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글을 써보니 말입니다.

by 하유미



내가 글을 쓰겠다고 덤빈 이유.
우리 가족 이야기, 특히 아이를 기르며 함께 성장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남기고 싶어서입니다.
일 년을 망설이기만 하다 누가 옆구리 쿡 찔러 줘서 엉겁결에 글쓰기 반에 등록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해 봐.’라고 무심하게 한 마디 던진 남편의 역할도 컸습니다.
뜬 구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간 글쓰기 반의 면모는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저야 마침 집 앞에 그런 곳이 있어서 쉽게 발걸음을 했지만 우리 반 친구님들은 한 시간이 넘게 운전을 해오시기도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혼자 글 쓰며 놀다가 여럿이 같이 쓰면 재밌겠다고 희희낙락하던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읽고 쓰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다들 마음이 열려 있고 유쾌하신 분들이라 수업 내내 즐겁고 힘이 났습니다. 글쓰기 반 친구님들과 선생님께서 없었더라면 절대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그분들께서 등도 떠밀어 주시고 질질 끌어도 주셔서 어찌어찌 오늘까지 왔습니다.


말과 글은 다르다.
물론 어디 가서 말 잘한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 없지만 글은 더했습니다. ‘파랗다’라고 표현하고 싶어서 글로 쓰면 ‘푸르죽죽하다’가 돼버리거나 ‘파르스름하다’ 또는 ‘시퍼렇다’ 심지어 ‘빨갛거나 노랗다’가 돼버리는 황당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말할 때는 말뿐 아니라 손짓, 발짓, 얼굴 표정까지 다 쓸 수 있지만 글은 글자로만 나타내야 하니 차, 포 다 떼고 장기를 두는 기분이었습니다.
내 뇌를 열어 보이지 않는 이상 내 마음을 똑같이 재현해 줄 문장을 만든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줄기차게 외치셨습니다.
“잘 쓰려고 하지 말고 막 쓰세요!”
어휴, 말처럼 쉽나요. 머릿속에 모기가 날아다니듯이 떠도는 문장을 잡아야 겨우 한 줄 써지는 초보는 그렇게 막 쓰는 연습만 몇 달을 했습니다.


퇴고의 늪.
선생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밀림을 헤매며 눈앞에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베고 쓰러뜨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하던 제 앞에 넓디넓은 늪이 나타났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제 잘 쓰는 법을 배울 때가 왔다며 그 늪에 들어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애초에 다 계획이 있으셨던 겁니다.)
제 첫 공모전 작품(탈락 작이 되었습니다만)을 들고 뭣도 모르고 발을 담가 보았습니다. 한 발을 담그니까 쑥쑥 빨려 들어가더군요.
시도 때도 없이 장소 불문하고 글을 고쳐댔습니다. 눈만 뜨면 노트북에 매달리고 자려고 누우면 문장이 천정에 떠다니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똥을 누면서도 오직 문장, 문장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답도 없는 노동은 이랬습니다.
문장이 움푹 팬 곳은 메우고 불룩 솟은 곳은 깎아서 매끄럽게 읽히도록 만듭니다. 문단을 잘게 쪼개거나 순서를 바꿔보고 통으로 버리기도 하며 난도질을 해봅니다. 이 부분을 고치면 저 부분이 이상하고 여기를 고치니까 저기랑 맞지 않고. 나중에는 글 전체가 이상해져 다시 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만하면 이제 괜찮겠지 싶어서 진짜 마지막이다 다짐하며 읽어보면 어김없이 손 볼 곳이 또 나타납니다. 진짜 마지막은 백 번도 넘게 찾아왔습니다.
늪에서 헤어 나오려고 아등바등 애를 쓸수록 더 깊이 빠져 들어가 숨이 꼴딱 넘어갈 때쯤 늪 바닥에 발이 닿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서야 읽는 게 벌칙이 아닌 글 한 편이 완성되었고 저는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처음 해 본 퇴고 작업이었고 절대 권할 만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저는 지독하게 빠졌던 겁니다. 두 번 다시 이렇게 해보라고 하면 그 사람을 두 번 다시 못 보게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글감 부족에 시달리다.
자꾸 쓰다 보니 가뭄에 저수지 물 마르듯이 쓸 거리가 줄어들었습니다. 알토란같이 간직하고 있던 이야기들을 다 빼먹고 나니 없는 이야기도 지어내야 할 형국이 되었습니다. 부실한 재료로도 훌륭한 음식을 만들 만큼 뛰어난 요리사가 아니고서야 원재료가 싱싱해야 글도 살 텐데 말입니다.
제 일상을 들여다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전쟁터 못지않은 육아 전선에서 물러 난지 좀 돼서 매일 머리를 쥐어뜯은 자리에 이야깃거리가 나던 시절도 다 지나갔습니다. 아이는 알아서 잘 크고 있고 남편은 다 컸고 저만 잘 크면 되는데 게으름이 발목을 잡습니다. 게으른 집순이 주제에 책을 손에서 놓은 지도 오래돼 마음의 양식마저 똑 떨어졌습니다.
갑자기 바이러스가 유행하며 집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니 엎친 데 덮친 격이지요. 복사 붙이기의 반복인 일상 속에서 하루 종일 하는 생각이란 삼시 세 끼 뭐해먹지 하는 건데 도대체 무슨 글감을 찾을 수 있을까요?


촘촘한 그물로 일상을 건지다.
글을 계속 쓰려면 방도를 찾아야 했습니다.
일상에 대단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글감을 건지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성긴 그물 사이로 많은 일상의 의미들이 새 나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것.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놓치고 있는 것들을 잡기로 했습니다.
촘촘한 그물로 일상을 건지면 더 많은 소중한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 그물에 평생 더위를 타던 남편이 침대 위에 벗어 놓고 간 수면 양말 같은 게 건져지더군요.


오십 편의 글.
제 글이 50편이 넘게 생겼습니다. 벌써 이렇게나 하는 마음과 겨우 이만큼 하는 마음이 교차합니다.
모든 글의 첫 독자이자 일 호 팬은 아이입니다.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엄마가 글로 쓰는 걸 좋아해서 쓸 때의 고됨은 자꾸 잊어버리고 계속 쓰게 됩니다.
우리끼리 재밌자고 쓴 글인데 이제 제 이야기를 재미있어해 주시는 이웃님들이 생겨났습니다. 뜻밖이면서도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칭찬은 고래만 춤추게 하는 게 아니라 자판 위 제 손가락도 춤추게 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계속 써 보려 구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라도 되겠죠. 죽도 밥도 안 돼 탄 밥이 된다 하더라도 언제나 제 글을 기다려주는 일 호 팬이 있으니까요.
백 편을 채우고 다시 글을 쓰는 의미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그때는 저도 좀 나아져서 꾸역꾸역 쓰지 않고 폼 나게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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