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밭도 아니라면서

by 하유미



산과 산이 만나 만든 골짜기에 그 땅이 있었다.


“감 따러 간다고? 나도 갈래.”

주말에 텃밭에 감 따러 간다는 엄마의 말에 나도 모르게 불쑥 외쳤다. 파나 배추를 뽑으러 간다고 했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감이라는 말에 마음이 동했다.

명색이 농촌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빠가 농사를 짓지 않고 읍내에 살았기 때문에 작물을 수확해 본 경험이 없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가까이 농사를 짓고 계셔서 가을이면 할아버지 밭에 놀러 삼아 감을 따러 간 기억이 난다. 어른들이 긴 작대기로 잘 익은 감을 따주면 그걸 받아서 장갑으로 먼지를 닦고 감잎을 정리해서 바구니에 한가득 담았었다. 발갛게 익어 매달려 있는 홍시를 갓 따서 먹으면 시원한 단 맛이 꿀맛이었다. 온전한 홍시는 조심스레 담고 터진 홍시만 골라 먹는데도 감은 나무에 지천으로 열려 있어 몇 개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먹는데 싫증이 나면 동생과 터진 감으로 호작질에 열중했다.

아마 그런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길이 험하다고 몇 번이나 만류하는 엄마를 부득부득 따라간 것은.


엄마가 이 텃밭을 일구기 시작한 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니까 십 년도 전이다. 할아버지 밭 언저리 어딘가에 붙은 땅이라고 했으니까 차를 타고 30분 남짓 촌길을 달려가야 하는 곳이다. 한 번도 구경해 본 적이 없어서 내게는 말로만 전해지는 신비의 땅이었다. 실로 엄마 아빠의 반응이 그 땅에 대한 의구심을 더 키웠다. 엄마는 항상 “밭도 아니야.”라며 수줍게 설명을 했고 아빠는 그때마다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봤다.


밭도 아니라고 이름 붙은 그 밭은 십 년 넘게 두 분에게 끊이지 않는 다툼 거리를 제공했다. 밭도 아니지만 어쨌든 밭이어서 철마다 일거리가 이어졌다.

거름도 내고 풀도 좀 뽑아야 하는데.”

“이번 장에는 모종을 사다가 좀 심어야 하는데.”

“이래 가물어서 물을 좀 줘야 하는데.”

“배추벌레도 잡고 상추도 좀 솎아 내야 하는데.”

엄마는 내내 동동거리다 주말이 되면 아빠를 대동하고 밭에가 몇 시간씩 머물다 왔다. 엄마가 ‘좀 해야 하는데.’라는 일거리는 죄다 아빠 일거리가 되었고 퇴직하시고 나서는 그나마 아빠가 외면할 수 있는 합당한 이유도 사라져 매일 밭을 들락거려야 했다. 텃밭이란 게 내 집 앞, 내 발로 걸어갈 수 있는 곳이라야 할 텐데 두 분은 매일같이 차를 타고 왕복 한 시간씩 걸려가며 텃밭을 일구러 다녔다.


그렇다고 텃밭이 분란만 일으킨 건 아니었다. 가끔씩 밭에 다녀오신 두 분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여보, 까치가 그렇게까지 똑똑한지 몰랐네. 땅콩을 파먹고 안 파먹은 것처럼 흙을 가지런히 도로 덮어놓을 줄 어떻게 알았을까?"
"멧돼지가 고구마를 죄다 파먹어서 성한 게 별로 없던데 설마 당신 있을 때 나타나지는 않겠지?"
그렇게 두 사람에게 소소한 잡담 거리도 만들어주었다.


밭도 아닌 밭 치고는 나지 않는 작물이 없었다. 고구마, 감자, 무, 당근, 양파 같은 뿌리채소부터 파, 상추, 시금치, 쑥갓, 겨울초, 부추, 봄동, 배추 등등 내가 통칭 풀이라고 부르는 것들 하며 토마토, 고추, 가지, 오이, 호박, 자두, 살구, 매실 등 과채류에 과실까지 안 나는 것 빼고는 다 났다. 심지어 내가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자 특용작물까지 등장했다.

“작두콩이 비염에 좋대. 말려서 차로 끓여 먹으면 겨우내 감기를 안 한단다.”

“수세미 물이 기침에 그렇게 좋대. 아무 맛도 안 나니까 마시기도 안 어려워.”

그 바람에 아빠는 싫다 소리도 못하게 됐다. 손자 먹일 거니까 약 안 친 거 먹여야지 하는 엄마의 말은 꿈적 않던 아빠도 움직이게 만들었다. 나는 덕분에 아이 키만 한 신기한 콩도 구경하고 플라스틱 수세미가 아닌 천연 수세미로 설거지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 밭은 내게도 짐이었다. 작물은 종류만 다양한 게 아니라 양도 어마했다. 주말에 집에 갔다 올 때면 차 트렁크에 더 이상 실릴 수 없을 만큼 채소가 실렸다. 겨우 세 식구 밥 조금 해 먹는 건데 가져가 봐야 다 못 먹는다고 아무리 말려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내 입으로 들어간 것보다 다 먹지 못하고 결국 물러져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것들이 더 많았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텃밭 일구기를 그만하자고 10년째 외치고 있다.


“밭에 감이 났었나?”

“할아버지가 심어놓으신 건데 돌아가시고 돌볼 수가 없어서 베어버렸지. 그런데 생명이란 게 참 대단하더라. 잘린 둥치 옆으로 싹이 터져 나와 가지가 되는가 싶더니 올해 거기 감이 열린 거 있지. 거름도 한 번 안 줘, 물도 한 번 안 줬는데 저래 살아난 게 얼마나 기특한지. 내가 감 좋아하는 거 알고 아버님이 살려주신 거 같아”

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엄마가 감나무 살아난 이야기를 하며 하도 감격스러워해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사람이 죽었다 깨어난 줄 알겠다 싶었다.

애당초 남편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어서 집에 두고 아이만 데리고 엄마 아빠 넷이서 차를 타고 나섰다.


차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서부터 내려서 걸었다. 아이에게 혹시 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겁을 줬더니 아이는 눈에 불을 켜고 땅바닥만 살피며 걸었다.

길가에 들국화며 나팔꽃, 이름도 모르는 풀꽃들이 옹기종기 피어있었다. 얼마 전 벌초를 해서 그나마 걸을만하다는 소리를 등 뒤로 들으며 베어 넘어뜨린 풀이 늪을 이루고 있는 길을 헤치고 이백여 미터를 나아갔다. 그 길 끝에 텃밭이 있었다.

그 밭을 보자마자 그동안 가졌던 의문들이 저절로 풀렸다. 왜 엄마는 항상 수줍게 밭도 아니라고 말했는지, 왜 그때마다 아빠는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거기는 낮은 산 두 개가 끝나며 이어지는 골짜기의 시작점이라 누구도 거기 밭이 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없는 데였고 아빠는 매번 물이며 퇴비를 차에 실어와 이 길로 짊어져 나르는 생고생을 했던 것이다.


쓸데없이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엄마에게 단단히 타박을 놓으려고 입을 달싹거리다 눈앞에 벌어진 놀라운 광경에 그만 딴 소리가 먼저 튀어나와버렸다. 고라니 한 마리가 밭 한가운데 죽어있었다.

“세상에! 저게 뭐야!”

눈을 어디 둘지 몰라 헤매는 나와는 다르게 아이는 “고라니!”라고 반갑게(?) 외치며 가까이 다가갔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형태는 그대로였지만 그래도 시체라 꺼림칙한 마음에 아이를 말렸다. 아빠는 고라니 뒷발을 움켜쥐고 깊은 골짜기 안으로 끌고 사라졌다.

우리가 바지런히 파를 뽑고 감을 따는 동안 아이는 고라니를 그것도 죽은 고라니를 봤다는 사실에 좀 충격을 먹은 듯해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중에 산에서 내려올 때 독사를 찾는다며 땅바닥을 들쑤셨던 걸 보면 딱히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고라니의 의문사에 대한 추측이 이어졌다.

갖가지 소설이 난무했는데 그중 아빠가 내놓은 사인이

가장 그럴싸했다.

밭 한쪽에 있는 커다란 고무 물통에 항상 물을 가득 채워놓는데 가끔씩 그 물을 마시러 고라니가 내려왔다고 했다. 그러니 그 고라니는 아빠랑 안면이 있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제 파 고랑에 물을 퍼줘 물이 반통으로 줄어든 게 문제였던 것 같다고. 물통 안으로 몸을 깊숙이 숙이다 균형을 잃고 뒤로 나자빠져 뇌진탕으로 급사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하필 그날 파밭에 물을 줘가지고.”

장례를 치러주고 온 아빠는 죽은 고라니를 안타까워했다.

감나무 살릴 궁리를 하는 엄마나 고라니한테 정 붙이는 아빠나 둘 다 엉터리 박사 같았다. 고라니고 감나무고 이 밭 자체를 그만두라고 일갈했지만 은근히 내년에도 감이 열릴까 하는 기대가 내 마음속에 들어앉은 사실은 절대 비밀이다.

앞좌석에 앉은 아이가 차창 밖으로 할머니가 꺾어준 갈대를 휘날리며 연신 재밌다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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