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Jan 16. 2017

동료의 이직에 관하여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팬티나 양말은 빨래 건조대에서 걷어 입거나 신게 했고, 돌돌 말린 먼지 덩어리들이 바짓단에 엉겨붙을 때까지 청소를 하지 않았다. 개수대가 꽉 찰 때까지 그릇을 쌓아두고 몰아서 설거지를 하느라 주방에서는 늘 시큼한 냄새가 났다. 푸른곰팡이가 꽃처럼 핀 미역국을 보름이 넘도록 버리지 않는 일이나, 시커먼 물때가 덕지덕지 앉은 세면대에서 세수하는 일, 현관 장식장에 죽은 다육식물 화분을 일 년쯤 묵히는 일 정도는 보통이었다. 
<김이설 ‘오늘처럼 고요히’ 중 ‘복기’를 읽다가>



주인이 출근하지 않은 책상에 테이크아웃 커피잔이 동그마니 놓여있다. 커피잔 패키지에 담긴 건 커피가 아닌 양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반짝반짝 블랙펄 삭스. 내 취향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남긴 이별 선물이었다. 메모를 읽어보니 지난주 퇴사한 동료의 마지막 인사가 적혀있다. 모두 퇴근한 다음 자리에 조용히 놓고 갔을 그의 심정을 헤아리니 괜히 짠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다.
친한 동료 두 명이 이직을 했다. 그들의 이직은 단순한 이직이 아니었다. 다른 회사로 거처를 옮긴 지 2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실감 나지 않고 그저 어딘가로 외부 미팅을 나갔다거나 휴가 중인 것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 외에 본격적으로 회사라는 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인연을 맺어왔다. 회사생활 15년이 훌쩍 넘었으니 그간 나를 스쳐간, 내가 스쳐간 인연만도 손으로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처음에는 친한 동료(동료라기보다 친구가 더 맞을지도 모른다.)의 이직이 참 견디기 힘들었다. 단짝처럼 지내던 친구와 헤어지려니 나도 회사를 다른 데로 옮겨야 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어릴 때였으니까. 그땐 회사에서 야근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대학에서 야작(야간작업)하는 기분이랑 비슷했다. 야근하고 그냥 집에 가기 섭섭하니까 치맥 한잔 하고 들어가려다가 한잔이 두 잔 되고 석 잔 되다가 자취하는 친구 집에 가서 또 마시고 아예 그 친구네서 자다가 주말 근무하는 날(당시는 격주로 토요일 근무를 했다.)이랑 겹쳐 아침에 해장국 먹고 출근하기도 했다. 어릴 때였으니까.


그들의 이직이 서운했지만 더 나은 결정을 응원했다


앞서 친한 동료라고 했지만 나보다 직급도 높고 나이도 많은 선배들이다. 입사 시기가 비슷해서 유독 친하게 지냈고 같은 유부남 유부녀라 아이들 이야기도 많이 하고 회사 다니면서 이런저런 고민 생기고 걱정 생길 때마다 한을 같이 나눴던 사람들이다. 작년에 우리 회사에 한때 이직 바람이 불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결정을 내리고 옮긴 사람도 있고 옮기려 마음먹었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은 동료도 있다. 사실 나는 이직을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런 동료들의 생각이나 걱정을 나눠 들을 때마다 심적으로 버거운 느낌이 적지 않았다. 내가 그렇듯 동료도 적은 나이가 아니고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으므로 쉽사리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뻔한 답을 주지말자는 게 내가 세운 나름의 기준이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맞는 거지.’ 라는 답변보단 과거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직을 했을 때 겪었던 사례나 심정 등을 이야기해주며 최종 결정은 그들에게 넘겼다. 친하다고 해서, 내 입장만 생각해서 힘들어도 같이 다니자고 회사에 머물러 있게 할 순 없었다. 헤어짐이 서운한 건 서운한 거고 미래는 그들의 것이니까. 어떤 선택이든 더 나은 결정을 하길 바랐다.


20대 후반에 다녔던 직장에서 친했던 동료가 회사를 관둔다고 했을 때 솔직히 많이 괴로웠다. 외톨이가 된 것 같았다. 점심은 누구랑 먹나, 이제 친해졌는데 헤어져서 어쩌지… 아마도 학창 시절 단짝 친구가 전학 가는 기분이 그렇지 않았을까?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는 길 울적한 마음으로 전철역을 향해 걷다가 어떤 문장 하나가 내 마음속에 콕 박히듯 또렷해졌다.


“사람의 인연은 바람 같은 거구나. 불어서 내게로 왔듯, 부니까 어딘가로 가는 거지. 그게 자연스러운 거였네.”


illust by 윤지민


책에서 읽은 글귀도 아니었고 라디오에서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저 문장이 떠오르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낯을 가려서 친해지긴 어려워도 막상 친해지면 정을 듬뿍 쏟는 스타일이어서 그간 사람과의 이별이 힘들었는데 그런 면에서 좀 자란 나를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마음과 뜻이 맞는 동료와 한 직장에서 오래도록 일 할 수 있다면 천군 백마가 두렵지 않다. 든든한 동료 1명이면 충분하다. 내 마음 솔직히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기분 꿀꿀한 날 맥주 한잔 하고 갈래? 할 수 있는 동료. 그런 사람이 없다면 조금은 맥 빠질 수 있겠지만 없다고 죽을 일도 아니다. 모든 건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거니까.


인연은 바람 같은 거구나, 그게 자연스러운 거였네


2주 전 이직한 나의 동료 둘은 이미 첫 출근 한 사람도 있고  1월 9일이 첫 출근인 사람도 있다. 꽤 오랜 시간 29CM에 몸 담고 있었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낯선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이 그들도 설레면서 두렵기도 할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아도 첫 출근은 늘 그런 마음이니까. 이직을 앞둔 며칠 전, 동료의 팀원들이 과장님께 선물해드릴 롤링페이퍼를 만들고 싶다며 표지에 캘리그래피로 괜찮은 문구 하나만 써달라고 내게 부탁을 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무슨 문구를 써줄까 고민하다가 옛 노래 가사가 계속 입가에 맴돌기에 굵은 네임펜으로 슥슥 적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학교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고 마음 같은 거 두지 않고 그저 주어진 일만 하고 가는 게 아무렇지 않은 요즘. 친한 동료의 이직에 가슴 아프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걸 보니 (그들 같은 동료를 두어서) 나도 그렇고 그들 또한 인생 헛 살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울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사회생활에서 이런 이별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괜찮게 산 거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과거의 친절을 기억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