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불안이 찾아왔다

2. 32살까지 살고 싶었다

by 케이

돈이 떨어지다. 배는 다소 고프지만 나는 즐겁다. 오늘은 가을 하늘이 멋이 있었고, 나의 머리는 니체와 루우 생각으로 가득 찼으니까...

나의 텅 빈, 추운 방에서 나는 벌레처럼 틀어박혀서 나의 꿈을 기르고 싶다. 닫힌 문과 마음속에 끝없이 펼쳐 가는 환상의 세계의 크기와! 니체, 루우, 릴케, 튜린, 질스 마리아...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전혜린



그녀를 만난 건 중학교 2학년, 14살 여름 방학이었다.

공부는 하기 싫지만 책은 좋아했던 나에게 8살 많은 언니의 책장은 보물 창고였다.

그 보물 창고에서 그녀를 만났다.


전혜린

그리고 그녀의 책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4살 아이가 그 책의 내용을 이해했을리 만무하다.

그러나 그녀가 도착한 가을의 독일과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낭만적이었다.

그녀의 삶이, 그녀의 존재 자체가 영화 같았고 왠지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그녀가 32살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것조차.



30세! 무서운 나이! 끔찍한 시간의 축적이다. 어리석음과 광년의 금자탑이다.

여자로서 겪을 수 있는 한의 기쁨의 절정과 괴로움의 극치를 나는 모두 맛보았다. 일순도 김 나간 사이다 같은 무미한 순간이라곤 없었다. 팽팽했고 터질 듯 꽉 차 있었다. 괴로움에, 기쁨에, 그리고 언제나 나는 꿈꾸고 있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꿈 없이는 살 수 없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현실만이 전부라면 인간은 살아갈 가치가 없는 무엇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



그래서 나도 32살까지만 살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나에게 32살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미래였고

32살이 지난 삶은 왠지 의미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32살의 나는 미국에서 짧은 체류를 끝내고 돌아와 다시 방송작가로 복귀했고

그런 생각(32살까지만 살겠다는)을 했다는 것 자체도 잊고 살았다.

어느새 나는 32살을 훌쩍 넘어 쉰 중반에 서 있다.


2,30대는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고,

40대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의식하지도 못한 채 맞이한 50대,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을 맞이해야 했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나에게 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손님,

불안감이다.

어떻게 이 감정을 다스려야할 지,

떨쳐내야하는 건지 친구처럼 옆에 두고 잘 지내야하는 건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다시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전혜린, 그녀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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