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만 해도 봄은 이름부터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올해도 변함없이 봄이 왔는데 만끽할 수가 없다.
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사회에도 봄이 오기를.
마음만이라도 봄기분을 내보고 싶어서 작년에 쓴 글을 꺼내 본다.
봄 예찬. 2019. 04. 05
대게 내 옷차림을 결정하는 건 그날 아침 뉴스의 날씨 코너이다.
어쩌다 일기예보를 미처 챙겨보지 못한 날에는 오후 늦게 비를 만나거나 꽃샘추위에 벌벌 떠는 낭패를 보기도 한다.
누가 알려 주어야만 우산을 챙기거나 옷을 한 겹 더 껴입거나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인간은 자연 앞에 참 별거 아닌 존재이다.
식물은 그렇지 않다.
7시마다 아침 뉴스를 듣지 않아도 알아서 옷차림을 바꾼다.
식물들은 봄이 온다는 걸 어떻게 아는 걸까.
무심한 사람들은 꽃이 다 피고서야 알아채지만 봄을 맞이하는 때의 나무를 관찰해보면 매일이 변화무쌍하다.
겨우내 바싹 말라죽은 게 아닐까 싶던 나무둥치가 봄맞이를 시작한다.
한껏 물을 머금기 시작한 나무는 겉보기엔 겨울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지 모르게 생기가 도는 얼굴 같다.
이때부터 나무가 얼마나 부지런히 봄을 맞는지 살펴보는 즐거움으로 매일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손톱 만하던 겨울눈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시나브로 꽃봉오리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한다.
아파트 마당에서 내가 처음으로 알아채는 것은 목련 꽃봉오리다.
일찍 피는 꽃이기도 하고 꽃이 큼직한 만큼 봉오리도 눈에 잘 띈다.
목련 꽃을 활짝 피우는 며칠 동안 나무가 애쓰는 게 고스란히 느껴져 덩달아 나도 응원하게 된다.
물을 빨아올려 봉오리 끝까지 밀어내는 그 힘으로 목련은 조금씩 마침내 활짝 핀다.
눈부시게 하얀 목련 꽃은 등같이 밝아서 한 송이 따서 길을 밝히고 밤길을 걷고 싶다.
달빛의 시샘을 받으면서.
만개한 목련꽃의 우아한 자태를 보고 있으면 학창 시절 음악시간에 배웠던 가곡 한 구절이 절로 흥얼거려진다.
'오 내 사랑 목련화야~'
목련 꽃을 보면 목석같은 사람도 세레나데를 부르게 되는 것이리라.
나중에 볼품없이 떨어진 목련 꽃잎을 보면 사랑이 끝난 뒤 추하고 처참히 밟힌 마음 같기도 하다.
그즈음에 매화도 터지기 시작한다.
매화가 터지는 소리는 눈으로 듣는다.
경쾌한 음악이 해가 잘 드는 순서대로 도미노로 연주된다.
아이와 나는 그걸 팝콘 터진다고 하는데 꽃을 먹으면 팝콘 맛이 날 것 같다는 똑같은 농담을 하며 매년 웃는다.
아파트 마당에는 매화와 벚꽃이 섞여 심어져 있는데 사실 아직도 구분을 잘 못한다.
예전에는 더 심해서 봄에 피는 흰 꽃은 모두 벚꽃인 줄 알았었다. 한 번은 벚꽃 폈다고 신나서 아이와 둘이 '벚꽃! 벚꽃!'을 외치며 돌아다녔다. 나무에 버젓이 매화나무라고 이름표가 걸려있는걸 뒤늦게 발견하고 머쓱해졌지만.
꽃 피우는 치열한 현장을 살펴보느라 한동안 위만 보고 다닌다.
나무에 피는 꽃은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보는데 반해 땅에서 피는 것은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며칠 전부터 바람에 떨어지는 벚꽃잎을 받아먹으려고 아이와 둘이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야속하게도 우리를 다 비껴가서 땅에 떨어지는 벚꽃잎을 쫓다가 민들레를 발견했다.
노란 아기 궁둥이 같은 꽃이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에 발을 동동 굴렀다.
그것 말고는 반가운 마음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다.
그 옆에는 일찌감치 난 뽀얀 쑥이 아침잠이 없어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노인처럼 점잖게 자리하고 있다.
한창 꽃구경하는 이때가 아이는 비염으로 고생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병원에 약 타러 갔다 오면서 보니 일찍 피운 어떤 벚나무는 벌써 꽃은 다 지고 아기살 같은 연둣빛 싹이 났다.
벚꽃잎을 하얗게 덮은 길을 걷고 있으니 왠지 내가 사랑스러워지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치료 잘 받고 왔으니 닭꼬치를 사내라는 아이 성화에 정문 앞 푸드트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담장을 휘감고 싹을 틔우고 있는 장미 나무가 보인다.
만져보니 겨울을 난 가시는 딱딱하고 새로 난 가시는 말랑말랑하다.
식물의 생이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이렇게 딱딱해지기 전에 운동해야겠다."
아이에게 하소연하면서 다음 주부터는 미뤄왔던 요가를 꼭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올해는 개나리를 못 봤다.
이런, 봄의 유치원생을 놓치다니......
자고로 봄에는 사람도 부지런해야 하는 것이다.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