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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Feb 28. 2017

보여지는 건 한줄이지만
앞, 뒤를 상상하게 되는 카피

다르게 쓰고 싶은 쇼핑몰 카피라이터의 고군분투기

평소 좋아하는 음식이 아닌데 갑자기 먹고 싶다면 흔히 몸이 원하는 거라고 말한다. 지금 내 몸에 그런 성분이 부족함을 보내는 신호이니 먹고 싶다면 챙겨먹는 게 좋다. 그런 음식은 보양식 같은 종류일수도 있지만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 과일을 잘 안 챙겨 먹는 편인데 난데없이 아오리 사과가 먹고 싶어지는 날이 불쑥 찾아 오곤 한다. 아오리, 파란사과(?)라고 알고 있는 그 사과가 갑자기 떠오르면 입에 침이 고인다. 몇 년 전 지독한 감기몸살로 정말 밤새 끙끙 앓았는데 입이 써서 밥맛도 없었다. 열이 40도까지 오르는데 오한이 와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땀을 비오듯 흘렸다. 근데 갑자기 파란사과가 너무 먹고 싶은 거다. 그 사과를 껍질 째 씹어 먹으면 병이 다 나을 것만 같았다. 희한한 일이었다. 죽도 못 먹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이마에 찬물 수건을 번갈아 갈아주던 엄마를 간신히 불러 혹시 집에 사과가 있느냐고 물었다.


“사과?”
“응…”


당연히 아오리 사과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 난 별 기대하지 않고 물었다.


“당연히 있지! 왜, 사과가 먹고 싶니? 갖다 줄까?”


그렇다. 엄마들은 늘 과일을 상비해 두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종류별로. 그때만큼 집에 있는 김치 냉장고 속 과일이 반가웠던 적은 없다. 엄마는 드디어 본인이 할 일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운차게 내 침대를 벗어나 주방으로 뛰어갔다. 내가 평소에 과일을 잘 먹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사과 먹고 싶다는 말이 더 반가웠을지 모르겠다. 주방 쪽에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사과를 힘차게 씻는 소리가 났다. 접시 위에 올려 놓고 쑥덕쑥덕 자르는 소리가 났고 이내 엄마가 접시를 내밀었다. 끄응, 하며 몸을 일으켜 침대에 기대 앉아 접시에 가지런히 놓인 파란사과를 보는데 고기도 아닌 것이 입에 침이 잔뜩 고이기 시작했다. 그때 먹었던 사과 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찌나 달고 시원한지 사과 하나를 게눈 감추듯 다 먹어 치우고 몸도 거짓말처럼 가벼워졌다.


소설 속 문장:
점점 기운이 나는 것이 눈에 보여서 재미있어.
<다나베 세이코 ‘고독한 밤의 코코아’ 중에서>


그때 나를 보는 엄마의 눈빛이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아픈 누군가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자신이 해준 음식을 먹고 상대가 기운을 차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뿌듯해하기는커녕,


“그러길래 평소에 과일 좀 잘 챙겨 먹으라고 했지!”


라고 등짝 스메싱을 날리지 않는 게 다행일 매서운 눈초리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런 우리 엄마지만 자신이 깎아준 사과를 먹고 기운 차리는 모습에 흐믓해 하고 있음을.

최근 29CM에도 음식 카테고리가 분리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푸드가 업데이트 되고 있다. 처음에는 음료로 시작해서 지금은 김치까지 있으니 깔끔하고 세련된 패키지만으로도 젊은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음식은 맛이 중요한 법. 먹고 기운 차릴 만한 먹음직스런 수프도 눈에 띈다. 소설 속 문장처럼 아픈 누군가를 열심히 간호하면 나아지는 게 눈에 보이는 때가 온다. 위독한 병이 아닌 이상 잘 먹고 기운 차리면 되는 감기, 배탈 같은 것들이 주로 그렇다. 상대가 먹고 기운 차릴 만한 것으로 챙겨줬을 때 나아지는 게 눈에 보이는 것만큼 간호하는 사람으로서 보람될 때가 또 있을까? 이번에는 먹는 사람이 아닌 챙겨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써보는 카피가 되겠다.



카피:
줄곧 힘이 없더니
점점 기운 나는 게 눈에 보여,
다행이다.


음식을 해주는 사람의 입장에선 상대방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다가 아픈 사람이 그 음식을 먹고 기운까지 차리는데 좋아지는 게 내 눈에 보인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상품을 먹는 사람이 아닌 전달하는, 챙겨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써본 카피다. 훈훈한 분위기가 눈앞에 선해진다. 이미지와 텍스트를 조합해 봤을 때 심플한 일본 광고 같은 느낌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유독 일본 광고는 이런 느낌의 카피가 많다. 텍스트가 거창하거나 유려하지 않다.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근데 마음에 남는다.


바쁜 그 사람에게 주먹밥을 싸줘본다. (야마모토) 


이런 카피의 힘은 글자 그대로만 보는 게 아니라 그 너머를 생각하게 되는 데 있는 것 같다. 문장은 한 줄이지만 이전과 이후를 상상하게 된다. 이런 카피가 나오게 된 배경까지 보는 사람이 떠올려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카피가 고객의 마음에 오래 남는 좋은 카피 아닐는지. 나 또한 그런 카피를 쓰고 싶고 쓰고자 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의 마음을 툭 건드려줄 수 있는 한 줄. 너무 하찮아서 신경 쓰인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건드려주는 카피 말이다. 이런 카피는 구구절절 말하지 않는다. 어떤 한 포인트만 잘 건드려주면 보는 사람이 알아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심플해도 결코 쓰기 쉬운 카피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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