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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Dec 11. 2016

지금 읽어야 하는 책
그때 만났어야 하는 사람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나는 아무도 모르는 깊은 곳에 두었던 목걸이를 꺼내어 색종이에 곱게 싸서 상자 속에 집어넣었다. 별 모양으로 커팅된, 엄마의 다이아몬드 목걸이였다. 엄마가 찾던 목걸이는 내가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 싶었다. 아무래도 변하지 않는 것, 사라지지 않는 것을 나도 단 하나쯤 가지고 싶었다. 
<정이현 ‘상냥한 폭력의 시대’ 중 ‘영영, 여름’을 읽다가>



어떤 책은 반드시 읽는 ‘시기’ 즉 ‘때’와의 궁합이 있다. 당장은 집중도 안 되고 페이지도 잘 안 넘어가는데 나중에 읽어보면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안 읽었을까 싶은 책 말이다. 나는 이 증상이 유독 심한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을 한꺼번에 왕창 주문하는 스타일이라 한 권 한 권을 그다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당장 읽고 싶은 마음에 주문했지만 막상 책이 오고 몇 장 읽어보면 주문할 때의 그 감흥이 아니어서 책날개를 펴 읽은 데까지 표시해 둔 다음 나중에 읽는다. 이 책 아니어도 다른 책이 대기하고 있으니까 상관없다.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책날개로 읽은 데까지 표시해둔 책이 꽤 많다. 언젠가는 반드시 완독은 한다.


전엔 읽히지 않던 책이 지금은 너무 잘 읽혀


며칠 전에도 1년 전에 사두고 생각보다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아 마저 읽는 걸 포기하고 책장에 꽂아둔 책을 다시 집었다. ‘스타카토 라디오’를 읽고 좋아하게 된 정현주 작가의 에세이 ‘거기, 우리가 있었다’인데, 목요일 오후 급하게 목걸이 관련 카피를 요청하는 메일을 받고 퍼뜩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이것저것 들춰보다 좀 말랑말랑하고 아련한 사랑의 감정이 필요할 것 같아 이 책을 뽑아 들고 휘리릭 넘겨보았다. 이 책 역시 책날개로 읽은 데까지 표시해 두었는데 날개는 141쪽에 걸려 있었다. 어차피 내용이 이어지는 소설이 아니니 뒤에서부터 거꾸로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폭풍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사랑은 ‘나를 너에게 주고 나는 비어 가는 일’이 아닙니다. 서로의 경험과 느낌과 생각과 세상을 함께 나누면서 같이 넓어지는 것’이 사랑이길 바랍니다. 그 사람이 아니면 몰랐을 세상을 알아가고, 내가 아니면 그도 몰랐을 세상을 보여주며 같이 성장하는 일. 원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별 역시 ‘그가 나를 가져가서 내가 비어버리는 일’이 아니라 ‘그는 떠났지만 그에게서 배운 것이 내 안에 남는 일’이 되길 바랍니다.” (정현주_거기 우리가 있었다 272p)

연애를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대부분 진짜 내가 아니었다. 책에 쓰인 대로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있어 보이고 싶고 아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꾸며낸 나였다. 술 센 여자를 좋아할 거라 짐작하고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잘 마시는 척했다. 낯선 사람과 어울리는 일이 서툰데 친화력이 좋은 사람인양 굴었고 연락이 되지 않을 땐 쿨한 여자인척 잔소리 한번 안 했다. 크게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무심한 그 사람이 문병 한번 오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았다. 그게 나라고 믿었다. 사실은 죽을 만큼 슬프고 괴로웠는데 말이다. 핫플레이스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데이트하는 것보다 익숙한 카페에서 각자 원하는 걸, 그러니까 나는 책을 읽고 상대방은 또 다른 취미를 즐기는 시간을 갖길 더 선호했는데 활발한 여자처럼 여기저기 다니자고 요구했다. 그 사람이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둠의 자식들 같은 그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비슷한 사람인 것처럼 웃고 떠들었다. 사실은 그들 사이에서 엄청난 괴리감을 느꼈고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늘 허탈한 마음뿐이었는데 말이다.

illust by 윤지민


근데 남편과 연애할 때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나를 숨기고 있었다는 걸. 남편은 처음 만난 날부터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과 자신의 성격을 너무 솔직하게 얘기해서 살짝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이 사람이 이런 얘길 왜 나한테 하는 거지?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건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그 사람한테 솔직하게 대할 수 있었다. 데이트할 때 잘 보이고 싶어서 높은 구두를 신는 대신 손잡고 같이 오래도록 편하게 걷고 싶어서 운동화를 신게 되는 남자. 그런 내 모습조차 예뻐해 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몰라도 아는 척하는 게 아니라, 모르는데 좀 알려줄래?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전혀 창피하지 않았고 쪽팔리지도 않았다. 낮고 굵은 목소리로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자상함이 좋았다. 데이트할 때도 카페 구석진 자리에서 책을 펼치면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게임기를 꺼내 그 시간을 함께 공유했다. 나의 생각과 취향, 취미를 최대한 존중해 주는 그런 남자였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펼친 이 책에서 카피에 도움이 될만한 문구도 찾았고 심장을 툭 건드리는 문장도 만나게 되었다. 1년 전에는 못 보고 지나쳤던 문장이다. 남겨둔 페이지를 집으면 한 꼬집 정도밖에 안 되는 양이었지만 밑줄이 수두룩했다. 평소대로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해두면서 7년 전의 그와 나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어떤 결혼이든 연애할 때와 똑같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많이 변하지 않고 따뜻함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여전히 나를 바라봐주어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억지로 나를 바꾸고 다른 사람인 척하다 보면 결국 바닥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누가 지치든 어느 한쪽은 지치게 되어있고 그런 사랑은 당연히 오래갈 수 없다. 나 또한 원래 이런 나를 버리고 그 사람이 좋아해 줄 만한 사람으로 변하려고 노력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정말 바보 같고 어리석었다. 한마디로 어렸다. 그렇게 해서 누군가의 호감을 얻었다 해도 나는 금세 지치고 말았다.


그 사람을 언제 만나느냐도 중요해


책이 나에게 맞는 시기가 있듯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남편을 그때가 아니라 두세 살 더 어릴 때 만났더라면 결혼이라는 역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듯 사람과 사람에게도 맞는 시기와 때가 있기 때문이다. 잔뜩 꾸민 나를 좋아했던 사람과 헤어진 후 심신이 지쳐있을 때 그를 만났기 때문에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던 거다. (사실 그 전엔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를 만나 이 남자라면 과연 결혼 생활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허세 가득한 사랑이 아닌 진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도 되는 사람, 짜증 날 땐 짜증내고 신경질 부릴 땐 그것마저도 이해해주고 그 사람 앞에서 맘 놓고 울 수 있을 때 한 사람과의 인연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길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그때’ 얼렁뚱땅 뭔가에 떠밀리듯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난 혼자였을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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