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이비인후과가 두 군데 있는데 그중 한 곳이 아이의 단골 병원이다. 거기에 아이와 내가 요즘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아이가 비염이 있어 환절기만 되면 이비인후과를 내 집처럼 드나든다. 올해도 꽃가루가 날리기 시작하자 어김없이 아이는 코맹맹이 소리를 내서 이사 온 동네에서 새로운 이비인후과를 찾아야 했다. 처음 방문했던 이비인후과는 진료 한 번 만에 빠르게 손절을 했다. 서당 개도 풍월을 읊는데 삼 년이면 족하다는데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이비인후과 10년 차 베테랑 손님이다.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데는 진료 한 번이면 충분했다.
다음 진료 때 우리는 옆 건물 이비인후과로 옮겨갔다. 병원은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었다. 아담한 대기실은 깔끔하게 정리돼 있고 모든 물건들이 제 자리를 잘 잡고 있었다. 간호사들이 접수와 진료 안내를 물 흐르듯이 처리하는 모습에서 단박에 숙련자들임을 눈치챘다.
“코가 많이 부어있고 축농증 증세도 보입니다. 바깥활동을 많이 하나요?”
“많이는 아니지만 가끔 운동도 하고 학교나 학원도 오갑니다.”
“꽃가루가 심하기 때문에 가급적 바깥활동 자제해 주시고요, 집에 동물이 있나요?”
“아니요.”
“동물 털이 자극을 주기 때문에 알레르기 반응이 더 심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찬 거 먹나요?”
“찬 물이나 음료 정도는 먹습니다.”
“당분간 찬 거 먹지 마시고요. 약 3일 치 처방해 드릴 테니까 3일 뒤에 경과를 보죠.”
“네, 선생님.”
첫 진료는 만족스러웠다. 환자의 일상 습관이나 생활환경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모습에 믿음이 갔다.
그 뒤 두 번 더 진료를 보고 난 뒤 아이 학교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자가 격리에 들어가 치료는 중단됐다.
2주 후 자가 격리가 풀리고 다시 이비인후과를 방문하는 날,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아 아이에게 넌지시 혼자 다녀와도 되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안 돼.”
“별다른 증상도 없고 차도도 없고. 약만 타 오면 되는데.”
“그래도 안 돼.”
“사실...... 엄마, 그 선생님한테 혼나기 싫어.”
“나도.”
아이의 단호한 답변에 한숨을 내쉬고 어쩔 수 없이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아이에게 치사하게 굴 정도로 그를 대면하기 껄끄러워하는 건 뭐라고 딱 잘라 기분 나쁘다고 하기 애매한 그의 대화방식 때문이다.
맨 처음 우리 집 상황과 아이 상태를 꼬치꼬치 물었을 때는 그저 환자를 파악하기 위한 자료조사를 상세히 하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갈 때마다 똑같은 주의사항을 계속 듣다 보니 점점 문진이라기보다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유를 나에게 따지는 듯한 추궁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매번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똑같은 걸 물어대니 과연 내 말을 듣기는 하는 걸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사실 그는 애당초 환자의 답변 따위는 안중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의 레퍼토리는 오뉴월 햇빛이 내리쬐는 운동장에서 한둘쯤은 쓰러져야지 마침내 끝이 나는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에 가까웠다.
이미 두 번째 방문 때부터 우리 둘은 완전히 풀이 죽어서 진료실을 나왔다.
병원에 도착해 의기소침해서 진료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그의 얼굴을 보자 오늘은 호락호락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알 수 없는 투지가 불끈 솟았다.
“코가 여전히 많이 부어 있네요. 중간에 치료를 마음대로 그만두시면 완치가 어렵습니다.”
“2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가서 못 왔습니다.”
“그러셨군요. 차라리 잘 됐네요. 그동안 바깥공기를 안 쐬었으니.”
“......”
“이제 꽃가루가 없는데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네요. 지금도 바깥활동을 하나요?”
“학교를 가니까요. 밖을 아예 안 다닐 수 없죠.”
“혹시 창문을 열어 놓았나요?”
“낮에는 열어 놓죠. 더우니까요.”
"안됩니다. 창문을 열어 놓을거면 마스크를 쓰게 하세요."
"......"
"집에 동물이 있나요?”
“아니요.”
“동물이 없다면 침구류나 소파, 인형 따위에 있는 집 진드기가 원인일 수 있습니다. 침구나 인형이 주변에 있나요?”
“있죠. 이불은 덮고 자니까요.”
“소파는요?”
“그것도 있죠. 기능성 신소재 패브릭이라 먼지 걱정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거 아무 소용없습니다. 진드기 막아주는 원단이 있어요. 그걸로 덮으시길 바랍니다. 매트리스와 침구 세탁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하시고요.”
“......”
“찬 거 먹나요?”
“찬 물 정도는 먹죠. 더우니까요.”
“찬 거 먹지 않도록 해주세요. 약 3일 치 처방해 드릴게요.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약이 소용이 없습니다.”
“......”
나는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음으로써 최소한의 긍정의 의사표현마저 거부했다. 그와의 말싸움에서 완전히 지지는 않았다는 실낱같은 자존심을 거머쥐고 뒤돌아 나왔다. 처방전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 앞에 진료를 받으셨던 할머니께서 대기실에서 이웃을 만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 차례가 아닌가 보네.”
“다음번이지 싶어요. 진료는 잘 봤어요?”
“네. 기침 때문에 며칠 째 오고 있어요.”
“선생님이 여전히 많이 혼 내더지요?”
“아유, 그렇죠.”
두 할머니들의 대화는 부루퉁하던 내 마음에 어지간히 위로가 되었다. 그는 노인이라고 봐주는 작자가 아니었다.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에게 볼멘소리로 낮에 있었던 일을 고자질해댔다.
“아니, 차라리 무균실에 살라고 그러지. 창문도 열지 마라, 바깥도 나가지 마라. 참나, 침대도 소파도 없애고 아예 맨바닥에서 자라고 그러지 왜. 집에 반려동물 없다는 얘기를 도대체 몇 번이나 해야 하는 거야. 기억을 못 하면 기록을 해야 할 거 아냐, 기록을. 그리고 뜨신물만 어떻게 마셔. 더우면 찬 물도 먹게 되지.”
“맞아!”
찬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해서 기분이 몹시 상해있던 아이가 거들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남편이 내게 말했다.
“그 의사도 네가 싫겠다.”
흥, 그러거나 말거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싫은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내게 일주일마다 침구 세탁을 지시하는 것과 자꾸만 집안 청소 및 위생 상태를 의심하는 듯 한 눈초리 때문이다. 찔리는 구석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좋은 약이 입에 쓰다 했던가, 좋은 의사 말은 귀가 쓰리다.
처방받은 3일 치 약이 다 떨어져 간다. 또 꾸중의 시간이 닥쳤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