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산책길에 한 건물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시민인문학교'
인문학에 대한 곁눈질 정도의 관심이 항상 있었던 터라 조심스레 전화 문의를 해보았다.
외부 강사를 초청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책을 읽는 수업을 하고 있는데 이번 분기에는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라는 철학책을 공부 중이라고 했다. 이미 절반 이상 수업이 진행됐다는 말에 잠시 망설였지만 다음 분기를 기약하며 돌아서면 분명 다시 발걸음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무작정 책을 사들고 월요일 저녁 7시에 방문을 하기로 했다.
월요일 저녁. 저녁밥을 준비해 놓고 가려니 너무 바빴다. 남편에게 조금 일찍 퇴근해달라고 부탁을 해놓고 혼자 먼저 저녁을 먹었다. 시간이 빠듯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쑤셔 넣고 허둥지둥 집을 나섰다.
어느 과학 프로그램에서 양자역학을 이해하려면 고전역학에 익숙한 뇌에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철학 또한 마찬가지 영역인 듯했다.
수업 시간 내내 '존재자 없는 존재'를 상상하고 '죽음과 같은 타자성'을 이해하느라 살면서 한 번도 철학적 사고를 해 본 적이 없는 내 뇌가 쩍쩍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두 시간 동안 겪고 나니 수업을 마칠 즈음엔 희미하게나마 뭔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책을 덮는 순간 머릿속이 다시 새하얘져 그건 착각이었다는 걸 마지막으로 깨달으며 센터를 나섰다.
센터 담당자님이 마침 같은 아파트 주민이어서 고맙게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니 아이는 텔레비전에 눈을 꽂고 히히덕거리고 있고 남편은 맥주 캔을 빨아대느라 둘 다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왜인지 갑자기 심통이 솟았다.
“9시 반이 넘었는데, 이 시각까지 내가 안 돌아오면 전화라도 한 번 해봐야 되는 거 아니야? 이 밤에 집까지 어떻게 돌아오는지 걱정도 안 돼?”
갑작스러운 날벼락에 남편은 맥주캔을 뺏길까 봐 그러는지 손을 더 꼭 그러모으고 아이는 여전히 티브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심드렁하니 물었다.
“어떻게 왔어?”
그 모양을 보니 조금 전 그렇게나 감명 깊게 읽었던,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라는 레비나스의 말은 순식간에 안드로메다로 가버리고 부아가 치밀었다.
“같이 수업 들었던 어떤 잘생긴 청년이 차로 데려다주고 갔지.”
내 말이 말 같지 않게 느껴졌는지 잠시 얼굴을 돌려 바라보던 남편은 다시 맥주캔을 홀짝이기 시작했다. 김 빠진 맥주 같은 상황에 나도 그만 김이 새 버려 약을 좀 올려보겠다던 마음을 단념하고 씻으러 욕실로 향하는데 아이가 졸졸 따라왔다.
“그 삼촌 잘생겼어? 얼마나?”
“엄청. 왜?”
“엄마만 태워준 거야?”
“응. 방향이 같아서.”
“엄마한테 무슨 물건을 줬어?”
“아니.”
“엄마 마스크 쓰고 있었지?”
“당연하지.”
“그래서 그런가?”
“뭐가?”
“이상하잖아. 엄마한테 작업 걸 리가 없는데. 마스크로 가려서 엄마가 젊고 예쁜 줄 알았나?”
내가 씻는 내내 욕실 문 앞을 지키고 앉아서 꼬치꼬치 캐물어대며 나의 조심성 없음을 탓하던 아이의 잔소리가 침대까지 따라왔다. 평소 안전제일 주의자인 아들의 무섬증을 건드렸으니 나의 분탕질이 한 명에게는 먹혀들어갔다는 생각에 속 시원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한마디 해줬다.
“엄마가 걱정돼?”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엄마는 조심성이 없어. 또 차 얻어 타고 오지 마.”
“그렇게 걱정되면 다음 주부터는 아빠랑 네가 데리러 올래? 밤이라 엄마 혼자 오기 좀 무서워.”
“그럼, 딱 차만 얻어 타고 와. 혹시 미행하는지 잘 살펴보고.”
아이는 데리러 오겠다는 말 대신 내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는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말로만 걱정하는 남자와 말로도 걱정하지 않는 남자.
이 남자들에게 당분간 센터 담당자님이 중년의 여성이라는 사실은 비밀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