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날이 있다. 오늘처럼 잘 자다가 새벽에 눈이 번쩍 뜨이는 날. 일찍 자도 늦게 일어나는 평소의 행태를 생각해 보면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꿈속에서 나는 그랜드캐니언 꼭대기에 있는 유리 바닥으로 된 회전 전망대에 매달려서 덜덜 떨며 토가 나올 때까지 돌고 있는 중이었다. 잠들기 전 읽은 리처드 도킨스의 ‘영혼이 숨 쉬는 과학’의 이 구절 때문에 말이다.
‘어두운 밤, 나는 그랜드캐니언의 남쪽 끝을 따라 산책하다가 낮은 돌담 위에 누워 은하수를 바라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머나먼 과거였다. 그것은 10만 년 전의 광경이었다. (중략) 다음 날 아침 동틀 무렵 다시 그 장소로 돌아갔을 때 나는 현기증이 나면서 몸이 덜덜 떨렸다.'
참 재미있는 꿈이었다, 생각하니 잠들기 전 함께 저 구절을 읽었던 아이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다시 잠들기가 싱거울 정도로 잠이 완전히 깨버려 밀린 숙제나 하자 싶어 노트북을 열었다. 진심으로 망해버렸으면 좋겠는 망할 게으름 탓에 막상 글을 쓰지는 않으면서 쓸 준비만 늘 하고 있다. 월요일마다 시간에 쫓겨 밥을 쑤셔 넣고 독서수업을 가고 탁자 위에 수북이 쌓여있는 책들을 보며 심적 변비증을 앓아대고 누군가에게 들어서 혹은 하지 못해 마음에 걸려있던 말을 두고두고 곱씹는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감정의 되새김질을 하며 글 쓸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간절히 믿고 있다. 일종의 종교적 위안과 비슷하다.
노트북을 켜고 빈 화면을 보자 갑자기 아버님 얼굴이 떠올랐다. 전혀 염두에 없었는데 어떻게 아버님이 떠오른 건지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스스로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일까. 무의식을 빌어서야 고작 가장 하고 싶은 말을 찾는 걸 보면 말이다.
저번 주 월요일 은행 볼일로 아버님과 시내에서 만나기로 했다. 워낙 성미가 급하신 편이라 11시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일찌감치 차편을 검색해놓고 10시에 출발하려고 아이를 등교시키고 서둘러 준비를 했다. 막 집을 나서려고 소지품을 챙기는데 아버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범어역에서 내렸는데 은행을 못 찾겠다.”
명확하게 아버님의 상황을 이해한 것은 몇 번을 되물으며 한참 통화를 한 뒤였다. 아버님이 몇 년 전 크게 병을 앓으신 후유증으로 말씀을 잘 못하시기도 하지만 아직 출발도 안 하셨을 거라 생각한 시간에 벌써 도착하셨을 줄은 상상을 못 했기 때문에 더 말귀를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출구만 10개가 되는 큰 역에서 아버님이 길을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버스고 환승이고 택시 승강장으로 내달렸다. 범어역까지 가는 길은 천리만리였다. 택시는 신호마다 걸려서 서있기 일쑤였고 기사님이 어물쩍 돌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엉터리 상상을 하며 손톱을 물어뜯는 중에 아버님에게서 은행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마음이 조금 놓였지만 기다리고 계실 것을 생각하니 조급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은행에 도착하니 아버님은 벌써 창구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내 얼굴을 보시자마자 도장이 없어졌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방금 전까지 분명히 있었는데 가방이고 호주머니고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며 당황한 기색이셨다. 도장이 없으니 창구 직원도 난감해했다. 은행을 샅샅이 뒤져 대기석 의자 밑에 굴러 떨어져 있던 도장을 찾아냈다.
한고비 넘겼다 했는데 은행 일은 도무지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님은 글씨 쓰기도 힘겨워하셨는데 사인을 해야 할 서류들은 넘쳐났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다 써드리고 싶었지만 요즘 은행은 본인이 아니고는 아무것도 처리해 주지 않는 엄격한 보안 유지(내 생각엔 과도한 불통의 원칙)를 한다. 삼십 분이면 해결될 줄 알았던 일이 한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끝이 났다. 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시간이 지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창구 직원은 단 한 번도 재촉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웃는 얼굴로 아버님을 응대해주었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거듭 감사 인사를 전하며 은행을 나왔다.
볼 일을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이었다. 아버님께서 근처에서 밥을 먹자고 하셔서 먹을 데를 찾아 헤맸다. 대구 시내 한복판, 횡단보도 하나가 요단강만치 멀게 느껴질 정도로 넓디넓은 네거리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빌딩들뿐, 음식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그 빌딩들에서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와 그들 꽁무니를 졸졸 따라가 용케 먹자골목을 발견했다.
식당을 빨리 못 찾으면 어쩌나 싶어서 마음을 졸이고 있다가 겨우 한숨을 돌렸다. 골목에 들어서는데 차가 너무 바짝 붙어서 와 무심결에 아버님 팔을 잡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하고 마음속으로 탄식이 새 나왔다. 아버님의 얇은 여름 잠바 밑으로 내 한 손 아귀에도 헐렁하게 잡힐 만큼 앙상한 팔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탄력을 잃어 시든 살가죽 안에 자리 잡은 그것은 뻣뻣한 나무토막에 가까웠다. 거기에는 아버님의 80여 년 삶이 응축돼 있었다. 까마득한 세월이, 평소에는 잘 그려지지 않았던 시간들이 내 손을 타고 오롯이 전해졌다. 뙤약볕에 한껏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에서 모든 사람들이 땀을 훔치는 그때 나 혼자 식은땀이 흐르는 듯한 서늘함을 느꼈다.
비빔밥과 열무국수를 시켜서 먹는 동안 더 맛있는 거 사줘야 되는데라며 맘을 쓰시던 아버님은 종내 내 손에 아이 아이스크림 값을 쥐어주시고 나서야 일어나셨다.
아버님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뻗어버린 데는 긴장이 풀린 탓도 있겠지만 감당하기 벅찬 감정들이 덮쳐왔다 사라져 피로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겁도 없이 엿본 것 같은 기분, 그 인생 끝자락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 고단하고 때로는 비루했을 밥벌이의 숭고함, 그 사이 늙고 노쇠해진 몸, 연민과 사랑이 어우러진 복잡한 기분이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은 몸까지 지치게 해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아이 학원 보내느라 잠시 깼다가 친구가 자두를 갖다 주러 와 차 한잔하러 나가는 바람에 집에 잘 도착하셨는지 안부전화를 한다는 게 때를 놓쳐버렸다.
그날 저녁 어머님께 늦은 안부를 여쭈다가 ‘역시 딸은 딸이고 며느리는 며느리구나.’라는 농담 섞인 꾸중을 들으며 하루가 끝이 났다.
아버님은 평생 내가 기댈 수 있는 큰 나무였는데 이제 열매도 잎도 가지도 다 잘려나가고 숨길 수 없는 나이테만 훤히 드러내 보이고 있는 그루터기가 돼버렸다. 분명한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동안 두 눈 질끈 감고 모른 척했었는데 오늘 그만 내 손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이다. 언제까지고 믿고 싶지 않았던 진실의 상자를.
꿈에까지 나타났던 리처드 도킨스의 그 구절을 다시 읽어본다.
‘내가 만진 것은 머나먼 과거였다. 그것은 80년 전의 광경이었다. 다시 손바닥의 감촉을 느꼈을 때 나는 현기증이 나면서 몸이 덜덜 떨렸다. 한 사람의 인생이 내 온몸을 통과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연민과 사랑과 안타까움이 뒤범벅된 복잡한 감정이었다. 시간이 내 편이 아님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깨우치게 되는 모든 자식들이 걷는 후회의 길 위에 나 역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