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제법 내린다. 날이 풀리니까 속으로 단단히 죄고 있던 고삐도 따라 풀렸는지 주말마다 동네 시장이라도 들러보지 않고는 좀이 쑤셔 못 배겼는데 비가 내려 모처럼 한가한 주말이다.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전 아침 일찍 자전거로 강변을 한 바퀴 달리고 온 남편은 금세 지루한지 ‘나가보지 않을래?’라고 넌지시 물어본다. ‘정 심심하면 계란이라도 사오든가.’라고 에둘러 대답하며 방으로 슬쩍 자리를 옮겼다.
나이 들수록 점점 비는 구경할 때만 좋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가급적 우산을 쓰고 외출할 일을 만들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몇 년 전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가 ‘너는 비 오면 학교도 잘 안 왔잖아.’라고 옛 기억을 상기시켜준 바람에 비 오는 날 외출을 번잡스러워하는 게 꽤 오래전부터였다는 걸 깨달았었다.
창문을 열고 귀를 기울여 본다. 또닥또닥. 비가 난간을 두드리는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용도실에서는 보일러 연통이 비를 맞으며 내는 뚱땅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째 연주 실력이 울 집 아이 피아노 치는 수준과 비슷하다.
난간에 매달려 있는 빗방울을 관찰해본다. 줄지어 매달려 있는 방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하나 똑같은 모양이 없다.
물방울을 수채화로 그리면 어떨까 상상해봤다. 난간 끝에서부터 시작되는 유연한 곡선을 그리려면 일단 수십 번의 지우개질이 동반되어야 될 것이다. 스케치가 끝나면 가장자리는 진한 그림자 색으로 선을 따라 붓질을 하고 그 안쪽은 좀 더 연한 색으로 칠한다. 그리고 한가운데는 여백으로 남긴다. 이 빈 공간이 물방울을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그림을 완성시켜줄 것이다.
자연은 다 채우지 않고 비워두는 자리가 있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반해 지구에 바늘 하나 꽂을 데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메우고 쌓아 올리는 인간의 모습이 실패한 그림처럼 슬프게 다가온다.
좀 더 가까이 보니 집 앞에 있는 나무가 물방울에 거꾸로 비친다. 신기했다. 고등학교 과학시간에 빛이 볼록렌즈를 통과해 상이 맺히는 원리를 배웠던 기억이 가물가물하게 떠올랐다. 자세하게 생각나지 않아 그때 열심히 들어 둘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물방울에 집중하고 있으니 김창렬 화백의 물방울 그림이 연상됐다.
화가는 물방울 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화가가 본 것을 지금 이 순간 나도 보고 있는 것일까.
물방울의 아름다움, 그 속에 비친 세상, 거기에 투영된 마음들을. 그림 앞에 오래 머물며 화가가 보았던 물방울 속의 세상을 함께 느껴보고 싶다.
창밖으로 우산을 쓰고 산책을 다녀오는 노인이 보인다. 우산 위에 점점이 떨어진 벚꽃이 노인의 봄 산책에 운치를 더한다.
우산에 얹혀 지나가는 벚꽃 잎을 보자 갑자기 생각나는 아이와의 일화가 있다.
아이가 대여섯 살 때쯤인가, 어느 겨울에 함박눈이 내렸다. 눈을 잘 볼 수 없는 지역에 살다 보니 아이도 나도 엄청 신이 나서 열심히 눈사람도 만들고 신나게 썰매도 탔다. 한참 놀고 집에 들어오면서 우산을 터는데 우산의 흰 무늬가 마침 눈처럼 보이는 게 재밌어서 아이에게 농담을 던졌다.
“민기야 이것 봐. 엄마 우산에 눈 자국이 났어.”
아이를 한번 웃기려고 해본 말인데 막상 아이는
“우와 멋지다!”라며 감탄을 하는 게 아닌가. 도토리 같은 녀석이 새까만 눈을 반짝이며 손뼉까지 쳐가면서 좋아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이는 혼자 커서 그런지 나의 그런 신소리를 썩 잘 믿었는데 어쩌면 지금도 그 우산의 마술을 믿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니 작년 크리스마스 날 머리맡에 선물 갖다 놓던 아빠랑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아빠가 산타였냐’며 대성통곡했던 사건이 다시금 생각난다. 다음날 우리 집의 기막힌 소식을 들은 고모가 재치를 발휘해 전화를 걸어와 코로나 시국이라 산타 할배가 못 와서 올해는 다른 집도 다 아빠가 대신했다고 위로를 전하는 코 막히는 상황을 연출했었다.
아이가 크는 동안 내가 한 여러 신소리들 중에서도 가장 걸작은 '아빠는 외계인'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아이가 긴가민가하며 속는 듯 아는 듯하는 우리 집 전설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사실이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이는 어릴 때도 어른이 되면 폴리(어린이 만화 캐릭터 자동차)로 변신한다고 굳게 믿었던 이력이 있어서 그런지 처음 아빠가 외계인이란 말을 들었을 때부터 ‘정말?’ 하면서 믿는 눈치였다.
“그러엄. 너 만우절에 생일인 사람 봤어?”
“아니.”
“지구인들은 아무도 만우절에 태어나지 않아. 그날은 외계인만 태어나는 날이거든. 아빠 생일이 언제야?”
“만우절.”
“그리고 너 아빠 새끼손가락 봤지? 네 마디인 거?”
“응.”
“우리 가족 중에 아빠만 그렇지?”
“맞아.”
“그게 바로 외계인이란 증거야. 외계랑 연락을 해야 하니까 일종의 안테나 같은 거야.”
“아! 그렇구나!”
내 입에서는 상상도 못 할 농이 술술 나왔고 아이는 입을 헤벌쭉 벌리며 아빠가 외계인이란 사실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가끔씩 아이가 ‘아빠 외계인설’에 자잘한 의혹을 제기할 때도 있었다. 다행인지 내 혓바닥이 손가락보다 소설 쓰는 솜씨가 훌륭해 그때마다 척척 잘도 둘러댔다.
그런 하얀 거짓말들이 나중에 아이 삶에 설탕 한 숟가락이 돼 주길 바래본다.
지금은 외계인이 옆에 있다 한들 게임 중인 컴퓨터 화면에서 눈이나 뗄까 싶을 만큼 아이는 커버렸다. 올 봄 화분에 심어놓은 토마토 모종과 경쟁이라도 하는듯이 한밤 자고 일어나면 눈에 띄게 쑥쑥 자라는 아이에게 때로는 괜히 서운한 마음마저 생긴다.
글을 쓴 지 두어 시간쯤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이 비에 바이러스가 다 씻겨내려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적 같은 상상을 해본다.
남편이 주방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주방에서 손발이 꽤 잘 맞는 편이다. 남편이 고기를 삶는다고 했으니 나는 가서 쌈채소를 씻어야겠다.
고소한 수육 한 쌈으로 봄 저녁을 배불리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