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가 또 말썽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언제 그랬는지 하얀 소파에 검은색 물이 들어있었다. 남편이 껌 딱지처럼 붙어있던 자리만 그런 걸 보면 남편의 새 운동복 바지가 원인이었던 것 같다. 천 재질이라서 물든 걸 어떻게 뺄지, 뺄 수나 있을지 무척 난감했다.
일단 소파에 문제의 그 세제를 (무려) 내 손으로 마구 뿌렸다. 잠시 세제가 스며들기 기다렸다가 (이런 짓을..) 마른걸레로 닦았더니 의외로 색이 빠지기 시작했다. 희망을 본 나는 기뻐서 세제를 들이붓고 (그러지 마!) 남편은 더욱 힘을 내 걸레질을 해댔다. 물든거 빼려다 남편 팔이 먼저 빠질 것 같을 즘에야 우리는 만족하고 작업을 끝냈다.
“근데 아까부터 세제 냄새가 좀 나지 않아?”
“휘발성이니까 환기하면 괜찮아질 거야.”
남편의 대수롭지 않은 말과 다르게 일은 생각보다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그날 하루 종일 세제 냄새를 맡고 나니 저녁 무렵에는 머리가 아파왔다. 그 뒤로 몇 날 며칠 동안 계속 환기를 해도 냄새는 전혀 사라지지 않고 소파에 올려놓는 물건마다 냄새가 배었다. 일주일간 그 자리에는 사람도 물건도 얼씬하지 못했다.
없는 살림 상식을 쥐어짜 내 베이킹소다를 녹인 뜨거운 물에 수건을 적셔서 소파를 닦아내는 방법도 써보았다. 몇 시간에 걸친 작업으로 녹초가 되고 나서야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 무식하게 손발만 고생시킬 게 아니라 전문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청소 업체를 검색했다. 가정 내 가구나 전자제품을 청소해주는 곳들이 주르륵 떴다. 인터넷 쇼핑이 안 익숙한 데다 이럴 때는 꼭 결정하는데 애를 먹어 눈 딱 감고 맨 첫 번째를 선택했다.
웹사이트 주소를 클릭하고 들어가 보니 고객이 기본적인 정보를 입력하면 그에 알맞은 업체를 찾아 연결시켜주는 곳이었다. 주소지와 청소할 품목과 품목의 현재 상태를 입력하고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 불과 몇 분 만에 한 군데서 문자가 왔다. 소개글을 읽어보니 사업장 주소가 서울이었다. 잘못 봤나 싶어서 눈에 힘을 주고 다시 봐도 서울이었다. 여기는 대구인데 일이 가능한 건지 문의했다.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유미 고객님, 반갑습니다. 저희가 전국에 다 있어요.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라. 소파가 상해서 너무 속상하셨죠? 저희가 내용을 다 이해했고요, 냄새를 빼려면 습식으로 그러니까 쉽게 설명하면 기계로 물 세척을 해서 세제찌꺼기를 빨아내는 거예요. 맞는 장비가 다 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냄새는 다 빠집니다. 진행하시겠어요?”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세련된 서울말로 막힘없이 청소 과정을 설명해주니 더욱더 믿음이 갔다. 거기다 하유미 고객의 속상한 마음까지 이해해주는 세심함에 며칠간의 고단함이 단박에 날아가 버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예약 날짜는 따로 팀장이 직접 잡을 거라며 통화를 끝냈다. 마음속으로 이미 소파는 청소를 끝내고 새 것이 된 거나 다름없었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팀장 목소리는 내 예상과 다르게 담당자보다도 더 젊은 서울 여성인듯했다. 당연히 대구 지점에서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잠시 당황했다. 목요일 부산 일정이 끝나면 저녁인데 그때 방문해도 되는지 물었다. 8시에서 8시 반 사이에 도착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 날로 잡았다.
‘부산에서 온다고? 이 사람들 서울에서 내려와 전국을 다니는 건 아니겠지 설마.’
목요일이 되자 설마는 사실이 되었다. 청소 팀이 오기 전에 저녁 해 먹고 설거지까지 끝내 놓으려니 마음이 바빠 아이를 자꾸 채근하는 중이었다.
팀장에게서 일이 늦어져 약속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다고 전화가 왔다. 늦어도 9시 반까지 도착한댔으니 마치면 10시가 훨씬 넘는 시각이다. 아래층에는 8시 이후 한 시간 정도 소음이 날 수 있다고 양해를 구해 놓은 상태였다. 다른 날을 물어보니 더 늦은 시각만 가능하다고 했다. 선택의 여지없이 내몰린 상황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애써 불편한 마음을 달래며 공동주택이라 늦은 시각 소음에 민감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 최대한 빨리 와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팀장은 무척 미안해하며 거듭 사과를 전했다.
식탁을 치우며 시계를 보니 7시 반이 넘었다. 부산에서 대구까지 못 잡아도 한 시간 반은 걸린다. 거기 일이 이제 끝났다는데 최대한 시간 맞춰 오려면 이 사람들 그럼 저녁은 안 먹고 오는 건가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직접 할 것도 아니면서 일 앞두고 나는 밥도 한 그릇 든든하게 먹은 참이었다.
개수대에 담겨 있는 빈 밥그릇이 자꾸 눈에 밟혔다. 수저까지 마저 개수통에 넣고 잠시 망설이다 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좀 늦으셔도 되니까 식사 안 하셨으면 드시고 오세요. 딱 저녁시간이네요.’
바로 답장이 왔다.
‘와 정말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갈게요.’
이 사람들 정말 저녁도 굶고 올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10시쯤 나타났다. 예상대로 젊은 여성 두 명이었다. 한 시간 동안 정성껏 소파 청소를 했다. 어떤 도구를 쓸 건지 어떻게 청소할 건지 일일이 보여주고 자세히 설명을 했다.
“전국에 지점이 있는 줄 알았지 이렇게 직접 서울에서 전국으로 다니는 건지 몰랐어요.”
“오늘 부산에서도 내내 그 말을 들었어요. 저희 제주도까지 갑니다.”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시는 건가요?”
“네.”
여기서 서울까지 길이 얼만가 싶어 내가 다 막막해지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씩씩하다.
늦은 시각 방문을 허락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떠나는 그들에게 귤과 초콜릿을 한 봉지 담아 건넸다.
그러나 소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젖은 데가 다 마르고 나면 냄새가 안 날 거라는 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여전히 소파 한쪽은 사용금지구역이었다. 한참을 고민 끝에 팀장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그 상냥한 서울 여성은 당연히 재방문한다며 예약 날짜를 잡았다. 이번에는 울산에 들렀다 와야 해서 저녁 7시 좀 넘을 거라고 했다. 내 입장에서 몇 시고 간에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무조건 감사하다고 했다.
예약일 날 팀장이 많이 늦을 것 같다며 풀 죽은 목소리로 다시 전화가 왔다. 11시나 12시 정도 돼야 도착할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조바심이 묻어났다. 나만 허락하면 꼭 방문하고 싶다는 말이 전혀 빈말이 아님이 느껴졌다.
“괜찮으시겠어요?”
물론 그렇게까지 늦은 시각은 괜찮지가 않았다. 소음보다 그 시각 일을 마치고 귀경할 두 사람을 상상하니 엄두가 안 났다. 무엇보다 또 저녁도 거르고 오겠다고 덤빌까 봐 겁이 났다. 그 옛날 전쟁터에서도 창보다 먼저 든 것은 밥숟가락이라던데. 옛사람도 다 아는 그 중요한 일을 서울 사람 두 명은 밥 대신 자꾸 까먹는 것 같았다. 다음번 언제라도 좋으니 가까운 곳에 일이 생기면 잊지 말고 방문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하유미 고객님, 계속 소파를 사용하지 못해 정말 불편하시죠. 절대 절대 잊지 않고 빠른 시일 내 방문할게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은 예의 그 세련된 서울말로 마지막까지 하유미 고객의 마음을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저녁을 먹으며 남편에게 팀장 이야기를 했더니 불쑥
“그 사람들 안 오겠다는 말 아니야?”
라고 어이없어했다.
“무슨 소리야. 그 사람들 절대 그럴 사람들 아니야.”
손까지 휘저으며 편을 드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서울 사람들 대단하다 대단해.”
라며 혀를 내둘렀다.
일하는 솜씨가 대단하다는 건지 고객을 구워삶는 솜씨가 대단하다는 건지 생각할수록 아리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