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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Jun 16. 2020

일리아스(제15권)

아카이오이족이 함선들에서 다시 밀려나다


 
**제11권 마지막 장면 : 네스토르가 파트로클로스에게 ‘네가 아킬레우스의 무구들을 입고 대신 싸우라.’는 명을 하고 이를 아킬레우스에게 전하러 가던 파트로클로스가 부상당한 에우뤼퓔로스를 발견하고 막사로 데려가 치료를 해준다.
**금사빠 :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줄여 이르는 말.
 
“이윽고 제우스가 헤라의 품에서 깨어난다. 그가 벌떡 일어나 내려다보니 트로이아인들은 쫓기고 아르고스인들은 뒤쫓는데 그들 속에는 포세이돈 왕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헥토르가 심하게 부상을 입고 들판에 누워 있는 모습도 보였다.
제우스는 헤라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이리스와 아폴론을 불러오라고 명한다.
올륌포스로 날아간 헤라는 신들을 향한 제우스의 위협적인 말들을 전하고 이로 인해 신들 사이에 소동이 일어난다. 이리스와 아폴론은 제우스가 있는 이데 산으로 쏜살같이 날아간다.
이리스는 곧바로 포세이돈에게 제우스의 경고를 전하러 일리오스로 달려갔다.
‘대지를 떠받치고 있는 검푸른 머리의 신이여! 제우스께서 그대더러 전쟁에서 그만 손을 떼고 신성한 바닷속으로 들어가라 하십니다. 만일 그대가 복종치 않고 이를 무시한다면 그분께서 그대와 맞서 싸우러 오시겠다고 위협하고 계십니다.’
포세이돈은 불만에 가득 찬 마음을 거두고 물러난다.
한편 아폴론은 제우스의 명을 받고 헥토르를 분기시키러 간다.
헥토르는 이미 제우스의 뜻으로 소생되어 숨이 가쁜 것도 낫고 땀도 멎었다.
‘헥토르여! 자, 이제 용기를 내어라! 이토록 강력한 후원자를 크로노스의 아드님께서 보내 그대를 돕고 지켜주게 하셨노라. 이 포이보스 아폴론을 말이다.’
이에 전의가 타오르는 헥토르의 전차부대가 함선들로 돌진했다.
그들에 맞서 아이아스를 비롯한 장수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한편 아카이오이족 군사들은 뒤쪽에서 함선들을 향해 퇴각했다.
아폴론이 깊은 호 위로 길을 내니 마침내 그 길로 트로이아인들의 대열들이 앞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트로이아인들은 방벽을 뛰어넘어 말들을 안으로 몰았다. 그리하여 뱃고물들에서 양군의 접전이 벌어졌다.
한편 이때 부상당한 에우뤼퓔로스의 막사에 있던 파트로클로스가 바깥의 상황이 심각함을 알아채고 아킬레우스를 설득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양군은 저마다 다른 함선들을 둘러싸고 싸웠다.
헥토르는 함선에 불을 지르려고 미쳐 날뛰고, 아이아스는 함선을 지키는 데 있어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아이아스의 함선을 둘러싸고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
 
<독후감>
아, 헥토르...... 하필이면! 왜! 그가 제우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야 한단 말인가.
불세출의 영웅에게 고작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노릇이나 시키다니. 읽는 내내 그의 운명이 너무나 불공평하게 생각돼 분한 마음마저 들었다.
제우스는 마침내 자신의 계획을 만천하에(신들에게만) 공개한다.
“아폴론은 헥토르에게 다시 용기를 불어넣어 싸움터에 나가도록 격려하는 한편, 아카이오이족에게는 무기력한 패주를 불러일으켜 그들이 도로 돌아서게 만들 것이오. 그들이 달아나다 아킬레우스의 함선들 사이로 쏟아져 들어가도록 말이오. 그러면 아킬레우스가 그의 전우 파트로클로스를 일으켜 세울 것이고 파트로클로스는 영광스러운 헥토르의 창에 죽게 될 것이오. 그러면 아킬레우스가 그 때문에 화가 나서 헥토르를 죽일 것이오.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함선들에서 새로운 추격을 야기할 것인즉 아카이오이족이 일리온을 함락할 때까지 이 추격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오.”
그러니까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임을 당하기 위해 헥토르는 살아 있어야 했던 것이다.
단단히 삐쳐서 전장에서 파업 시위나 하고 있는 주제에, 아킬레우스가 뭐라고!
 
제우스의 뜻에 따라 테우크로스의 활이 부러지는 것을 본 헥토르는 더욱 사기가 오른다.
“친구들이여! 여기 속이 빈 함선들 옆에서 열화와 같은 투지를 다지시오. 가장 용감한 전사의 활이 제우스에 의해 망가지는 것을 나는 두 눈으로 보았소.”
아무것도 모르고 제우스를 철석같이 믿는 가엾은 헥토르. 그가 힘을 낼수록 마음이 점점 더 아파온다. 제우스의 뒤통수를 한 대 갈겨주고 싶다.
 
‘헥토르가 미쳐 날뛰니, 그 모습은 창을 휘두르는 아레스나 계곡을 휩쓰는 사나운 산불과 같았다. 입에는 거품이 물려 있고 어두운 눈썹 밑에는 두 눈이 번쩍거렸다.’
아, 헥토르. 눈물 없이는 그의 무공을 지켜볼 수가 없다.
승리에 대한 열망으로 입에는 게거품을 물고 눈알은 뒤집혔다.
그는 제우스의 충실한 꼭두각시가 된 죄로 믿는 도끼에 발등만 찍힌 게 아니라 자신의 운명까지도 끊어져버린다.
헥토르는 그때까지도 몰랐다.
'제우스가 그에게 내리는 명예와 영광의 대가는 단명할 운명으로 치러야 한다'는 것을.
'팔라스 아테나가 벌써 펠레우스의 아들의 힘을 빌려 자신을 향해 운명의 날을 재촉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사실은 국민학교...) 삼국지를 읽었을 때가 떠오른다.
뒷이야기가 궁금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삼국지에 푹 빠진 바람에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교과서 뒤에 책을 숨겨서 읽곤 했다.
특히 관우를 무척 좋아했는데 나중에 관우가 죽는 장면을 차마 볼 자신이 없어 며칠을 속앓이를 하며 미루다가 마지못해 그 장면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책 위에 엎어져 대성통곡하는 나를 영문도 모르고 달래다 지친 엄마에게 결국 혼이 났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런 순수한 감성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헥토르가 죽는다고 해서 눈물을 흘리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나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다.
너, 어른이 되었구나.
 
[추신 : 아들이 옆에서 위로의 말을 건넨다.
“괜찮아. 엄마는 금사빠잖아.”
그래...... 사랑은 움직이는 거랬지, 아마.

미안하다 헥토르.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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