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글이 2월 26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편씩 쓰겠다던 결심은 자연스레 느슨해졌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라고 자조하지 않는다. 열정 부스터를 장착한 끈기 쟁이들처럼 못한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마음에서 놓지 않는 것이란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아이들이 자연 탐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탐험 중 나타난 험난한 지형 앞에서 모두 주저하고 있을 때 인솔 교사가 한 말이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Just keep going!”
멀리 보지 말고 그냥 지금 니 앞에 한 발만 내딛으라고 아이들을 독려하는 말이었다.
축구에서 공격에만 열을 올리는 전술을 시쳇말로 ‘닥공’이라고 한다.
닥치고 공격.
그래 나도 닥치고 한 발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끈기가 결여된 사람이다. 내로라하는 작심삼일의 화신들 정도는 명함 받기를 거부한다. 삼일은 어떤 이에게는 대단한 치적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희한하게도 오히려 어릴 때는 잘 참았다는 엄마의 증언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네가 어릴 때 얼마나 얌전하고 엄마 말을 잘 들었던지. 병원에 가서 약 타 올 동안 여기 있으라고 하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손가락 하나 안 움직이고 그대로 앉아 있었는데. 아유, 다 커서 왜 그러냐.”
그런 에피소드는 엄마의 기억을 왜곡시키기에 딱이다. 실상은 낯선 곳, 더구나 병원이라는 곳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것이 무서워서 얼어 있었던 것이다.
유년기에 나는 겁이 많고 조용하고 몸 쓰는 걸 싫어해서 어른을 성가시게 할 만한 일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을성이 많다는 오해를 살 만했다.
나 자신조차도 그런 줄 알고 살았으니까.
내 인생을 통틀어 딱 한 번 끈기 아닌 끈기를 보인 것은 재수를 한 것이다.
고3 수능을 완전 망치고 선택을 해야 했다. 재수를 할 것인가, 점수에 맞추어 하향지원을 해서 대학을 갈 것인가.
그 당시 집안 형편에 재수를 하기는 어려웠다. 지금의 나라면 눈높이를 낮추어 대학을 갔을 것이다.
그러나 19살 자존심에는 그럴 수 없었다. 이가 갈리고 억울하고 도대체 누구한테 인지 모를 복수심에 불탔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만함은 엄마의 눈에 강한 의지로 잘못 해석이 되어 마음 약한 모성을 흔들어 놓아 허락을 받아냈다.
결국 다음 해 처음 목표했던 과를 가긴 했는데 일 년 동안 들인 노력과 비용을 생각하면 결코 잘됐다고 할 수만은 없는 결과였다.
그 뒤 흐지부지했던 대학생활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재수를 한 것은 치기 어린 오기가 불러온 해프닝에 불과했다.
입학해서 그녀를 처음 보았다.
첫눈에도 그녀는 쾌활하고 성격이 좋아서 살면서 단 한 명의 적도 만들지 않았을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을 걸어서 까칠한 친구들조차도 그녀와 함께 있으면 소외되지 않았다. 누구나 좋아하는 그녀.
나는 그녀가 불편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잘 지냈다. 그녀와는 잘 못 지내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었다.
겉으로는 그녀와 같이 웃고 떠들어도 마음 한구석은 자꾸 경직되었다.
과에는 성격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즐겁게 어울렸다. 절대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그녀만 불편했다.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졸업한 지 20년이 되었다. 전에 고백한 적 있지만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며 나는 아주 많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이는 마음 학습에 있어 부진아이던 나를 가르치러 온 선생님 같았다.
30년 동안 얼어붙어 자라지 않던 마음이 육아를 하며 아이와 함께 성장을 했다.
마침내 고질병처럼 따라다니던 오만한 자존심을 버릴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빈자리를 글쓰기를 통해 자존감으로 채우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바뀌고 나서야 20년 전의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유독 그녀만 불편했었는지.
그녀는 살아오면서 처음 만나본, 자체 발광하는 부류 즉 자존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정서적 금 수저, 흙 수저’가 있다고 하던데 당시 눈물겨운 흙 수저였던 나는 자존심과 자존감을 구분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란 걸 생각하면 ‘정서적 다이아몬드 수저’ 정도는 됐어야 할 판인데 그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자신의 약점도 거리낌 없이 내보이며 다가오는 그녀가 너무 눈이 부셨다.
약점을 보이기 싫어 사람들에게서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나는 그녀를 대할 때마다 마음속에 선글라스를 써야만 했다.
솔직하게 그녀가 부럽다고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초라하고 볼품없는 내 마음을 들키는 것과 같은 말이었으니까.
'불편한 마음’ 뒤에 나 자신을 숨겼다.
나와는 다른 범주의 그녀들.
그녀들은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그녀들이 남달랐던 건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마음의 주인이 자신임을 분명히 한 점이다.
나 같은 사람은 작은 상처도 헤집어서 덧나게 만들어 흉터를 남기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나와 다르다는 것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그 당시 나는 자존심으로 절대 이길 수 없는 그녀들의 자존감이 두려웠던 것이다.
작년에 친구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여전히 쾌활하고 다정하고 사려 깊었다.
그날 그녀가 참 사랑스러웠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새로운 ‘그녀’를 만났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나는 넘치는 자존감으로 무장한 그녀 앞에서 또다시 속수무책이었다. 마음이 본능적으로 경계태세에 돌입해 방어기제를 펼쳤다. 그녀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조급해하거나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툰 걸음마로도 차츰 마음이 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다정한 배려심이 따뜻하게 느껴지고 살갑게 대하는 모습에 반가워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녀의 농담에 뒤질세라 같이 맞장구까지 치는 사이가 되었다.
BTS가 새롭게 내놓은 앨범 ‘Map of the Soul : 7’의 interlud곡 ‘shadow’에서 슈가는 말한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인정할 때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한다.'
음악을 들으며 내 그림자를 생각해보았다.
아무런 방어막을 치지 않고 선글라스를 벗고 나를 바라보았다.
정서적 흙 수저라며 자신을 측은하게 여기는 어리석은 마음과 내버린 자존심 찌꺼기가 남아있다.
살면서 계속 버릴 것이다.
우리 집 아이는 겁이 많다. (물론 날 닮은 것이다.)
위층에 사는 친구 집에 뭐 갖다 줄 게 있어서 저녁에 보낼라치면 당당하게 말한다.
“엄마 무서워서 못 가. 난 원래 겁이 많잖아.”
입으로는 타박을 하지만 자신의 약점을 대놓고 말하는 녀석이 속으로는 대견하다.
‘니 글은 고통을 겪은 흔적이 보여서 좋아.’라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올 겨울 나는 시를 쓰며 내 고통을 피하지 않고 직시해왔다.
앞으로도 도망치지 않고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눈이 부시면 눈이 부신대로 마주할 것이다.
Just keep go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