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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Dec 18. 2016

아무것도 아닌 말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조중균씨는 소리에 민감했다. 헛기침을 하는 버릇이 있는 부장이 헤어억, 하고 가래를 돋울 때마다 조중균씨는 파티션 뒤에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서대리의 뜬금없는 웃음이나 노래, 시 낭송 등도 그를 놀라게 하는 소리였다. 특히 서대리가 자기 전공을 십분 살려 프랑스 시나 샹송을 혼잣말 아닌 혼잣말로 읊을 때면 거의 공포에 휩싸인 얼굴로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곤 했다. 모두 의무처럼 웃어주어야 하는 부장의 농담도, “커피 한잔 드릴까요?” 하는 디자이너의 친절도, “식사들 합시다” 하는 과장의 제안도 모두 조중균씨에게 해당하지 않는 건 단순히 귀마개 때문일지도 몰랐다.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 중 ‘조중균의 세계’를 읽다가>





목욕탕 가는 걸 좋아한다. 어릴 땐 엄마 성화에 못 이겨 등 떠밀리듯 갔지만 두 시간 정도 따끈한 탕에서 몸을 녹이고 각질 하나 남지 않게 묵은 때를 싹 민 다음 매끈해진 발을 양말에 꾀어 넣을 때의 그 상쾌한 기분을 알고 난 후부턴 시간이 허락하는 한 자주 가고 싶다. 뜨거운 게 시원한 때가 된 것이다.


지난 주말, 어김없이 아침 7시면 잠에서 깨 맘마를 찾는 아이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일으켰다.  아이는 보통 이때 우유 등으로 간단히 허기를 달래고 9시쯤에는 밥을 먹는다. 그런 다음 제 방에서 좀 놀다가 10시 반쯤 다시 잔다. 토요일인걸 아는지 평일 어린이집에서 자는 오전 잠 보다 한두 시간은 더 잔다. 밥을 먹고 다시 잠든 아이를 지켜보다가 나도 좀 더 잘까 싶었지만 감기에 몸도 찌뿌드드해서 목욕탕이나 갔다 와야지, 하고 목욕가방을 챙겼다.


내가 다니는 목욕탕은 고등학교 때부터, 엄마랑 언니랑 셋이 함께 다니던 곳으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오래된 대중목욕탕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과 멀어 차로 20분은 가야 하지만 여전히 목욕은 이곳으로 다닌다. 집 근처엔 목욕탕이 없을뿐더러 오랜 세월 내 몸을 알아서 밀어주는 세신사 이모와도 친분이 있어 쉽게 바꾸질 못했다. 본격적인 겨울에 접어들어서인지 오전 시간인데도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몇 개 남지 않은 신발장 열쇠 중 하나를 뽑아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목욕탕 TV는 365일 24시간 켜져 있다. 늘 TV 앞 마루 평상에는 매점 직원을 포함한 두세 명의 아주머니들이 앉아 두런두런 이야길 나누며 식혜도 마시고 구운 달걀도 까먹는다. 그중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세신사 이모도 있어 대부분 옷도 벗기 전에 이모에게 2만 원을 미리 건네며 세신 예약을 한다. 그런데 그날은 사람이 많기 때문인지 세신사 이모는 보이질 않았다. 목욕탕 안에서 열일 중이신 듯했다.


사소한 대화에 귀 기울이는 습관


직업으로 글을 쓰고 난 뒤부턴지, 쓰기 전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주변 사람들 말을 듣는 습관이 생겼다. 남들이 하는 사소한 대화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참견하듯 고개를 끄덕인 적도 있고 낯선 이들의 대화가 썩 괜찮아 휴대폰 메모장에 메모해두는 일은 흔하다. 그날도 개운하게 목욕을 마치고 사물함 앞에서 옷을 입는데 여전히 TV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매점 이모와 몇몇 아주머니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아마도 나이 혹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 중이었던 것으로 추측하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주름도 자글자글 해지고 피부도 축축 처지잖아요. 그래서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쉬운 것 같아요. 자기 모습이 보기 흉해지니까 죽음도 받아들여지는 거지 젊고 탱탱한 사람이 어디 죽는 거 생각하기 쉬워요?” 


듣고 보니 그렇다. 풀어보면 당연한 얘긴데 아주머니가 한 이야기가 책의 한 구절이었다면 바로 밑줄을 그었을 것이다. 내가 주로 잘 듣는 얘기는 4, 50대 여성들의 대화다. 아무래도 목소리가 커서 잘 들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생기기 전엔 주말이면 외식을 즐겼는데 그날도 홍대 근처에 있는 유명한 브런치 식당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옆 테이블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3명이 앉아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가 음식이 나오자 숟가락보다 휴대폰을 먼저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한 명이 찍기 시작하니 너도 나도 찍었는데 그중 한 여성이 말했다.


“나도 찍어서 딸한테 보내줘야지. 엄마도 이런 거 먹는다, 하고. 근데 난 왜 이렇게 맛없어 보이니? 우리 딸이 찍은 건 다 맛있어 보이던데. 깔깔깔” 


illust by 윤지민


뭐가 그리 신나는지 말 한마디 한마디 뒤엔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오랜만에 외출이 신나는 모양이었다. 허기사 나를 포함한 아줌마들은 남이 한 밥 먹는 게 몇 없는 즐거움 중 하나니까. 아마도 여자의 딸은 리터칭 앱을 이용해 음식을 더 맛깔나고 ‘있어 보이게’ 바꿨을 것이다. 여자는 아직 그 단계까진 미치지 못한 듯했다. 숨죽여 듣는 대화, 아무것도 아닌 말들이 재미있고 유쾌했다.


얼마 전 퇴근길에는 바람이 몹시 불어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가면서 옷깃을 한껏 여미며 걷고 있었다. 한참 걷고 있는데 도로 옆 건물에서 퇴근하는 것으로 보이는 세 명의 여자가 예상치 못한 칼바람에 꺅, 하고 소릴 지르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머, 우리 몸에 돌멩이 하나씩 달아야 하는 거 아니니? 웬 바람이 이렇게 불어?!”


누가 봐도 돌멩이쯤 없어도 바람에 전혀 끄덕 없을 체구였는데도 오히려 그 말이 귀엽게 느껴졌다. 몸을 한껏 움츠린 채 소녀처럼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여자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쿡, 하고 웃음이 나왔다. 친구와 약속하고 시간이 남아서 들어간 카페에선 동창회 모임이라도 끝나고 온 길인지 또 다른 중년 여성들이 커피를 시켜놓고 이야기 꽃을 피우는 중이었는데 날씨가 꽤 좋은 화창한 가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쨍하게 맑은 하늘을 해바라기처럼 일제히 바라보더니,


“뭐라도 빨아 널고 싶은 날이네.”


라고 마치 시 같은 말로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작정하고 떠올리니 이런 경우가 꽤나 많다. 또 한 번은 늦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들어간 어느 밥집에서 중년 여성 둘이 하는 이야길 들었다. 삼총사처럼 몰려다니던 세 사람 중 두 사람만 남았는지 나머지 한 사람의 부재에 대해 아쉬움을 토하는 것 같은 대화였다.


내가 낚은 생활어(生活語)


“나는 영미가 너무 미워. 왜 그렇게 서둘러 가서는 사람을 이렇게 그립게 만드니? 진짜 밉다.”


된장찌개를 조용히 떠먹으며 숨 죽여 그들의 대화를 들었는데, 아마도 나머지 한 명이 암으로 일찍 그들 곁을 떠난 모양이었다. 마침 그녀가 좋아하던 음식이 나왔고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먼 곳으로 떠난 그녀를 그리워하는 대화였다. 여자는 밉다라고 했지만 내 귀엔 분명히 그립다라고 들렸다. 이렇게 사람들 이야길  듣고 있으면 그 말들이 모두 소설 속 문장이고 한 줄 시다. 왜 아니겠는가. 소설이나 시가 다 우리들 얘기니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평소 출퇴근 길에 책을 많이 읽어 가끔 집중이 필요할 땐 귀마개를 쓴다. 그마저도 없을 땐 음악을 켜지 않은 이어폰을 꽂은 채 책을 읽는다. 반대로 종일 모니터를 보고 글을 읽느라 눈이 피로하면 책을 덮고 귀만 열어둔다. 내 주변에선 또 어떤 대화들이 오고 갈지 그들의 대화에 일부러 집중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꽤 괜찮은 문장이 얻어걸릴 때도 있어 그대로 메모해 두었다가 글쓰기에 활용한다. 싱싱한 활어다, 내가 직접 낚은 생활어(生活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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