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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pr 08. 2016

라식에 대한 내 경우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선영은 한 손에 휴지를 쥐고 연신 입에 묻은 양념을 훔치면서 찜닭을 먹었다. 여전히 당면만 긁적이던 진우가 문득 젓가락질을 멈추고 밥을 먹는 선영을 한참 쳐다봤다. 선영이 눈썹을 치켜올리고 진우를 바라봤다.
“왜? 왜 그렇게 뚫어지게 봐?”
“렌즈 했니?”
“아하, 나 라식수술 받았잖아. 아침에 눈을 딱 뜨면 세상이 다 보여. 나는 어릴 때부터 안경을 썼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래서 그런가? 되게 예뻐졌다, 너. 정말 예뻐졌다. 옛날에 뿔테안경 쓰고 데모한다고 쫓아다닐 때는 선머슴애 같았는데. 너무 예뻐졌다.”
<김연수 ‘사랑이라니 선영아’를 읽다가>



    2012년 어느 여름 찜통 같은 더위에 줄줄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같이 줄줄 흘러내리는 안경을 연신 치켜 올리며 나는 결심한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페이스북에 이렇게 글을 남긴다.
‘내년엔 꼭 돈 모아서 라식해야지.’
금연도 그렇고 무언가를 결심하면 공개적으로 알리라는 말이 있다. 그래야 더 빨리 이룰 수 있다고. 비슷한 마음이었을 거다. 간절히 라식이 하고 싶었고 당장에는 여윳돈이 없으니 공개적으로 미리 알린 다음 반드시 해치우겠다고.
그로부터 딱 6개월 후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초겨울 나는 드디어 라식 수술을 감행한다. 겁도 많이 났지만 안경을 벗게 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일을 진행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다. 사실 눈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안경이 쓰고 싶어서 시력검사 때 거짓말을 했고 안경을 써야 되는 정도의 시력이 나오자 엄마가 당장에 안경점에 데리고가 안경을 맞춰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막급이다. 철없던 시절이라 하지만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자신이 원망스럽다. 제대로 보이는 사물도 안경을 쓰면 더 안 보였는데 멋 부릴라고 굳이 안경을 쓰고 다녔다. 그러다가 내 시력은 점점 더 나빠졌고 고등학교 2학년 미술을 시작하면서 급격히 안 좋아졌다. 급기야 안경을 벗으면 일정 거리 이상에서 상대방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시력이 되었다.

    이 안경이라는 게 학교 다닐 때는 사실 별 문제 없다. 화장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학창시절 나는 나름 모범생이어서 그다지 외모에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학에 가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부터 이 안경이라는 게 액세서리처럼 활용되기도 했지만 없는 게 백 번 편한 도구가 된 것이다.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 목욕탕에 갈 때, 추운 날 김 서릴 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계가 안 보일 때, 등등 너무 많은 이유가 안경을 끼고 싶지 않게 만들었지만, 내 경우 가장 큰 이유는 화장이 밀렸기 때문이다. 맨 얼굴로 다녀도 예쁘면 오죽 좋겠냐만 도저히 화장 안 하고 밖에 출몰할 수 없는 얼굴이기에 화장을 꼬박꼬박 정성 들여 했는데 마지막에 걸쳐야 하는 이 안경이 어찌나 골칫덩어린지. 화장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곱게 한 화장이 안경 코 받침에 밀리기 일쑤였다. 머리 띠도 하기 힘들었다. 안경테랑 겹치니까. 모자도 안 어울렸다. 아무튼 이래저래 다 싫었다.


illust by 곽명주


    모든 경우를 종합해 볼 때 나는 라식 수술을 하는 게 맞았다. 그래서 감행했고 결국 나는 후회했다. 왜? 그렇게 하고 싶었으면서 왜? 일단 수술이 (겁나) 무서웠다. 눈 뜨고 받아야 하는 수술은 정말이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후유증이 남았는데 눈이 심각하게 건조해졌다는 것이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나아지긴 했지만 라식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이었으니 후회스러웠다. 이후 주변에서 라식 수술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으면 웬만하면 하지 말고 그냥 안경 쓰라고 말한다. 반대로 수술을 적극 추천하는 사람도 있으니 반대하는 사람 하나쯤 괜찮겠지. 물리적으로 고통이 느껴지는 아픔뿐만 아니라 안경을 다시 쓰고 싶은 이유는 또 있다. 나이도 한 두 살 먹고 점차 외모에 자신감이 하락하는 시기가 되다 보니 다른 이유로 얼굴을 가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럴 때 안경이라도 끼면 좀 커버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 그렇다면 알 없는 안경이라도 끼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러기엔 또 본전 생각이 나서 싫다. 수술까지 한 마당에 안경을 쓰는 건 뭔가 억울하다.
가끔은 있는 그대로 두는 게 더 나은 것들이 있다. 물론 내 외모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누차 말하지만 난 가리는 편이 낫다) 긁어 부스럼 된다는 말이 여기 맞는진 모르겠으나 내 라식의 경우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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