기 때문이지요.”
고대 말들보다 핍박받는 영혼을 가진 현대인들이여, 죽을 것 같이 괴로울 때는 남 탓, 신 탓이라도 해보자. 

에잇, 빌어먹을 제우스! 에잇, 천하에 몹쓸 미망이여!라고 욕도 하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리아스(제18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