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내 말에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거듭된 채근에도 묵묵부답이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 더 이상 듣기 싫으니 대화를 그만하자는 말이다. 사실 대화다운 대화도 아니었다. 일방적인 나의 하소연이었지.
결혼 생활 14년 동안 남편이 화내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평소 화내기보다 짜증 내는 것으로 감정 풀이를 하는 나는 좀체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나마 이 정도 같이 살고 나니 이제는 ‘또 저런다.’며 속으로 혀를 차는 정도는 됐다.
남편은 화가 많은 사람이다. 얼마 전에 읽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보면 화내는 유형별로 사람을 구분해놓았다.
“성마른 사람들은 너무 빨리 화를 낸다. 그것도 화를 내서는 안 될 사람들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될 일로, 과하게 화를 내지만 그 화가 빨리 풀리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가장 좋은 점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화를 억누르지 않고, 성미가 급해서 드러내 놓고 분풀이를 하고 난 뒤에는 화내기를 그만두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사람을 알고 썼나 싶어질 정도로 남편에게 찰떡인 이야기라 감탄을 하며 책에 밑줄을 쳤었다.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적어도 남편에게는 ‘화가 난다.’라는 말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남편의 화는 ‘나는 것’이 아니라 ‘터진다.’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다. 침이 닿으면 입안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팝핑 캔디나 임계점을 넘는 순간의 팝콘처럼 내 눈에는 느닷없이 화가 터지는 것처럼 보인다.
바깥 생활은 차치하고 집 안에서 남편의 화는 주로 아이를 향했다. 나에게는 화를 내봤자 손해라는 것을 익히 경험으로 아니까 그러는 것이다. 자기 말에 논리적으로 조곤조곤 따져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만들 수도, 일주일이 넘도록 싸늘하게 묵언시위를 해 복장이 터지게 만들 수도 없는 아이에게 남편은 쉽게 화를 내곤 했다.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에 원망도 많이 했었다.
노래방에 가지 않고서야 웬만해서 60db 이상의 소리를 내지 않고 생활하는 내게 남편의 고함은 핵폭탄이 터지거나 우주선이 발사할 때 나는 소리와 동급이었다. (어느덧 아들 엄마로 13년째 살다 보니 지금은 100db 정도 고함이야 누구 집 개가 짖는 소리쯤으로 여기게 됐지만. 어디까지나 십여 년 전 결혼 초기 때 이야기임을 밝혀둔다.)
남편이 아이를 대하는 미성숙한 태도에 속 끓이기를 그만둔 것은 어느 날 남편이 화를 내서는 안 될 사람을 넘어 ‘화를 내서는 안 될 사물’에게 분을 터트리는 걸 본 후다. 앞뒤 없이 물건에게 성을 주체하지 못하는 걸 보고 깨달았다. 아, 이 정도면 병이구나. 남편은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안쓰러운 환자이구나.
그간 남편에게 속절없이 당한 피해자(?)로는 선풍기, 수영복, TV, 대게 등이 있었는데 오늘 그 목록에 청소기가 추가되는 바람에 사달이 난 것이다.
오늘 오전, 이른 아침부터 괜히 혼자 분주하게 설쳐대며 남편이 거실에서 청소기를 밀고 있었다. 청소기 소리에 쫓겨 늦잠도 더 못 자고 작은 방으로 피신해 있었는데 거실에서 들리는 고함소리에 그만 잠이 확 달아났다.
“장애물 하나도 못 피하냐고!”
이 글이 오디오 북이 아닌 게 처음으로 안타깝다. 저 문장은 최소 170-180db로 읽어야 한다. 머릿속에서 저 문장을 조합한 것은 한참 뒤고 귀에 들리기는 그냥 한 덩어리의 고함소리였다.
때마침 배드민턴 수업에 가져갈 물통을 찾으러 아이가 주방에 간 게 퍼뜩 생각나 거실로 뛰쳐나갔다. 영문 모를 상황에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아이와 남편 뒤에서 전선이 엉긴 채 윙윙 소리를 내고 있는 청소기가 보였다. 남편이 끄는 대로 끌려가지 않은 탓에 청소기가 욕을 먹은 것이었다.
상황 파악을 끝내고 아이에게 너보고 화낸 거 아니라고 설명해주고 운동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착잡했다.
그래, 이런 일 처음도 아니고, 자기도 화를 어쩌지 못해 저런 식으로 터트린다는 것도 알고, 다 알지만 토끼 눈을 뜨고 있던 아이를 떠올리자 마음이 가라앉는 걸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부부가 결혼 10년 차쯤 되면 기분이 상해도 각자 할 일은 한다. 아이가 운동하고 올 동안 둘이 마트에 가서 일주일치 장을 봐왔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 나는 이유 없이 방바닥이 따뜻해지는 문제를 관리소를 통해 해결하고 남편은 너무 무성해진 수초를 건져내 화분에 옮겨 심었다.
마땅히 더 할 일이 없자 남편 얼굴을 마주하고 있기가 싫었다. 한두 시간 정도 카페에서 책을 읽을 생각으로 가방을 챙겨 들고 나왔다. 새로 생긴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사장님에게 다과까지 얻어먹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져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갈비찜을 해 저녁을 배불리 먹고(애석하게도 가정적인 남편이다. 갈비찜에 넣으려고 밤을 깎다 손을 베일 정도로) 설거지를 마치고 과일 한 접시를 내와 둘이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축구 올림픽대표팀 친선경기 중계가 끝나고 TV 프로그램이 예능으로 넘어갈 때쯤이었나. 찝찝했던 속마음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여보, 나 오늘 기분이 많이 안 좋았어. 당신 자신도 어쩌지 못해 화가 터진다는 거 알아. 내가 당신 화를 이해하면서 살지만 그렇다고 내 기분이 괜찮은 건 아니야. 내가 별 말 안 하고 넘어간다고 내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나 그때마다 안 괜찮아. 당신, 민기가 좀 더 커서 이런 행동하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겠어? 그때 당신이 아빠 자격으로 민기 꾸중할 수 있을까?”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TV에서 눈도 떼지 않고 ‘응, 알았어.’라고 겨우 한마디 짜내는 남편을 보니 김이 샐 대로 샜다. 입을 닫고 방으로 들어와 대신 노트북을 켰다. 귀는 뚫려 있었으니 내 말을 듣긴 했을 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사람에게 크게 데인 적이 있는지 성마른 사람의 특성을 아주 잘 설명해놓았는데 그들이 금방 화가 풀린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은 것만 보아도 그렇다. 성마른 사람의 대표주자인 남편 역시 고스란히 그런 행태를 보인다. 고함 따라 화도 나가버리는건지 어쩐건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로 따지면 나는 분기를 눌러 참기 때문에 화가 잘 풀리지 않는 뚱한 사람에 속한다. 그러니 화내고 돌아서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는 남편을 처음 봤을 때 제정신이 아닌 것 아닌가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닐 테다.
내가 더 이상 뚱해 있지 않는다면 오늘 사건은 단순 해프닝으로 끝 날 것이다.
성마른 사람은 반성도 성급히 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남편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거기에 자꾸 죄책감을 들쑤셔서 뭐 좋을 일 있겠나 싶은 마음이 들어 이만 청소기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예전에 봤던 TV 강연이 떠올라 다시 한번 그 말을 곱씹어 본다.
“성 내게 내버려 두세요. 안 그러면 그 사람 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