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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pr 08. 2016

신발과 가방을 좋아했지만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지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숄더백을 뒤집어서 치마에다가 소지품을 쏟아놓았다. 화장품, 지갑, 휴대폰, 물티슈와 함께 카드전표와 영수증이 한무더기 쏟아졌다. 지현은 영수증을 한장씩 들춰보았다. 누가 봐도 시위하는 몸짓이었으므로 세호는 머리를 내둘렀다. 징수원 여자는 입매가 샐쭉해졌다. 

<전성태 두번의 자화상 ‘소풍’ 을 읽다가> 




     015B의 노래 중 윤종신이 부른 ‘1월에서 6월까지’라는 곡이 있다. 1월에 만난 연인이 6월까지 사귀다 헤어지는 내용인데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올 만큼 공감돼 기억하고 있다. 가사 중에는 ‘신발과 가방을 좋아했지만 그 모습이 귀엽게만 보였고’라는 부분이 있는데 백과 구두를 좋아하는 여자가 아닌 신발과 가방을 좋아한다는 글귀에서 다정한 마음이 느껴진다. 나 또한 신발과 가방이라면 환장하는 여자 중 하나다. 집에는 사과 상자만큼 커다란 플라스틱 정리함 4개에 꽉 들어찬 것도 모자라 옷걸이에 주렁주렁 가방 열매가 열려 있다. 그러고도 새로운 가방을 볼 때면 마음을 홀딱 빼앗겨 살까 말까를 수십 번도 넘게 고민하다가 결제를 하고 충동 구매했음을 살짝 후회도 한다.


    이런 내가 새해로 접어들며 다짐한 게 하나 있으니 짐작했겠지만 가방을 절대 사지 말자, 이다. 뭐 가방뿐이겠나. 신발, 옷 모두 포함이다. 차고 넘치게 많은 이 물건들을 최대한 줄이고 간소해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출근하거나 모처럼 주말 외출이라도 할 때면 입고 갈 옷은 왜 하나도 없고 그나마 찾은 옷에 어울리는 신발은 눈에 띄지 않는 건지. 그래도 참아야 한다. 올해는 정말 정말 아무것도 사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illust by 곽명주


    가끔 충동구매를 참으면 기분이 썩 괜찮아지는 때도 온다. 얼마 전에 사이트를 둘러 보는데 내가 위시리스트에 담아 두었던 초록색 숄더백이 50% 할인 중이었다. 그때부터 내 심장은 살짝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건 어쩌면 이 숄더백을 사라는 신의 계시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직원 할인이 추가 되는지 설레는 마음으로 확인했는데, 웬걸, 되는 거다. 그럼 처음 세일 전 가격보다 무려 10만원 정도 싼 건데 이 가격이면 이 숄더백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다. 나는 다시 가방을 둘러보며 곰곰이 생각한다. 이미 마음의 반은 사는 쪽으로 기울었고 더 합당한 이유를 찾기 위해 좀 더 살펴보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 나는 이미 가방을 샀고 그 가방에 책도 한 권 넣고 휴대폰, 지갑, 파우치가 들어가 있으며 초록색에 맞는 옷을 꺼내 입고 지하철을 탄다. 내 가방을 힐끔거리는 사람들의 눈초리도 조금 즐기면서 나는 이 가방만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클릭 클릭으로 숄더백을 장바구니에 담았을 때 결제 버튼만 누르면 내 가방이 되는 그 상황에서 나는 과감히, 삭제 버튼을 클릭했다. 꼭 사지 않겠다는 생각보다 한번 그렇게 해봤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기분이 홀가분해졌고 딱히 그 가방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삭제버튼을 클릭한 내가 스스로 대견해지면서 가방의 가격만큼 대출금 일부라도 상환한 것마냥 즐거워졌다. 뭔가를 이겨냈다는 건 이 정도의 감흥이 있나 보다.


    ‘저장강박증’이라는 병이 있다. 물건을 못 버리는 건 물론이고 끊임없이 물건을 사들이는 병인데 나도 한때는 엄청 사들이고 버리지 않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병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심각했다. 그때 나는 행복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뭔가 허전해서 계속 사들인 게 분명했으니까. 쇼핑을 권하고 조장해도 모자를 입장에서 사지말자는 글을 적는 내가 좀 아이러니하지만 필요한 거라면 적극적으로 발품 팔아 사길 권하지만 충동적으로 물건을 구매해서 그 물건이 처치곤란이 되는 건 막고 싶은 마음에 그랬음을 실토하며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그래도 세상에 예쁜 것들은 넘쳐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또한 이 굳건한 다짐을 참지 못하고 덜컥 질러버리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장담은 못하겠다. 우리는 그렇게 흔들리며 사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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