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번 통화 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학부모 입장에서 말을 가려야만 해 통화를 끝내고 나니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차마 부치지 못할 편지로나마 그날 솔직한 제 마음을 털어놓아 봅니다.
선생님, 이전 학교의 아이들과 지금 반 아이들을 비교하지 말아 주세요.
아이들이 속상해합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자꾸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고 잘하고 싶은 의욕마저 사라진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비교하는 그 순간 아이들도 비교를 합니다.
'예전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작년에는 학교 가는 게 즐거웠는데.'
선생님은 아이들을, 아이들은 선생님을 저울질하는 그 마음들이 시소처럼 서로를 내리찍어 마음에 상처를 남깁니다.
선생님, '다, 오, 까'로 말을 끝맺게 하지 말아 주세요.
아이를 통해 그 말을 들었을 때 교실이 마치 군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말씨는 상명하복 위계질서가 중요시되는 군대에서 가장 먼저 말로 길을 들이는 문화에서 나온 것이지 않나요?
그런 규칙을 정한 데는 어떤 사정이 있으시겠지요.
선생님께서는 어떤 교육철학으로 그런 말문화를 조성하시나요?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기 전에 충분한 설명과 합의의 과정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설령 뜻하는 바가 있으셨다고 해도 소탐대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끼리 서로의 말투를 지적하고 감시하는 일마저 일어나고 있고 그 말씨를 쓰지 않는 아이와는 대화조차 않으신다고 하니 하루아침에 말을 고치기가 어려운 아이들은 선생님과의 대화를 포기하게 됩니다.
이런 결과를 원하신 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 많이 울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꾸중을 듣고 벌을 서 창피하고 억울했다고 합니다.
잘못을 했다면 꾸중을 듣고 벌을 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맘때 아이들은 형평성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선생님께서 인정하셨듯이 열심히 하고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아이의 한 번 실수를 다른 친구들에게 본보기 삼아 벌을 준 것이라면, 벌을 받는 아이는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는 마음은 뒷전이 돼버리고 억울한 마음만 가득할 것입니다.
아이들도 느낍니다.
자신이 정당한 이유로 벌을 받는 것인지, 감정적인 이유로 벌을 받는 것인지.
선생님께서 그날 제 아이에게 자신을 변명할 기회 한 번 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벌을 세우 신건 아이에게 어떤 교육이 되었을까요?
저는 이 편지를 부칠 수 없습니다.
제 아이가 선생님과 함께 보내야 할 학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는 몇십 년 교직 생활 중 일 년에 지나지 않겠지만 아이에게는 평생 단 한번뿐인 5학년입니다.
그래서 학교가기를 너무 싫어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코로나 세상에 세상 이상한 등교를 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해서 갑갑할 텐데도 친구들과 대화조차 제대로 나눌 수 없어서 답답할 텐데도 꿋꿋이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면 대견한 마음이 듭니다.
처음 겪는 난리통에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힘을 내야 하겠지요.
힘든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만 더 헤아려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지친 선생님들은 학부모들이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