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영혼에서 잊고 있었던 사랑의 감정이 느껴진거야

by 하유미



한동안 내 일상은 참 거칠었다.
매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으며 책 속의 병사들과 함께 창을 피하고 피를 흘리며 전우애를 다지고 흙먼지 속에 뒹굴었다. 해가 떠있는 동안 계속된 전투에 지친 몸을, 해가 지고 나서 전우들과 나누는 포도주 한 잔으로 달래며 내일의 전투를 기약했다.
머리맡에 두고 잔 책 덕분인지 꿈에서도 전투가 이어지는 날들이 종종 있었다. 그런 날은 다음 날 아침에 몸이 천근만근이다. 패잔병처럼 기진한 몸을 일으켜 노트북 앞에 앉아 홀로 고된 싸움을 또 이어간다.
격일로 등교하고 있는 아이가 학교에 갔다 와서 여전히 잠옷 바람으로 노트북과 씨름하고 있는 초췌한 나를 발견하는 날도 가끔 있었다.


장 폴 뒤부아의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난 공사판이라는 게 어느 정도로 성욕을 감퇴시키는지 새삼 절감했다...... 공사판은 성이라는 것에 설 자리를 주지 않는 이 시대 최후의 보루이다. 오직 시멘트와 땀으로만 이루어진 곳, 피와 땀을 쥐어짜는 곳, 공사판.”


타네씨 마음이 곧 내 마음이요, 타네씨 공사판이 곧 내 노트북이었다.
피와 땀을 쥐어짜 내는 전투로 얼룩진 노트북 앞에서 영혼이 탈탈 털리고 모든 욕구에 무감각해지고 손가락만이 최후의 보루로 살아남아 탁, 탁 자판을 두드렸다.


그나마 온전한 사람으로서의 시간이었던 새벽 시간도 6월 프리미어리그가 재개되며 끝이 났다.
알람은 여명이 오기도 전에 울렸고 나는 잠에서 쉬 깨지 않아 비틀거리며 거실로 나와 티비를 켜고 격전지를 그라운드로 옮겼다.
그라운드에서는 열 한 명의 전사가 상대편과 전투를 벌인다. 난무하는 태클, 상대편 뒤통수를 치는 패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슈팅까지. 그라운드 위는 스물두 명의 전사들이 어우러져 점점 그들의 거친 숨소리와 땀으로 채워진다. 나는 그들과 함께 뛰며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태클에 걸려 넘어지고 공과 머리들에 박치기를 하고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는다. 자신의 자리를 대체할 전사들이 줄지어 대기 중이기 때문에 고통은 오롯이 감내해야만 한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 그라운드 위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약간의 허탈함(진 경우)과 약간의 흥분된 기분(이긴 경우)을 느낀다. 인터넷으로 오늘 전투에서 각 전사들이 받은 평점과 관련기사, 인터뷰 등을 검색하고 다음 전투 일정을 확인하고 알람을 설정한다.
그럴 즈음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과 조우하기도 하고, 혹 새벽 전투에 지쳐 다시 잠이 들면 남편이 나를 깨우기도 한다. (아이는 학교를 가야 하겠기에) 응당 이런 날은 오전 내내 살아서도 시체일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곤 한다.


노트북과 그라운드를 넘나들며 전투를 이어가는 동안 집은 점점 폐허가 되어갔다.
집이 엉망이 돼갈수록 나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식탁은 제때 치우지 않아 먹다 남긴 음식들에 날파리가 꼬이고, 바닥에 먼지들은 급기야 지들끼리 뭉쳐 다니기 시작했다. 분리수거통이 넘쳐나 악취가 나고 화장실을 들여다보면서 공중화장실을 사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잠시 잠깐 하기도 했다.

남편은 다림질이 잘 된 옷을 포기했고 아이는 등교 때마다 입고 갈 옷을 옷장이 아니라 건조대가 있는 베란다에서 찾아 입었다.
나의 현실 전우 두 명은 감사하게도 이런 업무태만을 불평하지 않고 잘 견뎌주었다. 두 사람 덕분에 나는 마음껏 노트북과 그라운드를 누비며 전투를 이어갈 수 있었다.


피딱지가 덕지덕지 앉고 찌든 땀내와 함성과 고함에 찌들어 있던 내 영혼에 난데없이 들이닥친 봄바람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됐다.
며칠 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힘든 전투를 끝내고 전우들과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책을 덮은 뒤 소파에 엉덩이를 걸쳤다. 더위를 피해 소파에서 잠든 남편이 틀어 놓은 티비가 홀로 켜져 있었다. 끄려고 리모컨을 집어 들다가 무심코 화면을 봤는데 뭐에 홀린 듯이 일으키던 엉덩이를 도로 붙이고 앉았다.
옛날 지나간 드라마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가 재방송 중이었다. 막상 드라마가 신드롬을 일으켰을 때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눈을 떼지 못하고 2회를 연거푸 보았다.

거친 음식만 먹던 내 입에 하얀 쌀밥은 꿀처럼 달았다.

화면을 뚫고 나온 봄바람이 지친 내 영혼에 훅 불어왔다.

흔들리는 영혼은 잊고 있었던 내 정체성을 일깨워주었다. 나는 전쟁터의 병사가 아니고 그라운드 위의 전사도 아니다. 나는 사랑의 감정을 느낄 줄 알고 아직도 설렐 줄 아는 영혼을 가진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 깨달음은 이상하게도 안도감을 주었고 다시 힘이 났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우리 집 거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호메로스가 목청 좋은 메넬라오스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더라만 우리 집 작은 전사만 할까.
지금 내 등 뒤로는 티비에서 하현우가 ‘돌덩이’를 열창하고 있고 따라 부르는 작은 전사의 목소리는 노래를 뚫고 나온다. 그새 곡이 바뀌어 이번에는 넥스트의 ‘Lazenca, Save us’가 울려 퍼지고 있다.
오뒷세우스가 사람의 머리가 견딜 수 있는 한 큰 소리로 세 번이나 외쳤다고 했는데 내 머리는 이 소리를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락 스피릿을 주체하지 못하는 전사여, 그러든가 말든가.
오늘 내 맘 속 선곡은 장범준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이라오.
어쨌든 나는 내일도 힘을 내서 격전지로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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