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쓰고 싶은 쇼핑몰 카피라이터의 고군분투기
언제부턴가 결혼반지 외에는 액세서리를 하지 않는다. 임신하고 아이를 낳은 뒤로 살이 불어 결혼반지마저도 안 끼고 다니다가 부부가 쌍으로 살이 쪄버려 결혼 날짜만 새겨 넣은 것으로, 점만 한 보석 하나 없이 심플한 디자인으로 다시 맞춘 뒤 요즘은 그것만 끼고 다닌다. 2008년 무렵에는 귀걸이에 빠져서 동대문 밀리오레에 단골 액세서리 집을 정해놓고 틈만 나면 가서 귀걸이를 사곤 했다. 그때 산 귀걸이들은 아직도 내 화장대 한구석, 무인양품에서 산 액세서리 정리함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주렁주렁, 치렁치렁한 것들을 좋아했는지 지금은 그때의 나를 이해하려 시간을 좀 들여야 하는 디자인이다.
한 번쯤은 들어봤겠지만 여자가 귀걸이를 하면 3배 예뻐 보인다고 한다. 근데 내가 나를 봐도 그렇고 다른 사람을 봐도 귀걸이를 하면 돋보이는 건 확실하다. 당시 귀에 딱 붙는 귀걸이보단 좀 늘어지는 스타일의 귀걸이를 했던 건 긴 헤어스타일 때문이었을 거다. 그런 스타일엔 치렁치렁한 스타일도 꽤 잘 어울렸으니까.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 최대의 소비시대였던 것 같다. 3일에 한번 꼴로 옷을 사고 가방을 사고 구두를 쇼핑했다. 나를 꾸미고 드러내는 일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하루하루 살았다.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어딜 가도 주목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젊고 어려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더군다나 내가 버는 돈은 고스란히 나를 위해 쓸 수 있었다, 나 아닌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다고 귀걸이 하나에 몇 십만 원짜리를 하고 다니거나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닌 것도 아니다. 늘 소박했다. 소소하게 자주 샀다. 그런 날 보며 언니가 이런 거 10개 사느니 돈 모아서 좋은 거 사라고 할 만큼 내 쇼핑 스타일은 늘 아기자기하고 자잘한 것에 머물러 있었다. 근데 그런 게 좋았다. 다나베 세이코의 ‘고독한 밤의 코코아’에 나오는 이 문장처럼 말이다.
이 나이 먹도록 바늘로 콕 찍어 놓은 듯한 다이아몬드가 얼마인지도 모른다. 고가의 액세서리에 일절 관심이 없어서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니까 내가 싼 값의 아기자기한 귀걸이를 좋아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눈에 띄지 않아도 질 좋은 제품을 선호할 것이다. 뭔가를 팔기 위해 기획을 할 때 모두에게 통할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하물며 쌍둥이도 각자 스타일이 다른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타깃으로 제품을 팔겠는가. 범위를 좁히는 거다. 그 범위에 나의 공감대를 집어넣자. 분명 이런 사람도 있을 거란 생각을 버리지 말자. 반드시 있으니까.
사실 액세서리를 그렇게 좋아했지만 반나절도 못 가 빼야만 했다. 알레르기가 있어서 은이나 금에도 쉽게 반응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샀다. 왜냐 나는 인생을 즐기고 싶었으니까! 적게는 몇 천 원, 과감하게 지를 때는 5, 6만 원 선까지 다양하게 주얼리를 구입하면서 그 작고 귀여운 것들로 인해 내가 즐거워지고 바뀔 모습을 상상하는 게 좋았다. 찬합처럼 층층이 쌓이는 액세서리 정리함에 차곡차곡 모았다. 꼭 걸거나 끼고 나가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나날이었다. 내가 이렇게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데는 엄마의 영향이 없지 않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손에 넣고 마는 성격은 분명 엄마를 닮았다. 엄마는 나와 경제적 수준이나 연령대가 달라서 진짜 ‘보석’이 아니면 사지 않았지만 내가 사 모으는 액세서리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디서 이렇게 예쁜 걸 샀어? 귀엽기도 하다.”
유치해 보이는 것들에 엄마는 늘 예쁘고 감각적이라고 칭찬해줬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내 취향을 존중해주는 거다.
‘고독한 밤의 코코아’에서 다나베 세이코는 파운데이션이나 립스틱을 바르는 화장만이 아니라 ‘어떤 분위기의 여자가 돼야 하는지’를 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자는 나이가 들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미지를 설계해서 그 이미지에 가까워지도록 자신을 교정하고 수련해야 한다. 그녀는 그걸 ‘나이 화장’이라고 칭했다. 주름을 펴고 이마를 빵빵하게 만드는 것만이 화장이 전부가 아니다. (아니 이건 시술에 가깝겠다) 내 나이에 맞는 나이 화장도 필요하다는 것. 꼼꼼히 바르는 메이크업 베이스처럼 마음에 밀착되는 글이다. 20대 중반에 샀던 귀걸이를 언젠가 다시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모아두는 건 아니다. 정리함을 열면 그때의 내 모습이, 한껏 꾸미려 들었던 내가 떠올라서 어딘가 애잔하고 간질간질해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지나간 세월이 아쉽다기보다 그런 때도 있었지, 하고 넘어가게 된다.
여전히 가끔은 ‘내가 봐도 내가 예쁜 날’이 있다. 20대가 아니라고 해서 그런 날이 없으란 법은 없다. 당연히 있다. 마흔 살이 되고 오십이 넘어도 그런 날은 꼭 있을 거라 믿는다.
*글에서 언급된 상품은 에디터 개인의 선택으로
해당 브랜드나 담당 엠디의 추천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