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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an 18. 2017

진짜 벽과 마음의 벽

다르게 쓰고 싶은 쇼핑몰 카피라이터의 고군분투기

‘파티션 없는 사무실이 직장인을 병들게 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최근 저녁 뉴스에서도 이와 관련된 기사를 본 것 같아 자세히 읽었는데,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민주적일 거란 생각에 많은 회사들이 파티션 없는 사무실을 만들고 있지만 그 취지와 달리 직장인들에게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게 기사의 결론이다. 파티션 없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잦은 병가가 그 결과이라고 하는데, 이는 상사의 눈을 피해 쉬지도 못하고 일을 너무 많이 하거나 감기 같은 바이러스 세균이 그대로 옆자리 직원에게 노출되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의 연구팀이 7개 사무실 2천여 명의 직원들을 상대로 연구한 결과라니 신뢰가 간다.


실제로 우리 회사도 파티션이 없거나 매우 낮다.(약 15cm 정도) 내가 일하는 공간은 파티션이 아예 없다. 맞은편에 앉은 직원의 모니터가 어느 정도 파티션 역할을 해주고 있을 뿐이다. 옆으로는 그마저도 없어서 아예 오픈돼있다. 책상에 앉았을 때 머리까지 가려주는 파티션이 있던 사무실에 있다가 파티션 없는 공간을 맞이했을 때 적잖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긴 했다. 그러나 기사의 내용처럼 어느 정도 개인만의 공간이 보장되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단 생각은 했다. 오늘은 벽에 관한 문장을 읽다가 생각해낸 아이템으로 작업해 보려 한다. 직장인들에게 벽은 사무실 파티션이다. 김려령 작가의 ‘가시고백’이란 소설 속 문장의 ‘벽’은 실제 하는 벽이라기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 같은 걸 의미하는데 이를 응용하면 색다른 카피가 만들어질 것 같기도 하다. 현재 29CM에는 파티션 상품이 없기 때문에 가장 흡사한 아이템으로 작업해 보겠다.


소설 속 문장:
벽...... 그거 쌓을 녀석한테는 쌓고 안 그래도 될 녀석한테는 안 쌓는다.  
<김려령 ‘가시고백’ 중에서>

살면서 ‘나 그 사람이랑 벽 쌓았어. 담쌓은 지 오래야’ 같은 말을 한 번쯤을 써봤을 것이다. 소설에서 말하는 벽도 그런 뉘앙스인데 실제로 공간과 공간을 분리하는 파티션을 판매할 때 이런 텍스트를 쓴다면 기존의 판매 방식과는 차별화될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판매하려는 목적과 부합하는 문장은 아니기에 어느 정도 손질은 해줘야 할 것 같다. 늘 그렇듯 우리는 소설에서 아이디어 정도만 얻어도 충분하다. 그다음은 얼마나 많이 써보고 응용해 봤는지에 따른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임시방편으로 찾아낸 상품이 뭔가 이 문장과 잘 버무리면 괜찮은 카피가 나올 것 같다. 왜냐하면 스탠드라는 상품은 낮은 파티션의 역할을 하면서 그 위로 화분 같은걸 올려놓을 수 있는데 옆자리 누군가가 맘에 드는 사람이면 작은 화분을, 나랑 안 맞는 사람이면 키가 큰 화분을 빼곡히 올려놓으면 될 테니까. 상상해 보니 이 아이템 참 재미있다.


카피:
메인 타이틀:
높이 쌓고 싶은 사람과 안 그래도 될 사람.
서브 타이틀:
파티션 높이가 보여주는 당신과의 친밀도.


파티션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일할까 싶었지만 지내다 보면 익숙해진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사실 파티션 역할을 해주는 건 아까 말했듯 모니터도 있고 쭉 쌓아놓은 책이 될 수도 있다. 내 경우는 앞자리 옆자리 동료와의 공간을 분리해주는 역할보다 나만의 공간을 꾸밀 요소가 줄어든 점이 좀 아쉬웠다. 파티션이 좀 높으면 앞에 애정하는 공유 포스터도 붙이고 옆에는 책에서 좋은 문장 적어 놓은 포스트잇도 붙여놓을 수 있어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공간 연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워낙 벽에 뭘 붙이는 걸 좋아해서 더 그런 것 같다. 물론 점심 먹고 오후 2시쯤 미칠 듯 쏟아지는 졸음에 잠깐이라도 책상에 엎드려 쪽잠이라도 잘 낯이면 너무 훤히 개방된 내 자리가 민망해져 타인의 눈을 피해 꾸벅꾸벅 졸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가장 안타깝고~.



*글에서 언급된 상품은 에디터 개인의 선택으로

해당 브랜드나 담당 엠디의 추천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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