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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pr 08. 2016

엄마 냄새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여진도 엄마처럼 모로 누워 잤다. 두 손으로 베개를 붙잡고 자서 베갯잇에서는 그녀가 즐겨 쓰던 향수 냄새가 났다. 그것은 엄마의 화장품 냄새와 비슷했다. 영무는 삶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그 건강한 냄새와 활력을 동경했다. 

<서유미 ‘끝의 시작’을 읽다가>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4살 때도 기억이 난다지만 내가 희미하지만 기억할 수 있는 나의 유년시절은 9살 무렵부터다. 내 나이 8살에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다. 총각 때부터 앓아오던 결핵이라는 오랜 지병이 있으셨다. 엄마는 아빠가 결핵인 걸 알고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까지 했다. 훗날 대학생이 된 나는 이런 건 좀 물어봐도 되겠지 싶은 마음에 왜 그런 결심을 했냐고 물으니, 그때 아빠는 엄마가 아니면 안될 것 같았단다. 엄마가 원래 여장부 스타일인건 알았지만 고작 스물 대여섯 살 때 한 남자를 책임지겠단 생각으로 병든 연인과 결혼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부모, 형제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을. 아, 하려던 얘기는 이게 아니었는데. 아무튼 그런 엄마는 아빠의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이셨고 아빠가 살아 계셨을 때도 생계는 엄마 책임이었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엄마 몫이 되었다. 일하는 엄마를 둔 덕에 나는 학교 갔다 돌아오면 대부분 집에서 홀로 지냈다. 혼자 노는 게 당연했기 때문에 외롭다 생각한 적이 없었다. 외롭다는 감정이 뭔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혼자 있는 걸 즐긴다. 오히려 여럿이 있는 게 불편하다. 


    그 무렵부터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향기가 있다. 청소년기를 거쳐 향수라는 게 뭔지 알고 나서부터 엄마의 향기는 샤넬 no.5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엄마는 고집스럽게 그 한가지 향수만을 뿌렸고 엄마의 옷에는 늘 샤넬 no.5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창피한데 엄마 없는 집에서 혼자 놀다가 불현듯 엄마가 보고 싶어지면 장롱에서 엄마의 블라우스를 하나를 끄집어내 코밑에 대고 한참을 킁킁 거리기도 했다. 본능적으로 냄새를 맡으면 그리움이 좀 사그라진다는 걸 알았나 보다. 그 냄새를 맡으면 엄마가 곁에 있는 것 같고 혼자여도 버틸 만 하다는 걸. 아가씨 시절부터 예순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색조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 엄마의 키 낮은 화장대에는 스킨 로션 정도의 화장품이 다였다. 피부가 워낙 좋기도 하지만(예나 지금이나 최소한만 바르는 것이 좋은 피부 유지 비결일지도 모르겠다) 일하고 돌아와 뜨거운 물에 샤워를 마친 뒤 거칠어진 손으로 로션을 툭툭 쳐내 쓱쓱 문지르던 엄마의 발그레한 볼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엄마를 끄러 안기라도 하면 얼굴에선 시원하고 부드러운 익숙한 로션의 향이, 몸에선 엄마 살 냄새같이 기분 좋게 밴 향수 향이 맡아졌다. 

illust by 곽명주

    색조화장을 안하진 않지만(안하고 돌아다닐 수 없음) 나도 기본적으론 스킨, 로션, 수분크림 정도가 화장품의 전부다. 피부가 안 좋았다면 이런 저런 다양한 시도를 해봤겠지만 엄마 아빠의 좋은 피부를 물려받아서인지 비싼 거 바르지 않아도 큰 트러블 없이 지낸다 (그렇다고 매우 좋지도 않다) 때로는 화장품의 성분보다 내 화장대에 올려 놓았을 때 예뻐 보일 것 같은 화장품을 고르는 걸 보면 성분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 마침 로션이 다 떨어졌길래 스킨, 로션, 크림까지 세트로 구성된 스킨 케어 제품을 샀다. 유기농 제품이라고 하는데 다른 화장품보다 향이 짙었다. 문득 내 아이가 기억할 엄마 냄새는 뭘까가 궁금해졌다. 내 엄마처럼 한가지를 고집스럽게 쓰는 게 아니라면 아이가 엄마의 냄새를 추억할 때면 조금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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